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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1일, 밀란에서 토즈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발테르 키아포니(Walter Chiapponi)의 첫 컬렉션이 공개되었다. 한동안 공석이던 자리의 새 주인이 된 키아포니는 보테가 베네타에서 토마스 마이어와 함께 오래 호흡을 맞춘 디자이너다.
첫 번째 컬렉션의 첫 번째 룩이라면 힘이 좀 들어갈 법도 한데, 그는 편안하고 세련된 룩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커다란 블레이저와 박시한 셔츠, 통이 넓은 코듀로이 팬츠, 그리고 스니커즈와 울 스카프. 우아하고 세련된, 그리고 지극히 이탈리아적인 서두였다. ‘키아포니는 토즈의 DNA인 높은 품질과 장인정신을 놓치지 않고, 이탈리아 라이프 스타일을 현대적인 감각과 결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라던 토즈 그룹의 회장 디에고 델라 발레의 설명처럼 말이다.



오늘의 주인공인 신발 얘기로 돌아가 보자. 토즈는 190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필리포 델라 발레가 세운 작은 구두회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필리포의 손자인 디에고 델라 발레가 198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와 판매하기 시작한 아름다운 수제화가 ‘토즈’라는 이름의 시작이다. 딱딱한 슈즈만 존재하던 때, 토즈의 드라이빙 슈즈는 미국 전역에서, 이후에는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게 되었다. 고미노(Gommino) 드라이빙 슈즈는 그 용도에 맞게 굽이 낮고 발볼을 감싸는 부분이 낮아 신고 벗기 편했고, 고무 페블 밑창(아주 작은 조약돌 같은 고무가 빼곡히 박혀 있는 형태)이 더해져 페달을 밟았을 때 미끄러지지 않았다.








가죽으로 정교하게 조각한 것 같은 우아한 디자인의 신발. 토즈의 DNA로 자리를 잡은 고미노 드라이빙 슈즈의 디자인 요소는 이후에 출시된 기성복 컬렉션의 의상과 가방, 운동화, 지갑 등에 적용되기도 했다. 고미노는 토즈 그룹에 멋진 날개를 달아주었고, 그렇게 도약한 토즈는 화려한 로고 없이도 제 정체성을 드러낼 줄 아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좋은 가죽, 장인 정신, 신체를 옥죄지 않는 편안함, 우아하고 세련된 이탈리아 정신, 호화로우면서도 절제된 디자인. 무엇보다 안락함을 주는 디자인이 토즈의 정체성이다.





지극히 이탈리아적인 브랜드에 관해 쓰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어쩔 수 없다. 일상의 평화가 회복되고 어디로든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나는 한적한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고 싶다. 맨발에 토즈 드라이빙 슈즈를 신고서 작은 차를 운전해서 말이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여기까지 읽고 웃음을 터뜨릴지도 모르겠다. 운전면허증을 신분증으로만 사용하며 몇 년째 ‘운전 연수 받기’를 첫 번째 새해 다짐으로 적는 나니까. 그렇다면 나는 그를 향해 강력하게 항변하겠다. 어떤 물건은 사람을 바꾸기도 합니다. 하나의 물건에서부터 다짐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고요. 물건을 사야 비로소 행동이 시작되는 나 같은 사람도 존재한단 말입니다!

▷ 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