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가 전시장에? 발효와 한식의 맛을 잇는 전시
아름지기의 전시 <장, 식탁으로 이어진 풍경>이 들려주는 맛과 감각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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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등겨장, 약고추장,청장, 된장. 아름지기가 제안하는 현대 일상을 위한 열 가지 장이다.
노란 볕이 쏟아지는 마당 한가운데에 놓인 장독대는 더 이상 일상에서 익숙한 풍경이 아니다. 한때는 마당 한편의 풍경이었고, 계절의 냄새가 담긴 공간이기도 했던 장독대가 이번에는 전시장에 놓였다. 아름지기와 온지음 맛공방이 기획하고 까르띠에가 후원한 가을 기획 전시 <장, 식탁으로 이어진 풍경>은 ‘장(醬)’이라는 오래된 재료를 매개로 잊힌 감각을 다시 꺼내 식탁 위에 올린다. ‘맛’이라는 감각은 얼마나 촘촘하게 삶과 연결돼 있는지. 한식의 본질적 요소인 간장, 된장, 고추장 등 각자의 방식으로 빚은 장에는 오랜 손길과 삶의 리듬이 담겨 있다. 아름지기는 이 이야기를 과학이나 기능으로 설명되지 않는 정서에서 시작한다.

골동반 상차림. 작가 백경원이 만든 골동반 밥그릇과 나물 그릇, 장 그릇에 담아냈다.

상추쌈 상차림과 유물 식기들.

흰죽 상차림과 한정용의 도자기.

정월대보름 복쌈 상차림. 백경원x손민정 작가의 도자기 식기, 죽공예 그릇과 함께.

김동준 작가의 백자에 소담하게 담긴 청국장 상차림.
전시 첫 장면은 ‘장과 음식’이다.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맛공방과 협업해 선보이는 열 가지 장과 그에 어울리는 열 가지 음식은 장이 음식에서 어떻게 맛의 주체가 되는지를 탐색한다. 장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요리를 완성하는 연결자이자 조용한 주연. 풍미를 완성하거나, 다른 재료들이 지닌 맛을 묶거나,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 장의 다양한 얼굴을 따라가다 보면 발효라는 과정이 만들어낸 풍미와 질감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익숙한 식재료들이 낯선 장과 만나 새로운 맛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이 식탁은 발효가 단지 시간이 아닌 감각의 작용임을 증명한다. 두 번째 흐름인 ‘장과 도구’는 장을 다루는 사물에 주목한다. 조금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장의 문화를 다루는 것이다. 장독과 항아리, 국자, 주걱 등은 단지 음식을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한국인의 식문화에 깃든 몸짓과 태도를 상징한다.
장독대는 우리에게 더 이상 익숙한 장소는 아니지만 여전히 일상의 정성이라는 정서적 공간을 상징하며, 장을 푸거나 담는 도구는 그것을 담아내는 손의 태도다. 손의 기억과 재료의 질감, 미감이 얽힌 장 주변의 도구들을 재발견하고 재해석해 장을 과거의 이미지로 묘사하기보다 지금의 식탁에 항상 함께하는 감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가 이 대목에 담겼다. 그 식탁을 구성하는 그릇 역시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장면이다. 금속과 유리, 목재, 흙 등 서로 다른 재료로 공예가들과 협업해 만든 그릇은 장을 현대 식탁에 놓는 수많은 가능성을 실험적으로 제안한다. 전통 식기와 현대 감각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조합은 그릇이라는 사물을 통해 시대를 넘나드는 미감을 보여준다. 발효는 결국 자연과 사람이 엮어낸 시간의 예술이다. 아름지기의 시선은 지난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전통을, 느린 속도로 지속돼 온 오래된 감각을 오늘의 식탁에 지금의 언어로 번역한다.

