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 전엔 '언제 시작하는 지도 몰랐다'라는 반응이었던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었지만, 수많은 종목에서 한국 대표팀의 저력을 보여주며 국민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선수들도 그렇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야 하는 해설자들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어요.
2018 평창 동계 올림픽부터 KBS에서 스노보드 해설위원을 맡았던 배우 박재민이 그 주인공인데요. 자, 일단 박재민은 전국체전 스노보드 서울시 대표선수 출신이자 스노보드 국제심판 자격증 보유자입니다.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재학 중 농구대잔치에서 준우승까지 갔던 선수이며, 학창 시절엔 비보이로도 활동했어요. 이런 이력이 가능한지 여부와는 별개로, 스노보드 해설위원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물입니다.
선수이자 심판으로서의 전문적 지식 뿐만 아니라 VJ 출신 배우로서 보여 준 능수능란한 해설에 시청자들이 호응하기 시작한 건 평창 때부터였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스노보드는 빙상 종목보다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박재민의 해설을 듣기 위해 경기를 본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어요. 특히 시청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을 스노보드 용어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매우 반가웠죠.
더불어 자신이 해설하는 경기에 나오는 선수들의 모든 정보를 꿰고 언급하는 'TMI 해설'이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250명에 달하는 선수들의 이름을 검색하고, SNS 게시물들을 체크하는 것도 모자라 궁금한 점이 생기면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고 해요. 그래서 박재민의 해설에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선수들이 설원이 아닌 곳에서 그린 역사들을 짚어주며 경기 관람에 더 풍성한 배경을 선사하는 거죠.
이번 베이징에선 여성 평형대회전 종목에 나선 슬로베니아의 글로리아 코트니크의 몰랐던 사실들을 언급해 뭉클함을 안겼는데요. 코트니크는 출산 후 은퇴했다가 국가대표로 복귀한 선수입니다. 박재민은 이를 밝히며 "대한민국의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를 낳으면서 경력 단절 혹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이게(코트니크의 출전이)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이겠는가? 여러분도 늦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박재민은 2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스노보드 선수들을 위해 사비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스노보드 선수를 오래하며 했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금전적 문제"라며 "1년 내내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선수를 하는 짧은 3개월 동안 돈을 다 쓴다"라고 말문을 열었어요.
그러면서 "초중고 학생들은 알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부모님 생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며 "코로나19가 오면서 일이 끊기고 2020년엔 경제적으로 휘청했다. 그때 겨울에 스키장에 가서 후배들을 보니 내가 힘들 정도면 이 선수들 부모님은 거의 자영업자신데 훨씬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선수들에게 개인적으로 장학금을 주게 된 이유를 전했죠.
그에게 장학금을 받은 선수 중 한 명은 베이징 최연소 선수 이채운이었습니다. 이채운의 올림픽 출전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개막 후 예비 리스트에 오른 이름을 본 박재민은 너무 기뻐서 목이 메었다고 해요. 박재민 덕분에 올림픽을 보던 사람들은 스노보드 이채운이라는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