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아씨들〉은 소녀들에겐 영혼의 책이다. 소녀들은 누구나 자신이 네 자매 중 누구인지 생각하며 성장한다. 책 속의 자매들은 끊임없이 돈과 가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이 자매들을 현대 한국으로 데리고 와 보고 싶었다.” 홈페이지에 실린 기획의도처럼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는 ‘레몬 절임’은 없지만 돈, 욕망, 횡령, 살인이 등장합니다. 시작부터 휘몰아치는 이야기 속에서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이 우리 마음을 파고듭니다.
정서경 작가가 그리는 자매들은 제각각 결함이 있지만 현실을 뚫고 나가는 ‘기세’를 지녔습니다. 첫째 인주 역을 맡은 김고은은 그가 얼마나 대담하고 다채로운 표현력을 지닌 배우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잇죠. 1화 엔딩에서 돈 가방을 발견한 인주가 울고 웃던 장면은 과연 김고은 배우만이 가능한 연기였습니다. 둘째 인경 역의 남지현은 우리가 사랑한 ‘조’를 쏙 닮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쌓아온 두터운 연기 내공으로 의연하고 정의로운 ‘21세기 조’를 그려내는 중. 〈벌새〉의 소녀 박지후가 분한 막내 인혜는 복잡하고 아슬아슬한 사춘기 소녀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누군가는 인주를 보며 날카로운 가난의 기억에 공감할 것이고, 누군가는 고모할머니를 보며 생각 못 했던 삶의 방식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정서경 작가는 9월 초에 열린 ‘2022 벡델데이’ 행사에서 충무로에 작가가 사라진 현실을 지적하며 “5번째, 6번째에서야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여성 배우들이 제가 보기에 민망한 장면을 연기하러 나온다"라고 말했지요. 훌륭한 배우들이 재현하는 독특하고 다채로운 여성 캐릭터를 만나는 게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작은 아씨들〉을 통해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2020년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이 개봉했을 때를 떠올려 봅니다. 시얼샤 로넌이 웃고 소리치고 뛰어다니는 모든 장면, 플로렌스 류가 선보인 에이미 캐릭터의 재해석, 그레타 거윅이 창조한 새로운 엔딩을 보며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죠.
2022년 우리에게 또 다른 〈작은 아씨들〉이 찾아왔습니다. 앞으로 남은 회차에서 어떤 반전과 캐릭터의 성장이 있을지 즐거운 기대를 품어 봅니다. 부디 화면에서나 현실에서나 더 많은 ‘작은 아씨들’의 이야기가 퍼져 나가길. 그 이야기들이 모여서 일으킬 변화는 결코 작지만은 않을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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