김경찬의 ‘Volcanic Series’.
1 김경찬 시간을 먹고 자라는 ‘장’의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려본다. 느림의 시간으로 천천히 익어가는 장은 성형과 건조, 소성 과정이 있는 도자기와 닮았다. 평소 작업에 제주 점토(옹기토)를 사용하니 자연스럽게 제주 옹기가 지니는 형태와 색감을 토대로 좀 더 단순하면서도 쓰임이 좋은 식기란 무엇일지 생각하며 제작했다. 제주 점토의 경우 원토를 직접 채취해 사용하니 작은 알갱이나 식물 뿌리 같은 불순물이 있다. 수비 과정을 거쳐 옹기의 투박하면서도 거친 질감을 벗어낸,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박선민의 ‘고요히 머문 시간’.
2 박선민 할머니께서 장독대를 정성껏 관리하던 모습, 은은하게 빛나던 된장의 황갈색, 그 주변을 감싼 구수한 냄새까지. 나에게 너무도 익숙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온기’의 이미지다. 이번 작업은 기억 속 온기를 ‘유리’라는 매체에 천천히 스며들게 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운 장맛, 그 풍경 안의 따스한 온도와 색 그리고 시간이 발효되는 감각을 유리에 담고 싶었다. 그것도 빛과 기억, 감각의 발효가 응축된 조형으로 말이다. 전통 저장 용기의 형태를 살피며 특히 목이 짧고 배가 부른 ‘단지’, 목이 길고 입구가 벌어진 ‘초병’ 형태에 주목했다.

김민욱의 ‘굽이 있는 접시’.
3 김민욱 어릴 때 노랗게 잘 익은 콩을 한 입 가득 씹으면 콩껍질이 톡 터지며 퍼지던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번진다. 평범하지만 맛있었다. 장독 안에서 익어가는 장의 깊은 곳은 갈색으로 변하고, 위는 까맣게 숙성돼 가던 장면도 기억한다. 그런 기억을 내가 다룰 수 있는 방식으로 나무 위에 그려보았다. 장처럼 오래된 것에서 출발하되, 지금의 식탁 위에 자연스럽게 놓일 수 있도록 시간을 더하거나 뺐다. 옛날에 사용하던 소쿠리 · 함지박 · 소반 같은 걸 떠올렸고, 너무 정제되지 않도록, 그렇다고 낡아 보이지도 않게 나무의 자국, 갈라짐, 흐르는 결을 살리되 음식을 담을 수 있도록 마감을 꼼꼼히 다졌다.

백경원의 ‘골동반 밥그릇과 나물 그릇, 장 그릇’.
4 백경원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 혹은 기술을 숙달하는 과정 모두 시간이 걸린다. 만들고, 건조하고, 굽고, 유약을 바르고 또다시 굽기까지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 번에 잘 되지 않아 여러 번 시도해야 하는 일도 많다. 지난한 과정이지만 쌓이는 시간만큼 깊어지는 면도 있다. 느리게 완성한 장이 풍부한 맛을 내는 것처럼. 장을 담그는 사람 역시 조급해하지 않고, 균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인내하며 기다린다. 한발 앞서려는 마음이나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현재의 감각’을 장에게서 배워본다.

황경원의 ‘국자와 짧은 국자’.
5 황경원 할머니는 집에서 직접 메주를 만들었다. 집 안에서는 자주 쿰쿰한 냄새가 났다. 할머니가 끓여준 된장찌개와 정구지(부추)만 있어도 밥 두 공기는 뚝딱 해치웠던 기억. 그 소박하고 따뜻한 음식의 이미지에서 시작한 작업. 장을 위한 도구와 식기를 손으로 깎아 만들며 나무라는 재료의 결이나 색보다 ‘사용하는 감각’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밀도 높고 단단한 단풍나무를 사용해 얇지만 안정적인 두께로 제작하기 위해 섬세한 조율을 거쳤다. 숟가락의 술잎은 얇고 가볍게 다듬고, 주걱의 손잡이는 손에서 놀지 않도록 두께감을 더했다. 쥐었을 때의 감촉, 입에 닿았을 때의 가벼움 등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금속 식기처럼 많은 이에게 익숙한 감각을 담고 싶었다. 오늘의 식탁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될 사물이 지녀야 할 ‘적당함’을 찾기 위한 여정.

손민정의 ‘죽지판’.
6 손민정 비록 시간은 걸리지만, 정성을 담아 대숲을 가꾸고 대나무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나무에 마무리 손길을 보태는 나와 만나게 된다. 죽공예는 오랫동안 우리의 부엌 문화에 자리 잡고 있던 식기다. 다만 재료의 특성상 물기가 있는 음식을 장기간 보관하기 어려웠다. 물론 옻칠 과정을 추가해 다양한 음식을 담는 방법이 있지만, 대나무 본연의 색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름지기가 제안해 준 도자기와의 협업으로 대나무 본연의 색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음식을 담아내는 식기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백경원x손민정의 ‘정월대보름 복쌈 상차림’.
7 정영균 어린 시절 어머니가 쓰시던 옹기 소품과 지금의 어머니들이 쓸 법한 접시의 이미지가 이번 작업의 출발점이다. 나는 흙을 ‘정직한 재료’라고 부른다. 재료의 본질을 지키지 못하면 옹기의 가치도 사라진다. 흙은 손길과 시간에 따라 질감이 변하고, 마침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생명의 순환을 품고 있다. 이번 작업에서도 그 믿음을 기초로 삼았다. 발효와 기다림, 정성으로 완성되는 장의 과정은 옹기와 닮아 있다. 저장이 아닌 발효, 단순한 보관이 아닌 변화와 성숙. 그것은 선조들이 남겨준 지혜이며, 발효의 그릇으로서 옹기가 가지는 본질적 가치다.

