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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때 이사를 했다. 살던 곳에서 가까운 빌라에 전세로 들어갔다. 반지하였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빌라와 비교하면 훨씬 쾌적한 집이었지만, 반지하는 반지하였다. 장마철이면 덥고 습했다. 그렇다고 그 시기가 괴로웠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빌라 주민들끼리 친했다. 여름밤이면 빌라 앞에 마련된 평상에 삼삼오오 모여 수박을 먹었다. 이웃 간 소통이라는 게 남아있던 시대였다. 빌라에 살면서 동네 친구도 많이 만들었다. 따뜻한 추억을 켜켜이 쌓은 계절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가족은 또 집을 옮겼다. 이번엔 신축 20평대 아파트였다. 드디어 우리 가족 소유의 집을 얻었다. 빌라에 살 때는 친구들과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아파트로 오고 난 후에는 잘 정돈된 단지 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온갖 장난을 치며 다 함께 컸다. 우리 가족은 그 아파트에서 10년을 살았다. 그리고 또 이사했다. 같은 아파트지만 평수가 넓은 동으로 집을 옮겼다. 그 이후 나는 서울로 상경해서 독립했고, 현재에도 부모님은 그곳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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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반지하 원룸, 빌라 그리고 아파트
」하지만 누구나 처음부터 쾌적한 아파트에서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정에 따라 일단 원룸, 오피스텔, 빌라를 골라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선택권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나는 스무 살 이후 기숙사, 고시원, 반지하 원룸, 투룸 빌라를 거쳐 아파트에 정착했다.
지금 사는 아파트와 비교하면 스무 살 이후 거쳐 왔던 주거지들의 컨디션은 열악하다. 그렇다고 그 시기에 내가 살았던 집들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반지하 원룸에서도 내 나름대로 삶을 살았다. 그 좁은 공간에서도 요리를 하고, 영화를 보며 전율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고민을 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연애도 했다. 부모님과 함께했던 낡은 단독주택, 반지하 빌라에서도 따뜻한 추억을 쌓았듯 말이다. 부모님이 아파트 한 채 거뜬하게 사줄 수 있는 금수저가 아니라면 누구나 사다리를 타듯 차근차근 위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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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마음으로
」그러나 이제 이런 희망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뉴스에서 10억, 20억짜리 아파트 기사만 접하다 보면 허탈감만 쌓인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현재 힘든 시기를 보내는 2030세대 상당수는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하다”라며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런데 지금 2030이 기득권이 될 30년 후에는 어떨까. 당연히 20·30세대는 50·60세대가 돼 있을 것이며, 이들 중 상당수는 내 집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모두 똑같이 내 집 마련이 힘든 시기에 사회생활을 했지만, 누군가는 기어코 집을 사고 누군가는 계속 무주택자로 남아있을 것이란 뜻이다.
이제 막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사회로 나온 사회초년생이라면 ‘나는 벼락거지가 됐다’라는 자괴감에서 하루빨리 빠져 나와야 한다. 지금 당장 열악한 주거지에 살고 있더라도, 자신의 처지를 폄하하면 안 된다. 이제야 사다리를 탔다고 생각하고, 차근히 위로 올라갈 생각을 해야 한다.
눈을 딱 감고 돈을 모아야 한다. 종잣돈을 모으면 서서히 길이 보인다. 10억 넘는 집은 그만 봐도 된다. 대출을 받아서 경기도에 2억대 아파트부터 시작해도 된다. 거기서부터 차근히 올라가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