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혐오할 자격을 원하십니까?_라파엘의 한국살이 #23

왜 한국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계속 실패하는가. 성별, 외모, 나이, 출신 국가, 인종, 피부색 그리고 성정체성과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과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일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혐오할 자격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BY권민지2020.07.03
회사에 다닐 때 면접관 자격으로 신입사원의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다. 내 역할은 지원자의 영어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동료가 이력서를 전달하면서 충격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기대하지 마. 못생겼어!” 능력 평가보다 얼굴 평가가 먼저란 말인가? 면접도 보기 전인데 이미 반쯤 결론이 나 있었다. 예상대로 그 사람은 떨어졌다. 도대체 외모와 업무 능력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지, 아니 그보다 이력서에 사진이 왜 필수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현실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호감형’의 외모가 아니라서(그런데, 이거 굉장히 주관적인 기준 아닌가?), 성별로 인해, 특정 지역 출신이라서, 가난한 동네에 살기 때문에, ‘블루칼라’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피부색이 달라서, 장애가 있어서, ‘인 서울’ 대학 졸업장이 없어서, 나와는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받거나 하고 있을 것이다.
 
사진 라파엘 라시드

사진 라파엘 라시드

어쩌면 본능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자원은 한정적이고 경쟁은 일상적이니, 항상 최선을 선택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집착과 압박감은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도 있다. 내 자녀는 부유한 친구를 사귀었으면 하고, 사교육을 받아 번듯한 대학을 나와야 하며,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을 다녔으면 하는 바람. ‘인물도 경쟁력’인 시대에 이왕이면 잘 생기고 예쁜 사원을 뽑고 싶은 마음. 나와 다른 것, 미지의 무엇에 대한 두려움. 이런 본능에 가까운 감정들이 모여 차별을 일상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다.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차별은 ‘샤이’하다. 은연중에, 뒤에서, 마음 한구석에서, 혹은 끼리끼리 공유하며 대놓고 보이지 않는다. 왜? 차별을 겉으로 표현했을 경우 상대가 받게 될 상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그렇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차별을 했을 때 ‘나’에게 쏟아지는 시선과 비판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차별이 옳지 않은 것임을 말이다.
 
사진 라파엘 라시드

사진 라파엘 라시드

유엔 인권헌장은 인간 모두가 평등함을 명시하고 있고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만인의 평등을 근간으로 한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2019년 8월 20일부터 9월 2일까지, 만 19세 이상 성인 1만3천77명을 대상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진행한 국가 인권실태조사에서 전체 중 51.7%, 20대 이하에서는 65.8%가 혐오 표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성별과 성 소수자, 즉 젠더와 관련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리고 대상자의 77%가 성별과 지역, 사회적 약자 등에 대한 혐오 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여전히 ‘차별금지법’ 제정의 벽은 높기만 하다.. 지난 13년간 6번이나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가 무산되었던 것을 생각해보자. 얼마 전 정의당에서 7번째로 해당 법 제정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일부 세력은 격렬하게 반대 중이다.
 
사진 라파엘 라시드

사진 라파엘 라시드

어떤 사람들은 ‘태생적인 불평등’을 이유로 차별을 정당화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태어날 때부터 능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차별이라는 결과가 따라온다는 논리다. 태생적인 차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학과 암기 능력이 뛰어난 A와 그렇지 않은 B를 차별하는 게 당연하다고? 그럴 리가. 차이는 결코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차이를 인정하는 게 평등을 말하는 첫걸음 아니던가? 한 사람의 인격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의 생식기나, 피부색이나. 지적능력이나, 외모나, 통장 내역이나, 누구와 섹스를 하는 것과는 별개로.
 
누군가는 ‘차별금지법’ 내에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에 따른 차별 금지를 포함하면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성애를 옹호’하면 많은 청소년이 동성애자가 되고 가정을 파탄 낼 뿐만 아니라 출산율을 낮추며 군복무자수가 줄어서 북한의 침략을 받게 된다고 말이다. 또한 ‘에이즈'(사실 HIV이지만)가 퍼지고 정부의 의료 보험 부담 비용이 올라 국가 재정 상태를 악화시킨다고, 결과적으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한국은 멸망하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마지막으로 해당 법이 제정되면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게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정말 그런가?
 
사진 라파엘 라시드

사진 라파엘 라시드

물론 아니다. 우선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사회적 합의에 우선되는 개인의 문제다. 그리고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차별하거나 장려한다고 해서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역사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없었던 그리스는 이미 지도상에서 사라졌어야 한다. 게다가 질병관리본부의 보고서에 따르면(바로 가기), 국내 HIV/에이즈 보균자 중 동성애자는 53.8%, 이성애자는 46.2%로 크게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표현의 자유? 물론 표현의 자유는 기본권 중 하나이지만 무제한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표현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aka 명예 훼손) 그런 자유는 제한되는 게 마땅하다. 실제로 헌법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법률로 제한할 수 있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이것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온갖 막말과 인격 모독이 표현의 자유로 보호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사진 라파엘 라시드

사진 라파엘 라시드

물론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이 사회의 차별이 한순간에 갑자기 사라질 거라 믿지 않는다. 하지만 해당 법 제정을 출발점으로 관행으로 여겨 왔던 부당한 차별들을 하나씩 시정해 나가려는 노력을 기대할 수 있다. 모두가 평등하며 개개인의 인격이 존중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만드는 것에 무슨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단 말인가. 왜 표현의 자유라는 핑계로 ‘혐오할 자격’을 허락해야 하나.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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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과 사진 라파엘 라시드
  • 번역 허원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