한정용의 ‘흰죽 상차림’
8 한정용 전통을 바탕으로 한 좋은 그릇이란 무엇일까. 도자 작업에서는 단순히 시각적 형태만이 아니라 촉감과 질감, 소리 같은 감각적 요소가 중요하다. 특히 그릇은 두 손으로 들어 올려 만지는 감각 그리고 사용 중 들리는 미묘한 소리 등이 작품의 총체적 인상을 결정짓는 요소가 된다. 흰죽에 곁들일 찬기와 간장 그릇은 그릇의 색감과 형태에서 유쾌하고 흥미로운 구성을 시도한 것. 흰죽 그릇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사발 형태를 택했고, 찬기는 높낮이의 변화를 통해 리듬감을 더했다. 간장 그릇은 작고 앙증맞게 제작했는데, 흰죽 위에 간장을 톡 떨어뜨리는 행위를 떠올리며 만들었다.

양유완의 ‘상(床)’.
9 양유완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이다. 음식이 돋보이려면 식기와 도구가 좋은 옷이 돼줘야 한다. 이것들이 과하게 화려하면 음식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리하여 조금은 투박하지만 안정감 있고, 반짝이지만 튀지 않도록 모양을 내는 데 공을 들였다. 백제의 세발토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 세발토기가 우리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식탁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석우 & SWNA 디자이너의 ‘우물 용기’.
10 이석우&SWNA 장독대는 옹기토로 만든다. 옹기토라는 것은 실제로 물은 막아주고 공기를 통하게 해 건축 자재로는 훌륭한 재료다. 물은 막고 공기를 통하게 하는 특징을 건물에 갑옷을 입힌다는 개념으로 해석해 동시대의 흔한 주거 형태, 아파트나 빌라 혹은 오피스텔이나 원룸에서도 장을 발효할 수 있고 보관하기에도 용이한, 사용성이 좋은 옹기를 고민했다. 옹기토를 3D 프린트로 출력한 뒤 고쳐서 소성하는 작업은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깨진 조각과 여러 프로토타입을 남긴 과정 역시 의미 있는 기억이다.

안성규x이예슬(온지음 디자인실)의 ‘반(盤), 담아 옮기는 결’.
11 안성규 장은 겉으로는 아무 일 없어 보이지만, 안에서는 계속 변화하는 물질이다. 사람이 손을 뗀 자리에서 스스로 익어가는 물성에 주목했다. 장이라는 물질을 직접적으로 형상화하기보다 옻칠과 흙을 쌓고 연마하는 과정을 통해 밀도와 결이 표면에 드러나도록 했다. 거듭된 연마를 통한 과정이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 점이 장의 감각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연마하면서 느낀 촉감과 옻칠의 경화를 위한 온도와 습도, 재료가 쌓이는 물리적 시간 같은 요소들이 작업 방향이 됐다. 느림은 과정을 믿는 일이다.
온지음 디자인실(이예슬) 장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모든 과정에서 꽉꽉 눌러 담겨 만들어진 무게감은 단순한 물리적 무게를 넘어 시간과 정성, 기억이 응축된 감각으로 내 안에 남아 있다.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낸 깊이감은 물건의 분위기를 만들곤 하는데, 오래도록 손길이 머문 물건에서 그런 분위기가 시각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업에서는 손에 닿았을 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형태와 무게감을 고려했고, 이 물건을 사용할 사람의 손길과 함께 시간이 쌓이며 만들어질 또 다른 분위기를 담고자 했다.

김동준의 ‘백자’.
12 김동준 수백 년을 이어온 씨간장을 맛본 경험은 장과 도자기가 닮아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시간과 정성, 그리고 숙성의 과정. 나는 매년 겨울 1년 뒤에 쓸 백토를 준비하고, 제한된 재료 속에서 한 점 한 점에 마음을 기울인다. 장을 담는 어머니의 손맛처럼, 도자기에도 보이지 않는 감각이 스며든다. 도자기를 만드는 일에서 시각은 일부일 뿐이다. 장을 담는 어머니의 손맛처럼, 도자기에도 보이지 않는 감각이 스며든다. 재료와 가마, 기술을 넘어서는 것은 작가 스스로의 본성을 찾고 좋은 것을 채워 나가는 과정이라 믿는다. 긍정적인 생각, 좋은 마음, 간절한 감정 같은 것들.

