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직장이 형벌일까? '조용한 퇴사'의 진실_돈쓸신잡 #86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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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직장이 형벌일까? '조용한 퇴사'의 진실_돈쓸신잡 #86

박지우 BY 박지우 2023.02.23
넷플릭스에서 만든 한국 콘텐츠 〈피지컬:100〉이 화제다. 참가자 100명 중 가장 강력한 피지컬을 가진 1명만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오징어 게임〉 실사판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최종 5인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시시포스의 형벌〉이라는 미션이 등장한다. 무려 100kg에 달하는 공을 끊임없이 언덕 위로 굴리는 게임이다.
시시포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신들의 신 제우스에게 대들었다가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는다. 무거운 바위를 가파른 언덕 위로 밀어 올려야 하는데, 정상에 도착하면 바위는 다시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시시포스는 또다시 그 바위를 언덕 위로 밀어 올린다. 이 형벌의 핵심은 무거운 바위가 아니라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피지컬:100〉 참가자들이 시시포스처럼 끙끙거리며 무거운 공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보면서 문득 '조용한 퇴사' 신드롬이 떠올랐다.
 

조용한 퇴사를 선택하는 직장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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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젊은 직장인 사이에서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가 늘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조용한 퇴사란 직장 내에서 최대한 일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계유지를 위해 섣불리 퇴사는 못 해도 정신적으로는 사실상 퇴사 모드로 회사에 다니는 것을 말한다. 본인이 10만큼 일할 수 있는 역량이 있더라도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고 4에서 5 정도의 힘만 쏟는 것이다. 코로나 기간에 미국에서부터 퍼진 이 개념은 한국에도 빠르게 도입됐고, 젊은 직장인들 70%가량이 조용한 퇴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설문조사도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기업에 취업했음에도 금세 조용한 퇴사를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 여기엔 복잡한 원인이 있다. 만족스럽지 않은 연봉, 있으나 마나 한 복지, 성장 가능성 부재 등등. 또한 최근 몇 년간 투자 열풍이 불면서 근로 소득 위상이 확 낮아진 점 역시 직장인이 회사에 등을 돌린 데 큰 영향을 끼쳤을 테다.
직장인 입장에서 조용한 퇴사는 언뜻 보면 매력적이다. 경제적으로 봐도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웃풋(월급)이 똑같다면, 인풋을 적게 투입할수록 이득이다. 성과에 대한 보상 차등 체계가 확실하지 않은 조직일수록 더더욱 조용한 퇴사자는 늘어날 것이다.
 

조용한 퇴사의 대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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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조용한 퇴사란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하지는 않겠다'라는 선언이다. 물론, 동료에게 피해를 줄 생각까진 없을 것이다. '내가 맡은 일만 한다'라는 마음일 테다. 하지만 직장은 조직 단위로 돌아가는 곳이다. 그래서 '내 것'만 잘하는 것으론 부족할 때도 있다. 동료와의 팀워크 역시 중요하다. 이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발을 뒤로 빼면 결국 누군가가 그 사람의 몫을 대신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평판은 나빠지고, 이렇게 안 좋은 경험치가 차곡차곡 쌓이면 이직할 때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더 무시무시한 대가도 있다. 만약 회사 사정이 급격히 안 좋아져서 구조조정에 들어간다고 상상해 보자. 회사는 과연 어떤 사람부터 내보내고 싶을까? 당연히 저전력 모드로 일하는 사람부터 살생부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실제로 최근엔 조용한 해고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회사도 조용한 퇴사를 선택한 직원을 대상으로 반격에 나선 것이다. 핵심 업무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을 제대로 하지 않고, 비합리적인 지시를 하면서 제 발로 회사를 떠나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작년 말부터 올해까지 꽤나 큰 규모의 기업들조차 물밑에서부터 조용한 해고를 실행하고 있다.
 

"그 경기는 제대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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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100〉에서 시시포스의 형벌 미션을 하다가 결국 힘에 부쳐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기고 싶었지만 그래도 그 경기는 제대로 했습니다" 그는 형벌과 같은 미션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마지막까지 '제대로' 했다. 그래서 시시포스 신화는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 인간에 대한 상징으로 읽히지만, 동시에 그 고통을 알면서도 기꺼이 감수하며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강인한 인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시포스는 대충대충 바위를 굴리지 않는다. 언제 끝날지 몰라도 일단 눈앞에 있는 과제를 있는 힘껏 해결하려고 애쓴다.
물론, 인간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시시포스처럼 강인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버텨내는 삶', '제대로 해내는 삶'의 가치에 대해선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어차피 우리는 경제적인 자유를 이루기 전까지는 눈을 뜨면 일어나서 일터로 향해야 한다. 달콤한 주말은 늘 쏜살같이 지나가고 어김없이 월요일은 돌아온다. 다시 밥벌이를 위해 지옥철에 몸을 꾸겨 넣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형벌로 생각할 것인가, 미션으로 생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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