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바빌론〉 스틸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자 충격적이거나 자극적이었던 감각들이 휘발되면서, 영화의 메시지와 몇몇 장면들이 머릿속에 계속 리와인드 되더군요. 인간은 유한하지만 예술은 무한하다는 것. 나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위대한, 영원한, 어떤 작업의 일부가 되고 싶은 마음. 곱씹게 되는 강렬하고 마법 같은 장면들 속에 바로 섬광처럼 빛나는 마고 로비가 있었습니다.
1920년대 할리우드 태동기, 스타 지망생 넬리 라로이로 분한 마고 로비는 레드 시폰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이어지는 열정적인 댄스 시퀀스는 그야말로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들죠. 대타로 출연하게 된 (난리법석의) 영화 촬영장에서 감독의 지시에 따라 본능적으로 눈물 연기를 펼치는 장면 또한 잊히지 않습니다. 타고난 스타의 본성이 발휘되는 동시에 넬리의 연약함과 상처가 드러나는 실로 마법 같은 순간이지요.

영화 〈바빌론〉의 마고 로비

영화 〈바빌론〉의 마고 로비
호주 출신의 마고 로비는 어린 시절을 농장에서 보내고 일찍부터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다고 하죠. 배우에 대한 꿈을 품고 LA에 당도한 그는 2013년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통해 주목받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상대로 대담하고 관능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누구나 “저 여자 누구야?”라고 물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요. 그 이후 팜므 파탈, 누군가의 와이프 역할이 쏟아졌지만 마고 로비는 남들이 정해 놓은 틀에 갇히길 거부했습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할리퀸 역할을 맡아 깜짝 놀랄 ‘광인’ 연기를 펼친 그는 〈아이, 토냐〉에서 논란 많은 ‘악녀 스케이터’ 토냐 하딩을 입체적으로 그려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요.

마고 로비의 놀라운 얼굴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아이, 토냐〉

마고 로비의 놀라운 얼굴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아이, 토냐〉
올해 개봉 예정인 마고 로비의 차기작 〈바비〉 또한 럭키챕이 제작하는 작품으로, 그레타 거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아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죠. ‘섹시한 금발 미녀’로 소비되길 거부하고 직접 게임에 뛰어들어 판도를 바꾸고 있는 마고 로비, 그가 연기한 바비가 특별할 것이란 건 이미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2018년 〈엘르〉 미국판에 실렸던 마고 로비 커버 인터뷰에 공개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합니다. 마치 영화처럼 상상되는, 마고 로비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해요.
자신에게, 자신의 힘으로 꿈꾸던 블루 박스를 선물한 여자. 〈바빌론〉 속 넬리 라로이는 잠시 반짝이다 사라졌지만, 마고 로비는 ‘영원’을 살겠지요. 자신의 힘으로, 시네마 속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