이인진의 ‘양념병’.
13 이인진 묽은 간장, 걸쭉한 된장, 때로는 식초나 술까지 담을 수 있는 그릇들. 평소에도 음식을 좋아하고, 직접 만든 그릇을 일상에서 사용해 왔기에 장 담는 그릇과 도구의 동시대 쓰임과 형태를 고민했다. 뚜껑이 있는 구조, 숟가락을 꽂을 수 있는 통처럼 식탁뿐 아니라 조리대 위에도 어울릴 수 있는 크기와 비율을 조율하며, 이 물건들이 실용적이면서도 정서적 깊이감과 아름다움을 품어내길 바랐다. 내가 직접 만드는 흙은 색감의 변화가 미묘하게 다르고, 그 과정에서 철분이 점점이 박히거나 예상치 못한 표정이 드러난다. 이번에는 전통 도자기의 익숙한 표면 처리에서 벗어나 시루 형태나 다양한 표면 변화를 실험하기도 했다.

이지호의 ‘적틀’.
14 이지호 ‘장’을 다루는 도구를 만들기 위해 과거의 유물을 연구하고 재현해 봤지만, 현대의 조리 환경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깨닫는다. 국자의 손잡이는 현대의 높아진 부엌 환경을 고려해 과거의 직각 형태보다 완만하게 기울였다. 주걱과 숟가락은 오늘날의 사용감에 맞춰 작게 만들고, 얇은 손잡이가 휘지 않도록 둥글게 말아 제작하는 조상의 지혜를 담아냈다. 도구의 중요한 가치는 얼마나 사용하기 쉬운지에 달려 있다. 직관적인 디자인을 통해 손이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절제된 곡선과 망치 질감을 담아 유기의 멋을 보여주려 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장 문화의 감각과 정서가 다채로운 풍경으로 펼쳐지는 <장, 식탁으로 이어진 풍경>전.
전통을 새롭게 감각하는 법
‘장’이라는 가장 느린 음식부터 우리는 지속 가능성과 미감 그리고 삶의 자세를 배운다. 이 전시는 우리의 식탁에 관한 이야기다. 오는 11월 15일까지 재단법인 아름지기에서 열리는 전시 <장, 식탁으로 이어진 풍경>을 기획한 아름지기 전시팀과의 인터뷰.
지금 아름지기와 온지음이 ‘장’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 전시가 우리 시대의 어떤 필요와 연결될 수 있을까
장은 한식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식문화이자 K푸드의 세계적 확산 속에서 여전히 본질을 이루는 요소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슬로 푸드와 채식, 건강식 등 식문화 트렌드를 고려했을 때 발효라는 오랜 기술과 지혜를 담은 한국의 장 문화는 시대가 요구하는 지속 가능성과 건강성에 부합하는 식재료다. 한국 고유의 ‘메주 발효’ 방식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식문화다. 이번 전시에서 아름지기와 온지음이 제안하는 열 가지 장을 통해 다채로운 맛의 스펙트럼을 전하려고 했다. 전통 장 문화의 전반을 폭넓게 조망하며, 현대인의 식탁 위에 장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다양한 음식도 함께 소개한다. 나아가 장을 담그는 방식과 그릇, 저장 공간 등은 단순한 기능을 넘어 한국적 미감이 깃든 생활 문화로 볼 수 있다. 공예가와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장독과 저장 방식, 저장 용기 등을 현대적 미감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장 문화를 보다 입체적이고 동시대적 시선으로 제안하고자 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대구장, 천리장, 두부장, 장똑똑이, 어육장, 청국장. 아름지기가 제안하는 현대 일상을 위한 열 가지 장이다.
전시에서 ‘전통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전통을 말하는 것’에 대해 고민한 부분이 있다면
아름지기는 우리 일상에 정말 유용한 잠재력으로써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방식을 늘 고민한다. 아름지기가 바라보는 전통은 새롭게 발견해야 할, 숨은 원석과 같다. 2004년에 시작해 22회째를 맞는 아름지기 기획 전시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우리 문화를 선보여왔다.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과 깊은 가치를 지닌 문화를 현재 시점에서 바라보고, 그 속에 담긴 지혜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전통 장과 장을 활용한 음식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식’이기도 하지만, 전통의 권위 혹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지 않다. 전통의 정성과 지혜, 미의식을 담고 있지만 오늘날 식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 한식 전문가와 공예 장인, 디자이너가 함께 고민해서 차려낸 <장, 식탁으로 이어진 풍경>은 전통을 직접적으로 외치기보다 관람자들이 전통을 궁금해하고, 질문하고, 스스로의 일상과 연계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장면을 선보인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장 문화의 감각과 정서가 다채로운 풍경으로 펼쳐지는 <장, 식탁으로 이어진 풍경>전.
