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그리고 IMF에 대한 기억_돈쓸신잡 #39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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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스물하나> 그리고 IMF에 대한 기억_돈쓸신잡 #39

결국 우리는 블랙홀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김초혜 BY 김초혜 2022.03.31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나는 전형적인 문과생이며 문과생답게 과학에는 대체로 무지한 편이다. 그래서 스티븐 호킹 박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알고 있지만, 정확히 그의 어떤 연구가 그를 스타로 만들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블랙홀을 연구하던 호킹 박사가 남긴 한 마디는 블랙홀처럼 내 마음을 빨아들였다.
 
호킹 박사는 무시무시한 블랙홀에서도 탈출할 방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한 이론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울증이든 블랙홀이든 영원한 감옥은 아니다.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워도 탈출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절망의 블랙홀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으라."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는데 문득 호킹 박사의 위로가 떠올랐다. 이 드라마 배경은 1998년이다. IMF 외환위기라는 블랙홀이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해였다. 드라마 주인공 백이진(남주혁)은 이 거대한 블랙홀에 휩쓸려 방황한다. 아버지 회사는 망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백이진은 이 블랙홀에서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한보철강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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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위기가 본격화했던 시기,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내가 살던 곳엔 한보철강이라는 기업이 있었다. 지금은 이 기업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만 당시엔 재계 14위 대기업이었다. 한보철강은 1997년 부도가 났고, 사실상 이것이 IMF 외환위기의 시작이었다. 거대한 기업이 부도가 나면 그 기업만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한보철강 때문에 먹고사는 하청업체도 다 함께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당시 내 친구들의 아버지들 상당수는 한보철강 혹은 한보철강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그들 중 상당수는 직장을 잃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자리를 찾아 전국 어디론가 뿔뿔이 떠났다. 그렇게 나는 친했던 친구들과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못 하고 이별했다.
 

삼성전자 주식이 600원

현재 코스피 지수는 작년 고점 대비 꽤 많이 조정을 받은 상태로 대략 2700 안팎에 머물고 있다. 1998년 코스피 지수는 어땠을까.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 1000포인트까지 오른 적이 있었던 코스피 지수는 말 그대로 곤두박질쳤고, 1998년 6월에는 280포인트까지 떨어졌다. 한국 주식 시장에서 막대한 돈이 증발했다. 당시 삼성전자 주식 1개의 가격은 대략 600원(액면분할 적용)이었다.
 

원 달러 환율 2000원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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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 경제 이슈 중 하나다 환율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가 공포에 빠지며 안전자산 달러의 가치가 올라갔다. 게다가 미국은 금리 인상까지 준비 중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는 건 달러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뜻이다. 당연히 원 달러 환율이 오를 수밖에 없다. 현재 환율은 1200원대로 치솟은 상태다. 그런데 IMF 때는 어땠을까. 당시 환율은 약 2000원대까지 치솟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마저 학업을 중단하고 조기 귀국을 할 정도였다.
 

저금만 해도 수익률이 20%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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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청년희망적금은 금리가 최대 10%인 상품이다. 요즘 예금, 적금 금리를 고려하면 파격적인 혜택이기에 가입자가 예상치를 훨씬 넘어섰다. 하지만 IMF 위기 직전만 해도 두 자릿수 예금 금리는 흔했다. 은행에 돈을 넣으면 매년 10~12%의 금리로 이자 수익을 얻었다. 1억 원을 은행에 넣으면 대략 한 달에 이자로만 100만 원을 받는 셈이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IMF의 요구로 은행들은 금리를 더 올려야 했다. 최대 20% 금리를 제공하는 상품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당시엔 금융기관마저 망할 수 있다는 공포가 강했다. 그래서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쥔 현금을 선뜻 은행에 맡기려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았다. 
 
20년 이상이 훌쩍 흘렀다.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묘사하는 그 시기는 아주 암울하지만은 않다. 나라가 무너지고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는 시대지만 그 안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짝사랑을 하고, 꿈을 꾸고, 가치 있는 것을 이루기 위해 땀을 흘린다. 그리고 이런 노력 덕분에 결국 우리는 블랙홀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탈출 불가능한 블랙홀은 없다. 아무리 막막하고 주저앉고 싶어도 삶은 계속되기에 이왕이면 탈출구를 찾아 움직이는 편이 좋다. IMF 외환위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는 건 그래서 의미가 있다. 당시엔 탈출 불가능해 보이는 블랙홀이었지만, 우리는 탈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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