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11월 25일, 필요한 것도 사고 필요 없는 것도 사고, 눈에 보이면 뭐든지, 죄책감은 잠시 접어두고서 마구마구 물건을 사들이는 날, 블랙프라이데이 아침이었다. 그날 뉴욕타임스에 기묘한 광고가 실렸다.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대문자로 적힌 단호한 메시지. 파타고니아의 광고 문구였다. 그들은 제품의 매력 포인트를 적지 않고 민폐 포인트를 적었다. 한장의 재킷을 만들 때 자연에 끼치는 피해를 나열한 것이다. 이런 식이었다. “광고에 사용된 R2 재킷은 (친환경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생산하기 위해 많은 자원이 소모된다. 물 135ℓ가 소비되며 이는 45명이 하루 3컵씩 마실 수 있는 양이다. 원산지에서 창고까지 오는 데 20파운드에 가까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데, 이는 완제품 무게의 24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흥미롭게도 이 광고가 공개된 이후 이 재킷의 판매는 오히려 증가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인가.

파타고니아 홍보팀
파타고니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품이 바로 플리스 재킷이다. 플리스란 표면에 복슬복슬한 파일을 만든 폴리에스터의 소재의 직물. 80년대 초에 탄생한 이 원단으로 처음 옷을 만든 브랜드가 바로 파타고니아였다. 1984년, 플리스 원단을 겉감으로 사용하고, 땀을 발산하는 기능을 가진 캐필린 원단을 덧대어 제작된 레트로 파일(Retro File, 레트로 X 재킷의 시초)이 그것이다. 그리고 10년 뒤, 지금의 레트로-X가 완성되었다. 기존의 플리스 겉감과 캐필린 안감 사이에 방풍, 투습 기능을 가진 P.E.F(Performance Enhancing Film) 소재를 삽입하면서 기능을 향상한 것. 1998년, 가슴 부분의 사각형 주머니가 처음 생겼고, 2006년, 브랜드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제품명에 클래식이라는 단어를 붙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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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마다 컬러의 조합과 패턴이 달라질 뿐, 파타고니아의 디자인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옷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글머리에서 언급했던 그 광고 속 민폐 포인트를 줄이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1993년부터 버려진 플라스틱을 이용해 폴리에스터를 방직하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수집해 재처리해서 분류, 세척, 분쇄한 후 재료로 만드는 것. 한번 쓰고 버리는 물건인 물병 같은 낮은 가치의 물건이 20년 이상 지속하는 물건이 되도록 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2008년부터는 재활용 나일론과 양모, 재활용 캐시미어, 면, 솜털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노력은 조금씩 바깥으로 확장되고 있다.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는 브랜드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노스페이스 100% 리사이클링 원단을 사용한 에코 플리스를 선보였고, 블랙야크가 전개하는 친환경 브랜드 나우는 친환경 리사이클 ‘폴리’ 소재를 사용한 플리스 재킷을 선보였다(재킷 한 벌단 버려진 페트병 83개가 사용된다). 그런가 하면 해지스는 친환경 소재인 ‘리사이클 폴리’와 ‘마이크로 텐셀’을 사용한 에코 풀(ECOFUL) 라인을 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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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파타고니아는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적게 사는 것이다. 파타고니아 유튜브 채널에서 가장 흥미로운 콘텐츠는 ‘오래 입은 옷(#wornwear)’ 시리즈다. 사촌에게 물려받은 파타고니아 베이비 점퍼를 네 아이에게 순서대로 물려 입힌 엄마, 자신의 25년 된 점퍼를 아들의 졸업 선물로 건네는 아버지. 벤추라 할인매장에서 20달러 주고 산 보드 쇼츠를 비치 파라솔 천으로 덧대고 기워서 입는 서퍼. 그들은 자신의 낡은 옷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한번 구매한 옷은 정말 오래 사용하고 마지막 순간에 재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문득 3년 전에 나를 놀라게 했던 기사가 떠올랐다. ‘힐러리 클린턴이 자신의 파타고니아 플리스를 20년 이상 입었다’는 내용의 미국 엘르의 온라인 기사였다. 힐러리를 지지하는 공식 트위터 계정인 @HFA 가 지난 2016년 8월, 국립공원 서비스 100주년을 축하하며 1995년에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클린턴 (당시) 부부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같은 옷을 입은 힐러리가 하이킹하는 모습이 다른 트위터리안에게 목격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21년 동안 같은 플리스를 즐겨 입는 여러 장의 사진을 보고 어떤 이는 “이 플리스는 도널드 트럼프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라며 이 사진을 리트윗하기도 했다.
정치적 견해와는 무관하게, 이 사건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하나의 옷을 20년 이상 입는다는 것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한 계절 입고 버리는 세상, ‘패션’이라는 말 앞에 ‘패스트’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는 세상이니까. 다양한 플리스가 범람하는 이번 시즌. 우리는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의 질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둘 중 어떤 것을 사겠어요? 새로운 플리스 재킷과 당신 아버지가 네팔에서 히치하이크를 할 때의 이야기 등 추억이 깃든 옷 중에서요. 어떤 게 더 가치 있을까요?”

twitter@HFA
푸아그라를 얻기 위해 강제로 사료를 먹여 키운 거위나 살아있는 동물에서 얻은 털을 사용하지 않는 트레이서블 다운(생산 과정 추적 다운), 농약 냄새가 진동하는 밭이 아닌 벌과 곤충들이 사는 밭에서 재배한 목화로 만든 100% 유기농 순면 티셔츠, 공정 무역을 통해서 생산하는 신칠라 재킷과 같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매출의 1%(수익의 1%가 아니다!)를 환경 기금으로 기부하고, 마케팅에 돈을 쓰기보다는 구전으로 제품의 진정한 가치가 전달되기를 바라는 회사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제품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고 기꺼이 지갑을 여는 고객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재활용 제품을 구매한다는 건 재활용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쓰레기로 만든 물건이 왜 이렇게 비싼가요?”와 같은 무지한 댓글들에도 끝내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 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