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엘르 보이스] 커뮤니티라는 소중한 방
일하는 여성 커뮤니티 뉴그라운드 황효진 대표가 외롭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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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는 어김없이 책상 앞에 앉는다. 내가 운영하는 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뉴그라운드’에서 멤버들과 한 주를 돌아보는 주간 회고를 하는 ‘체크아웃 타임’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쉬는 날에는 노트북을 여는 것조차 꺼리지만, 이 시간만큼은 기꺼운 마음으로 노트북과 마주한다. 커뮤니티라는 소중한 방
」보통 체크아웃 타임은 이렇게 진행된다. 각자 회고 양식이 세팅된 구글 문서를 열고, 한 주 동안 어떤 일과 활동을 했는지, 그중 무엇이 인상적이었는지, 다음 주는 어떻게 보낼 예정인지 기록한다. 그런 다음 3~4명으로 그룹을 지어 서로의 회고에 코멘트를 남긴다. 예를 들어 2주 전 나는 그다지 좋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회고를 남긴 후 한 멤버로부터 이런 코멘트를 받았다. “안 좋았던 경험에 대해서 ‘별로였다’로 끝내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해석을 하는 모습이 멋져요.” 코멘트를 남기고 나면 오늘의 소감을 나누고 헤어진다. 1주일에 1시간 남짓 보내는 이 시간이 다가오는 한 주를 잘 살아내게 만든다. 몇몇 멤버는 이 시간을 경험하고 나면 월요일을 맞는 마음이 조금 덜 불안하거나 덜 버겁다는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뉴그라운드에 모이는 사람들은 하는 일도, 속한 조직도, 일하는 방식도 모두 다른 이들이다. “뉴그라운드 멤버는 어떤 사람들이야?”라는 질문을 받으면 한 마디로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음… 다양한 일을 다양한 방식으로 하는 여성들이야”라고 두루뭉술하게 답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같은 노동 환경과 조건에 놓여 있지 않고, 같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 일 이야기를 깊이 나눌 수 있을까? 이야기가 겉돌지는 않을까? 물론 개인에게 필요한 일 관련 정보나 지식은 모두 다르다. 다만 뉴그라운드 커뮤니티에서는 ‘건강하게 일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여성들’이라는 느슨한 정체성을 공유하고, 이를 중심으로 일과 생활에 관한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눈다. 팀원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어쩔 수 없이 전달해야 할 때는 어떤 부분에 유의해야 하는지, 회사에서 진행하는 ‘여성의 날’ 이벤트로는 무엇이 좋을지, 생일을 맞아 후원할 만한 단체는 어떤 곳이 있는지…. 일을 잘하기 위한 정보와 지식보다 나 그리고 타인들이 건강하게 일하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 혹은 관점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는 드물다는 걸 알기에 운영자이자 ‘일하는 여성’인 내게도 뉴그라운드는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이 커뮤니티가 내게 필요한 곳이라는 걸 깨달은 시기는 1인 자영업자가 된 이후다. 그동안 조직의 구성원으로, 또 동료와 함께 회사를 운영하는 공동대표로 일했던 나는 2023년 4월부터 혼자 회사의 살림을 책임지는 1인 자영업자가 되었다. 그 후 종종 막막함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내가 하는 일을 목격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지금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올해 우리 회사의 주요 목표는 무엇인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액션을 실행해야 하는지,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새롭게 시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혼자 생각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사소하게는 좋은 성과가 나타났을 때 같이 기뻐하거나 아쉬운 결과에서 오는 실망감을 나눌 동료가 절실했다. 커뮤니티 멤버들과 꾸준히 회고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런 막막함과 외로움은 이전보다 옅어졌다. 나는 혼자 일하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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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자 김현미가 쓴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책에는 여성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비슷한 조건과 감정 상태에 있는 여성들이 서로에게 소소한 이야기라도 시작해 주고, 일에 대한 태도나 습관 등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주고받을 때 여성 간의 긴장이 풀립니다.”
2019년부터 지금까지 여성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모든 여성에게 자신의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뉴그라운드처럼 이미 존재하는 커뮤니티에 모든 여성이 참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커뮤니티는 꼭 하나의 모양일 필요가 없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커뮤니티에 자신을 끼워 맞출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일하는 여성’이라는 커다란 키워드로 묶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코 한 덩어리로 뭉칠 수 없는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다양한 욕구와 취향, 가치관을 가진 여성이 자신과 비슷한 여성들을 만나는 장을 직접 만들 수 있다면 일하고 살아가는 과정에 필요한 새로운 힌트가 더 많이 생겨나지 않을까. 마침 3월은 ‘3 · 8 국제 여성의 날’이 있는 달이다. 이날을 핑계로 많은 여성이 각자의 자리에서 작더라도 자신의 커뮤니티를 직접 만드는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빌어본다.

책부터 팟캐스트까지 세심하고 다정한 시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때때로 실패하며 배우는 기획자이자 작가. 건강하게 일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뉴그라운드’를 운영 중이다.
Credit
- 에디터 이마루
- 글 황효진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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