전시 공간 디자인이나 감각적 흐름에서 둔 구조적 장치는
이번 전시의 공간 디자인은 지난해 기획전 <방, 스스로 그러한>을 함께한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와 다시 협업했다. 식문화는 단지 먹고 마시는 행위만이 아니라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와 함께하는지, 그 모든 맥락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다. 그래서 전시 공간 역시 음식을 담는 그릇처럼 그 자체로 철학과 미감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태희는 아름지기가 추구하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를 공간에 녹여냈다. 특히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철학, 장이라는 발효 음식이 지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완성되는 지혜와 미감을 전시장 전체에 담으려 했다. 구조적으로는 전시를 감각적으로 감상하면서도 오랜 시간 자연에 기대 완성되는 장의 속성을 체감할 수 있도록 공간 흐름을 설계했다.
전통 식문화에서 미감(美感)은 종종 간과되곤 한다. 이번 전시는 식문화의 미학을 어떤 방식으로 회복하거나 새롭게 정의하려 했나
아름지기는 전통을 이야기할 때 미감을 분리하지 않으며, 전통적 미감과 현대적 미감을 어떻게 조화롭게 담아낼 수 있을지 늘 고민해 왔다. 전통 식문화는 단순히 ‘무엇을 먹는가’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담고, 어떻게 즐기는가’를 포함하는 총체적 문화다. 이번 전시도 장을 활용한 음식은 온지음에서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구성했고, 그 음식을 담는 그릇은 전시를 위해 작가들이 새롭게 디자인하거나 재구성한 작품들이다. 음식과 그릇, 공간, 도구까지 모두 전통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장이라는 전통 소재를 통해 한국 식문화의 미감이 어떻게 현대적 실용성과 어우러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궁극적으로 식문화와 미의식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전통이 오늘의 삶에서 새롭게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장을 다룬 이번 전시는 결국 식문화와 미의식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장’ 문화를 다룰 때 발효 원리와 과정, 그로 인한 음식 맛, 영양학적 설명을 중점적으로 하거나, 이 모두를 아우르는 조상의 놀라운 과학적 지혜에 방점을 찍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설명은 장을 다루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아름지기의 이번 전시는 음식의 한 요소로서 장의 이론적 측면을 깊이 파고들기보다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장을 다루고, 마음이 담긴 음식을 만들고, 아름다운 상차림으로 차려내는 우리 식문화를 통해 일상에 깃든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길 바란다. 바쁜 현대 생활에서 장으로 대표되는 느림, 공동체, 정성이 담긴 식탁 위의 풍경은 일상 속의 미의식이라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느린 음식, 느린 삶, 느린 감각. ‘느림’이라는 시간성은 이 전시에서 어떻게 다뤄지는가
전시 안팎으로 시간의 흐름이 쌓아 올리는 가치를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아름지기의 이전 전시에 비해 훨씬 많은 공예 작가가 참여해 하나하나 정성스러운 손길이 느껴지는 작품이 대다수다. 자연과 함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장이 있고, 음식에는 한식 전문가들의 정성이 담겨 있다. 전시를 오픈할 즈음 문득 ‘장’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장은 다루고 싶다고 해서 조급하게 만들어 선보일 수 없는 전시 주제였던 것 같다. 스물두 번의 기획 전시, 일곱 번의 식문화 전시를 함께해준 전문가, 후원자, 관람자 모두의 마음이 익어가면서 이번 전시 <장, 식탁으로 이어진 풍경>이 완성됐다. 놀랍게도 지난 11년 동안 변함없이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잇는 아름지기 기획 전시를 후원해 온 까르띠에, 12년 동안 식문화 전시를 함께 고민하고 장이 익어가는 시간을 함께한 온지음 맛공방 연구원들, 이인진 작가를 비롯해 전시마다 정성스러운 손길로 작품을 제작해 준 공예 작가와 장인들의 마음이 함께 익어가는 중이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ARUMJI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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