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 로비가 꼭 <바빌론>의 넬리여야 했던 이유_요주의여성 #80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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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로비가 꼭 <바빌론>의 넬리여야 했던 이유_요주의여성 #80

<바빌론>의 넬리 라로이는 어둠 속에 사라졌지만, 마고 로비는 영원히 살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시네마 속에서.

박지우 BY 박지우 2023.02.10
영화 〈바빌론〉 스틸

영화 〈바빌론〉 스틸

개봉 첫날, 〈바빌론〉을 보고 난 후 아무래도 이 영화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휘몰아치는 광란과 혼돈의 대서사시, 극장을 나와서도 붉은빛의 잔상이 아른거리고 영화 속 배설물 냄새가 코끝에 느껴지는 듯했죠. 다들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따라 〈바빌론〉에 대한 감상은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미친 사랑’에 비하면 내 사랑은 너무 부족한가 보다, 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이 영화를 떠나보내려 했죠.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자 충격적이거나 자극적이었던 감각들이 휘발되면서, 영화의 메시지와 몇몇 장면들이 머릿속에 계속 리와인드 되더군요. 인간은 유한하지만 예술은 무한하다는 것. 나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위대한, 영원한, 어떤 작업의 일부가 되고 싶은 마음. 곱씹게 되는 강렬하고 마법 같은 장면들 속에 바로 섬광처럼 빛나는 마고 로비가 있었습니다.
 
1920년대 할리우드 태동기, 스타 지망생 넬리 라로이로 분한 마고 로비는 레드 시폰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이어지는 열정적인 댄스 시퀀스는 그야말로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들죠. 대타로 출연하게 된 (난리법석의) 영화 촬영장에서 감독의 지시에 따라 본능적으로 눈물 연기를 펼치는 장면 또한 잊히지 않습니다. 타고난 스타의 본성이 발휘되는 동시에 넬리의 연약함과 상처가 드러나는 실로 마법 같은 순간이지요.
영화 〈바빌론〉의 마고 로비

영화 〈바빌론〉의 마고 로비

영화 〈바빌론〉의 마고 로비

영화 〈바빌론〉의 마고 로비

영화 속 넬리 라로이의 결말은 (그 시대 많은 여성이 그러했듯) ‘비극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계속해서 길을 잃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나쁜 선택을 하다가 끝내 사그라든 불꽃. 처음에 영화를 보고 “좋아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넬리의 삶이 애처롭고 안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마고 로비가 아니었다면 넬리 라로이는 더욱 ‘피해자’나 ‘희생양’처럼 그려졌을지 모릅니다. 넬리 라로이를 ‘반짝임’으로 기억되게 하는 건,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존재하는 마고 로비가 있는 덕분입니다  
 
호주 출신의 마고 로비는 어린 시절을 농장에서 보내고 일찍부터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다고 하죠. 배우에 대한 꿈을 품고 LA에 당도한 그는 2013년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통해 주목받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상대로 대담하고 관능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누구나 “저 여자 누구야?”라고 물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요. 그 이후 팜므 파탈, 누군가의 와이프 역할이 쏟아졌지만 마고 로비는 남들이 정해 놓은 틀에 갇히길 거부했습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할리퀸 역할을 맡아 깜짝 놀랄 ‘광인’ 연기를 펼친 그는 〈아이, 토냐〉에서 논란 많은 ‘악녀 스케이터’ 토냐 하딩을 입체적으로 그려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요.
마고 로비의 놀라운 얼굴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아이, 토냐〉

마고 로비의 놀라운 얼굴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아이, 토냐〉

마고 로비의 놀라운 얼굴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아이, 토냐〉

마고 로비의 놀라운 얼굴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아이, 토냐〉

〈아이, 토냐〉는 마고 로비가 2014년 세 명의 친구와 차린 회사 럭키챕(Luckychap)이 제작한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럭키챕을 통해 그는 여성 중심의 각본을 개발하고 여성 창작자들을 지원했으며 때로는 자신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마고 로비는 배우로서, 프로듀서로서 할리우드 상업 영화와 작은 규모의 영화를 오가며 자신만의 궤적을 만들어갔습니다.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에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역을 맡아 또 한 번 변신을 이뤘고,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에서 샤를리즈 테론, 니콜 키드먼과 호흡을 맞췄으며, 할리 퀸 솔로 무비 〈버즈 오브 프레이: 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프라미싱 영 우먼〉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올해 개봉 예정인 마고 로비의 차기작 〈바비〉 또한 럭키챕이 제작하는 작품으로, 그레타 거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아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죠. ‘섹시한 금발 미녀’로 소비되길 거부하고 직접 게임에 뛰어들어 판도를 바꾸고 있는 마고 로비, 그가 연기한 바비가 특별할 것이란 건 이미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2018년 〈엘르〉 미국판에 실렸던 마고 로비 커버 인터뷰에 공개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합니다. 마치 영화처럼 상상되는, 마고 로비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티파니앤코의 작은 파란 상자를 선물 받는 걸 봐왔어요. 항상 궁금했죠. 언젠가 나도 저 파란 상자를 받게 될까? 뉴욕에 건너와 내 길을 찾기 위해 분투하여 첫 월급을 받게 됐을 때, 곧장 5번가에 있는 티파니 매장에 가서 비행기 모양의 작은 팔찌 장식을 샀어요. 아마 그곳에서 파는 것 중 가장 싼 제품이었을 거예요. 최고의 기분이었죠. 나도 드디어 파란 상자를 가졌다! 그것도 내 힘으로!
-〈엘르〉 미국 2018년 2월호 중에서
 
자신에게, 자신의 힘으로 꿈꾸던 블루 박스를 선물한 여자. 〈바빌론〉 속 넬리 라로이는 잠시 반짝이다 사라졌지만, 마고 로비는 ‘영원’을 살겠지요. 자신의 힘으로, 시네마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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