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엘르 보이스] 커뮤니티라는 소중한 방

일하는 여성 커뮤니티 뉴그라운드 황효진 대표가 외롭지 않은 이유.

프로필 by 이마루 2024.03.08
©unsplash

©unsplash

커뮤니티라는 소중한 방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는 어김없이 책상 앞에 앉는다. 내가 운영하는 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뉴그라운드’에서 멤버들과 한 주를 돌아보는 주간 회고를 하는 ‘체크아웃 타임’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쉬는 날에는 노트북을 여는 것조차 꺼리지만, 이 시간만큼은 기꺼운 마음으로 노트북과 마주한다.
보통 체크아웃 타임은 이렇게 진행된다. 각자 회고 양식이 세팅된 구글 문서를 열고, 한 주 동안 어떤 일과 활동을 했는지, 그중 무엇이 인상적이었는지, 다음 주는 어떻게 보낼 예정인지 기록한다. 그런 다음 3~4명으로 그룹을 지어 서로의 회고에 코멘트를 남긴다. 예를 들어 2주 전 나는 그다지 좋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회고를 남긴 후 한 멤버로부터 이런 코멘트를 받았다. “안 좋았던 경험에 대해서 ‘별로였다’로 끝내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해석을 하는 모습이 멋져요.” 코멘트를 남기고 나면 오늘의 소감을 나누고 헤어진다. 1주일에 1시간 남짓 보내는 이 시간이 다가오는 한 주를 잘 살아내게 만든다. 몇몇 멤버는 이 시간을 경험하고 나면 월요일을 맞는 마음이 조금 덜 불안하거나 덜 버겁다는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뉴그라운드에 모이는 사람들은 하는 일도, 속한 조직도, 일하는 방식도 모두 다른 이들이다. “뉴그라운드 멤버는 어떤 사람들이야?”라는 질문을 받으면 한 마디로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음… 다양한 일을 다양한 방식으로 하는 여성들이야”라고 두루뭉술하게 답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같은 노동 환경과 조건에 놓여 있지 않고, 같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 일 이야기를 깊이 나눌 수 있을까? 이야기가 겉돌지는 않을까? 물론 개인에게 필요한 일 관련 정보나 지식은 모두 다르다. 다만 뉴그라운드 커뮤니티에서는 ‘건강하게 일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여성들’이라는 느슨한 정체성을 공유하고, 이를 중심으로 일과 생활에 관한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눈다. 팀원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어쩔 수 없이 전달해야 할 때는 어떤 부분에 유의해야 하는지, 회사에서 진행하는 ‘여성의 날’ 이벤트로는 무엇이 좋을지, 생일을 맞아 후원할 만한 단체는 어떤 곳이 있는지…. 일을 잘하기 위한 정보와 지식보다 나 그리고 타인들이 건강하게 일하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 혹은 관점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는 드물다는 걸 알기에 운영자이자 ‘일하는 여성’인 내게도 뉴그라운드는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이 커뮤니티가 내게 필요한 곳이라는 걸 깨달은 시기는 1인 자영업자가 된 이후다. 그동안 조직의 구성원으로, 또 동료와 함께 회사를 운영하는 공동대표로 일했던 나는 2023년 4월부터 혼자 회사의 살림을 책임지는 1인 자영업자가 되었다. 그 후 종종 막막함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내가 하는 일을 목격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지금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올해 우리 회사의 주요 목표는 무엇인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액션을 실행해야 하는지,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새롭게 시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혼자 생각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사소하게는 좋은 성과가 나타났을 때 같이 기뻐하거나 아쉬운 결과에서 오는 실망감을 나눌 동료가 절실했다. 커뮤니티 멤버들과 꾸준히 회고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런 막막함과 외로움은 이전보다 옅어졌다. 나는 혼자 일하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unsplash

©unsplash

몇 달 전 다른 여성 창업가로부터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Cartier Women’s Initiative, 이하 CWI)’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귀가 솔깃해졌다. CWI는 전 세계 여성 창업가들과 그들이 사회에 미칠 긍정적 영향력을 지원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2006년부터 시작됐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업 동력과 추진력을 얻은 여성의 수는 16년간 63개국 297명에 달한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CWI가 협력하는 여성 창업가들의 모임 ‘언더우먼 임팩트 커뮤니티’가 3기째 진행 중이기도 하다. 팀의 다른 구성원들과 고민을 나누기 어려운 조직의 리더로서, 또 능력 증명을 자주 요구받는 여성으로서 여성 창업가들은 여러 겹의 막막함과 외로움에 둘러싸였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해진다.  
 
문화인류학자 김현미가 쓴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책에는 여성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비슷한 조건과 감정 상태에 있는 여성들이 서로에게 소소한 이야기라도 시작해 주고, 일에 대한 태도나 습관 등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주고받을 때 여성 간의 긴장이 풀립니다.”
2019년부터 지금까지 여성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모든 여성에게 자신의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뉴그라운드처럼 이미 존재하는 커뮤니티에 모든 여성이 참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커뮤니티는 꼭 하나의 모양일 필요가 없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커뮤니티에 자신을 끼워 맞출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일하는 여성’이라는 커다란 키워드로 묶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코 한 덩어리로 뭉칠 수 없는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다양한 욕구와 취향, 가치관을 가진 여성이 자신과 비슷한 여성들을 만나는 장을 직접 만들 수 있다면 일하고 살아가는 과정에 필요한 새로운 힌트가 더 많이 생겨나지 않을까. 마침 3월은 ‘3 · 8 국제 여성의 날’이 있는 달이다. 이날을 핑계로 많은 여성이 각자의 자리에서 작더라도 자신의 커뮤니티를 직접 만드는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빌어본다.




황효진
책부터 팟캐스트까지 세심하고 다정한 시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때때로 실패하며 배우는 기획자이자 작가. 건강하게 일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뉴그라운드’를 운영 중이다. 

Credit

  • 에디터 이마루
  • 글 황효진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