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코르크로 만든 신발_요주의 물건 #32

버켄스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뭔가? 편안함? 기능성? 이 글을 읽고 나면 버켄스탁이 가장 섹시한 신발 중 하나라는 말에 동의하게 될 거다.

BY권민지2020.05.20
이번 주엔 어떤 물건에 관해 적어볼까 고민하다가, 문득 지난주의 물건과 연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능적인 레드 솔의 크리스찬 루부탱을 다룬 5월 13일의 글에 이어, 이번에도 발바닥에 관해 써보면 어떨까. 기왕이면 루부탱과 정반대의 자리에 있는 물건에 대해. 그 엉뚱한 생각이 가리킨 곳에는 버켄스탁 샌들이 있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버켄스탁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건, 우연히 접한 한 문장 때문이었다. “버켄스탁은 기본적으로 기능적이고 섹시해요. 마치 청바지처럼요. 아마도 최고로 섹시한 신발일 거예요.” 섹시라니, 최고로 섹시라니,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투박하고 편안한 신발 아니었나. 버켄스탁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사람은 디자이너 릭 오웬스였다.
 
평소에도 버켄스탁을 즐겨 신는 것으로 알려진 릭 오웬스는 지난 2018년 봄, ‘버켄스탁 1774’와의 첫 협업 제품을 선보였다. 브랜드가 설립된 해인 1774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은 ‘버켄스탁 1774’는 기존의 제품군과 구별되는 컬렉션 라인으로, 브랜드의 상징적인 디자인에 새로운 해석을 더 한 제품들을 선보인다. 기존의 코르크 발판을 프리미엄 가죽으로 감싸고 신발 전체를 한 컬러로 채색된 심플한 디자인 등이 특징. 또 릭 오웬스를 시작으로 발렌티노, 이탈리아의 호텔 일 펠리카노, 프로엔자스쿨러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한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아이코닉한 실루엣을 지켜온 제품은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을 갖는다는 것을 버켄스탁 1774 컬렉션이 증명하고 있다. 거기에 약간의 디자인적인 터치가 가미되었을 때는 폭발적인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도.
 
ⓒ유르겐 텔러 (Juergen Teller)

ⓒ유르겐 텔러 (Juergen Teller)

ⓒ버켄스탁 제공ⓒ버켄스탁 제공ⓒ버켄스탁 제공ⓒ버켄스탁 제공
버켄스탁이라는 브랜드를 가장 단순한 말로 설명한다면 ‘풋 베드 발명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774년에 설립된 이후 버켄스탁은 한결같이 발바닥이 닿는 면에 집중해 왔다. 최초의 윤곽 깔창을 개발한 것이 1896년, 공장에서 만든 신발에 넣는 최초의 아치 지지대를 개발한 것이 1902년의 일이다. 또 1925년에는 최초의 블루 풋 베드를 선보였고, 1930년대에는 충격 흡수 창과 황마 섬유층, 코르크 바닥과 부드러운 스웨이드로 구성된 풋 베드 라인을 완성했다. 샌들의 프로토타입을 완성한 것이 1964년의 일이고, 생산라인을 갖춘 1970대 이후에는 100여 개국 이상에서 판매되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버켄스탁 제공ⓒ버켄스탁 제공ⓒ버켄스탁 제공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던 오래전 광고 카피처럼, 풋 베드 역시 슈즈 디자인의 영역을 넘어 선다. 독일의 작은 마을 교회의 신발 공으로 일하던 요한 아담 버켄스탁의 가업을 이어받아 프랑크 푸르트에 신발 공장을 세운 증손자 콘라드 버켄스탁. 그는 ‘이상적인 신발’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풋 베드를 개발했다. 안정적으로 발을 감싸주는 아치 형태의 (당시로써는놀랍도록) 푹신한 코르크 소재의 풋 베드는 체중을 발 전체에 분산시켜 부담을 덜어준다는 평을 받았다. 콘라드의 아들 칼 버켄스탁은 자연 보행을 할 때 어떤 식으로 발바닥에 힘이 실리는지 연구했고, 그 이론을 담은 ‘칼 버켄스탁 시스템’을 개발했다. 정형외과 의사와 발 질병 전문가들이 추천한 이 시스템은 신발을 단순한 의복의 개념이 아닌 의학적 개념으로 접근하는 첫걸음이었다.
 
ⓒwww.birkenstock.com

ⓒwww.birkenstock.com

버켄스탁 가문의 신발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부상당한 병사들을 위한 정형외과용 신발에 사용되기도 하고, 체조선수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때 의료용품점에서 판매되던 신발은 이제 클래식한 패션 아이템이 되어 거의 모든 집의 신발장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발 건강에 관해 집요하게 파고든 그들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영역을 조금씩 더 확장하고 있다. 다양한 기술을 적용해 의료 분야 종사자, 건축 작업자, 요리사, 가드너 등을 위한 안전화(버켄스탁 프로페셔널 컬렉션)를 만들고, 건강한 수면을 위한 시스템(버켄스탁 슬립 시스템)을 개발하고 천연 스킨케어(버켄스탁 내추럴 스킨케어)도 선보인다. 언뜻 새로운 영역으로의 사업 확장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신들의 뿌리를 향해 가는 일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고집해왔던 가치인 고객들의 건강한 삶, 그것을 추구하는 일이다. 이 얼마나 섹시한가.
 
 
*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
 

'요주의 물건'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