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블란쳇은 어떻게 ‘리디아 타르’란 괴물을 탄생시켰나_요주의여성 #81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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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블란쳇은 어떻게 ‘리디아 타르’란 괴물을 탄생시켰나_요주의여성 #81

정점에 오른 '마에스트로'의 추락. 'TAR 타르' 속 위험하고 위대한 케이트 블란쳇에 대하여.

박지우 BY 박지우 2023.02.27
영화 〈타르〉에서 ‘마에스트로’로 분한 케이트 블란쳇

영화 〈타르〉에서 ‘마에스트로’로 분한 케이트 블란쳇

클래식 음악을 배경 삼아 케이트 블란쳇의 ‘지휘 연기’를 실컷 감상하겠거니 생각한 영화는 예상보다 더 모던하고 도발적이었습니다. 영화 〈TAR 타르〉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첫 여성 상임 지휘자 ‘리디아 타르’란 가상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가상 인물임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하는 리디아 타르가 너무나 ‘실존’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이후의 오늘날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매우 동시대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속 리디아 타르는 남들이 우러러보는 재능과 커리어를 지닌 뛰어난 음악가입니다(현실에는 아직까지 세계 3대 필하모닉에 여성 상임 지휘자가 없다는 걸 고려한다면 실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지요). 7년 동안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있는 그는 말러 교향곡 5번 녹음과 회고록 출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으로 같은 직장의 콘서트 마스터인 샤론(니나 호스)과 함께 입양한 딸을 양육하고 있기도 합니다. 미술관 같은 아파트에서 살며 은빛 포르쉐를 몰고 다니는 리디아의 인생은 완벽해 보입니다.    
 
클래식 음악계를 배경으로 한 〈타르〉는 관련 지식이 많으면 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이긴 합니다. 최초로 뉴욕필을 지휘했던 여성 지휘자 안토니아 브리코, 리디아 타르의 ‘모델’이라 소문(?)났던 지금 가장 유명한 여성 지휘자 마린 알솝, 우리에게 친숙한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의 이름도 언급되지요. 하지만 클래식을 잘 모른다 해도 영화를 보는 데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음악이나 젠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권력’에 관한 이야기이니까요.
 
영화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

영화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

영화는 정점에 있는 이 탁월하고 오만한 예술가의 ‘몰락’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야심가인 리디아는 자신의 성취에 도취되어 있습니다. 영화 초반 길게 이어지는 인터뷰 장면(마치 실제처럼 느껴지는)에서 리디아는 ‘마에스트라’가 아니라 ‘마에스트로’라고 불리길 원하며, 자신이 여성인 것은 자신의 업적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단호히 말합니다. 수트를 즐겨 입고 자신을 딸의 ‘아버지(father)’라고 소개하는 그는 과거 거장이라 불린 남성 권력자들이 했던 방식과 동일하게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화려한 언변과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교묘하게 주변 이들을 조종합니다.  
 
10분이 넘는 롱테이크로 진행되는 줄리아드 마스터 클래스 장면은 리디아가 어떤 인물인지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에서 가장 논쟁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맥스라는 이름의 남학생이 “유색인종 팬젠더인 저로서는 여성혐오적인 삶을 산 바흐의 음악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워요”라고 말하자 리디아는 탄식하며 그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집요하게 대화를 이어갑니다. 음악가는 편견 없이 음악과 정면으로 마주봐야 한다고,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바흐 음악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학생의 태도에 변화가 없자 끝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교실을 떠나는 학생의 뒤통수에 대고 외칩니다. “네 뇌의 설계자는 소셜미디어가 분명해!”
 
이 장면에서 누군가는 (극 속의 학생처럼) 불쾌함을 느낄 것입니다. 리디아 타르는 자신이 설립한 여성 음악가 육성 프로그램의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한 성추문이 불거지면서 나락의 길을 걷습니다. 영화는 이처럼 문제적 인간 리디아 타르를 통해 예술가의 업적과 도덕성에 관한 오래된 논쟁을 비롯해 권력형 섬범죄와 미투 운동, 캔슬 컬처 등 현시대의 복잡하고 예민한 주제들을 건드립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끔찍한 포식자들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를 여성으로 그린 이유가 뭘까? 혹시 영화가 그들을 변호하거나 옹호하는 건 아닐까? 토드 필드 감독은 영리하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스스로 설명하길 피합니다.
 
영화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

영화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

영화와 관련한 해석과는 별개로, 케이트 블란쳇의 경이로운 연기력에 대해서는 누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찰랑대는 수트와 셔츠를 입고 등장하는(함께 영화를 본 스타일리스트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더 로우 룩북 같은”) 그의 모습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절대 권력을 지닌 일인자의 카리스마 있는 면모부터 작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불안과 죄의식에 시달리는 모습까지, ‘리디아 타르’란 괴물이자 입체적 인간을 생생히 살아 숨쉬도록 합니다. 왕(〈엘리자베스〉)부터 빌런(〈토르: 라그나로크〉)까지 한계 없는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주며 〈블루 재스민〉과 〈캐롤〉을 통해 찬사를 자아냈던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가 또 다른 경지에 오른 느낌입니다.
 
케이트 블란쳇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타르〉는 매우 도발적인 영화예요. 제도적 권력의 부패한 본성에 대한 고찰이라고 할 수 있죠. 그건 성별이나 성적 취향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쳐요" 열린 마음으로 극장을 찾아 〈타르〉의 낯섦과 불편함을 마주해보길 권합니다. 리디아 타르가 말했듯, 위대한 작품은 질문을 던질 뿐 그 답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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