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로도 특별한 ‘연대의식’을 갖고 있던 〈블랙팬서〉 출연진과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자신들의 리더이자 가족, 친구를 잃은 슬픔과 좌절을 그대로 이야기 속에 투영시켰습니다. 국왕 ‘티찰라’의 죽음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여성 캐릭터들. 전작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여성들이 티찰라의 빈자리를 채우며 서사를 이끌어갑니다.



모두가 궁금해했던 ‘2대 블랙 팬서’는 역시 많은 이들의 추측대로 레티티아 라이트였습니다. 전작에서 티찰라의 동생이자 과학자 ‘슈리’ 역으로 등장해 주목받았던 그는 ‘큰 오빠’ 같은 동료의 죽음을 맞이하고 그의 자리를 잇는 쉽지 않은 도전에 임하였습니다. 현실과 겹쳐지는 영화 속 슈리의 여정에 깊은 공감 했다는 그는 〈Empire〉와 나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슈리의 여정은 제가 슬퍼하고, 울고, 웃고, 제가 결코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했던 힘을 얻도록 해줬어요. 고난과 시련을 통해 우리는 ‘나’로 성장합니다. 그대로 무릎 꿇거나 일어나서 계속 가는 수밖에 없어요. 매일매일 슈리가 절 쳐다보면서 ‘멈출 것인가, 갈 것인가’ 묻는 것 같았지요. 치유를 얻을 때까지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다나이구리라가 연기하는 오코예 장군과 ‘도라 밀라제’의 여성 전사들은 이번에도 멋진 액션을 선사합니다. 니키아 역의 루피타 뇽오는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역할을 하며 자신의 역량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캐릭터 리리 윌리엄스 역의 도미니크 손도 눈길을 끕니다. MIT 대학에 다니는 천재 소녀로 등장하는 그는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될 뉴 시리즈 ‘아이언하트’의 주인공으로 알려졌죠. 이처럼 다채로운 면면을 지닌 흑인 여성 캐릭터가 한데 등장한다는 점에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또 하나의 기록이 될 만합니다.



이처럼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 안전하다’는 점입니다. 왕도를 걷는 슈리의 서사는 예측 가능한 수준이며, 그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수중 왕국 탈로칸(마야 문명을 연상시키는)이 도구처럼 쓰이는 데 그쳤다는 느낌도 듭니다. 가족, 혈연, 혈통을 중요시하고 끝내 남자 후계자에 대한 암시를 남겼다는 점에서 참으로 전통적인 가치를 수호하는 영화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영웅 채드윅 보스만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식, 제작진과 동료 배우들이 눌러 담은 애도의 마음만큼은 흠잡고 싶지 않아요. 언젠가 〈블랙 팬서3〉가 찾아올까요? 슬픔을 딛고 일어선 여성들의 더 파워풀한 이야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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