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타르〉에서 ‘마에스트로’로 분한 케이트 블란쳇
영화 속 리디아 타르는 남들이 우러러보는 재능과 커리어를 지닌 뛰어난 음악가입니다(현실에는 아직까지 세계 3대 필하모닉에 여성 상임 지휘자가 없다는 걸 고려한다면 실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지요). 7년 동안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있는 그는 말러 교향곡 5번 녹음과 회고록 출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으로 같은 직장의 콘서트 마스터인 샤론(니나 호스)과 함께 입양한 딸을 양육하고 있기도 합니다. 미술관 같은 아파트에서 살며 은빛 포르쉐를 몰고 다니는 리디아의 인생은 완벽해 보입니다.
클래식 음악계를 배경으로 한 〈타르〉는 관련 지식이 많으면 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이긴 합니다. 최초로 뉴욕필을 지휘했던 여성 지휘자 안토니아 브리코, 리디아 타르의 ‘모델’이라 소문(?)났던 지금 가장 유명한 여성 지휘자 마린 알솝, 우리에게 친숙한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의 이름도 언급되지요. 하지만 클래식을 잘 모른다 해도 영화를 보는 데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음악이나 젠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권력’에 관한 이야기이니까요.

영화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
10분이 넘는 롱테이크로 진행되는 줄리아드 마스터 클래스 장면은 리디아가 어떤 인물인지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에서 가장 논쟁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맥스라는 이름의 남학생이 “유색인종 팬젠더인 저로서는 여성혐오적인 삶을 산 바흐의 음악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워요”라고 말하자 리디아는 탄식하며 그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집요하게 대화를 이어갑니다. 음악가는 편견 없이 음악과 정면으로 마주봐야 한다고,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바흐 음악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학생의 태도에 변화가 없자 끝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교실을 떠나는 학생의 뒤통수에 대고 외칩니다. “네 뇌의 설계자는 소셜미디어가 분명해!”
이 장면에서 누군가는 (극 속의 학생처럼) 불쾌함을 느낄 것입니다. 리디아 타르는 자신이 설립한 여성 음악가 육성 프로그램의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한 성추문이 불거지면서 나락의 길을 걷습니다. 영화는 이처럼 문제적 인간 리디아 타르를 통해 예술가의 업적과 도덕성에 관한 오래된 논쟁을 비롯해 권력형 섬범죄와 미투 운동, 캔슬 컬처 등 현시대의 복잡하고 예민한 주제들을 건드립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끔찍한 포식자들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를 여성으로 그린 이유가 뭘까? 혹시 영화가 그들을 변호하거나 옹호하는 건 아닐까? 토드 필드 감독은 영리하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스스로 설명하길 피합니다.

영화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
케이트 블란쳇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타르〉는 매우 도발적인 영화예요. 제도적 권력의 부패한 본성에 대한 고찰이라고 할 수 있죠. 그건 성별이나 성적 취향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쳐요" 열린 마음으로 극장을 찾아 〈타르〉의 낯섦과 불편함을 마주해보길 권합니다. 리디아 타르가 말했듯, 위대한 작품은 질문을 던질 뿐 그 답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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