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스와치의 즐거운 시계 혁명_요주의 물건 #34

1983년, 스와치 시계가 처음 등장했다. 대량 생산되는 예쁘고 실용적이고 저렴한 시계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스위스 시계 산업의 판도가 뒤집혔다.

BY양윤경2020.06.03
지난 주말,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하얀 드레스 입고 해사하게 웃는 그 애를 보며 마음이 찌르르해질 만큼 우리 사이에는 많은 날들이 존재했다. 집으로 돌아와 서랍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 있던 시계를 꺼냈다. 스무 살 내 생일날, 그 애로부터 선물 받은 시계. 그날 이후 10년 가까이 사용해서 이제는 낡아버린 나의 첫 스와치 시계였다. 
@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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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치 시계가 세상에 처음 나온 건 1983년, 스위스 시계 산업이 흔들리던 시기였다. 19세기 이전까지 수공으로 제작하는 기계식 무브먼트로 시계 산업을 장악했던 스위스가 휘청거린 건 일본과 홍콩 등에서 대량 생산되는 저가의 시계들 때문이었다. 이제 스위스 시계도 사치품의 영역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영역의 제품을 선보여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니콜라스 하이에크였다. 그가 주장한 새로운 영역이란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부품을 최소화했지만 충분히 정교하고,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의 시계였다. 
80년대에 사랑받았던 헤리티지 피스들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대해석한 빈티지 컬렉션 @스와치 제공

80년대에 사랑받았던 헤리티지 피스들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대해석한 빈티지 컬렉션 @스와치 제공

 
톡톡 튀는 컬러와 간결한 디자인, 저렴한 가격이라는 확실한 강점을 가진 스와치는 첫 컬렉션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았고 2006년, 총 3억 3300만개의 시계 생산이라는 기록을 세웠다(그중 두 개가 내 서랍 속에 있다). 그리고 2014년에는 51개의 부품을 단 하나의 나사로 조립한 ‘시스템 51’을 론칭했다. 전통적인 오토매틱 시계 하나에 최대 600개 이상의 부품이 사용되고 수개월 동안 장인들이 손으로 조립해 만든다는 것을 생각하면, 완전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생산되는 오토매틱 시계는 놀라운 것이었다. 100% 스위스 메이드의 오토매틱 시계를 10만원대~2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스와치 '시스템51' 컬렉션. @스와치 제공스와치 '시스템51' 컬렉션. @스와치 제공스와치 '시스템51' 컬렉션. @스와치 제공
 
스와치가 추구하는 가치는 다양성과 보편성이다. 가볍고 편안한 것, 그리고 세대를 초월하는 상상력과 유머! 1986년에 선보인 키스 해링 시계, 그리고 2018년, 미키마우스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데미안 허스트와 협업한 시계는 스와치가 어떤 길을 가려고 하는지 잘 보여준다.  
지난해 선보인 루브르 컬렉션은 또 어떤가. 처음 보았을 땐 ‘유명한 그림을 시계에 그려 넣었군!’ 하다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시계 스트랩에 그려 넣고 스트랩 키퍼를 마치 주황색 안경처럼 보이게 만드는 식의 위트. 귀도 레니의 [헬레네의 납치]는 또 어떤가. 그림의 주인공들(헬레네와 파리스)은 온데간데없고 그림 구석에 있던 아기 천사(큐피트)가 홀로 등장한다. 천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빨간색 하트 모양의 날짜 표시가 있고 다이얼의 숫자 중 ‘5’만 아기 천사의 팔에 타투처럼 그려 넣었다(이 시계의 이름이 ‘사랑의 화살표(Fleche D'Amour)라는 게 가장 웃긴 부분).
 
동그라미와 컬러만으로 미키마우스를 표현한 데미안 허스트의 2012년 작품 〈Mickey〉. @게티 이미지미키마우스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스와치와 데미안 허스트가 협업한 시계. 2018년에 한정판으로 전세계 19,000개 출시되었다. @스와치 제공미키마우스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스와치와 데미안 허스트가 협업한 시계. 2018년에 한정판으로 전세계 19,000개 출시되었다. @스와치 제공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귀도 레니의 [헬레네의 납치]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캔버스에 옮겼다. 스와치 루브르 컬렉션. @스와치 제공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귀도 레니의 [헬레네의 납치]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캔버스에 옮겼다. 스와치 루브르 컬렉션. @스와치 제공
 
스와치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그들 자신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패션 라이프 스타일 시계’. 스와치는 시계라는 물건을 ‘과시적 소유물’이 아닌 ‘감성적 경험’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선구자였다. ‘매우 정밀한 제품’의 카테고리에 있던 시계를 ‘패션 액세서리’의 카테고리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자신들의 철학을 집요하게 유지하는 그들 덕분에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계를 구매해 예술적인 즐거움과 재미를 만끽하게 되었다. 
스위스(Swiss)와 와치(Watch)의 합성어인 스와치. 재미 삼아 스위스 대신 다른 말을 넣는다면 어떤 단어가 좋을까 생각해 본다. 스마트(Smart)? 스포티(Sporty)? 스페셜(Special)? 아니면 세컨드(Second)? 나라면 스파클(Sparkle)이라는 단어를 고르겠다. 알록달록한 컬러가 일상에 반짝이는 생기를 더해준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지금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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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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