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
할리우드에서 ‘신’으로 군림하던 하비 와인스타인의 추악한 행위는 이미 뉴스를 통해 많이 전해졌지요. 마리아 슈레이더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가해자 와인스타인을 등장시키지 않고, 성범죄 장면을 재연하지도 않습니다. 영화가 집중하는 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마음과 용기가 더해지는 과정입니다. 두 기자가 얼마나 끈질기게 증거를 수집하고 진심을 다해 취재원을 설득해 나갔는지,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 기사 속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겁니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
영혼을 갉아먹는 그 날의 기억을 홀로 품은 채 살아가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한 이유는 결국 ‘다른 여성들을 위해서’ 였습니다. 더 이상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메건 투히 기자는 망설이는 그들에게 진심을 다해 말합니다. “과거에 겪으신 일을 제가 바꿀 순 없지만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건 우리가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유방암 수술을 앞두고 자신의 일을 기사화하는 걸 허락한 로라 매든은 이렇게 덧붙이지요. “제 세 딸이 그런 폭력에 순응하며 살기 바라지 않아요.”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
영화는 취재 과정과 더불어 두 기자의 사적인 삶에 대한 묘사에도 시간을 들입니다. 메건 투히는 임신 중에 기사에 반대하는 세력의 협박 전화에 시달리기도 하고 출산 후에는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합니다. 두 아이를 기르는 조디캔터는끊임없는 업무 연락과 장거리 출장으로 육아에 어려움을 겪습니다(남편들이 화를 내거나 불평하는 장면이 나올까 봐 내내 신경 쓰였으나 다행히 그들은 훌륭한 파트너였습니다). 이들이 특별한 영웅이나 투쟁가가 아니라,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여성 중 하나라는 것. 영화에서 더욱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 대목입니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 배우와 실제 기자들이 함께 한 모습. 왼쪽부터 조디 캔터, 조 카잔, 메건 투히, 캐리 맬리건.
시간은 모든 것을 희석시키지만 어떤 일들은, 어떤 고백들은 잊히지 않아야 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뉴욕 타임스〉 보도와 미투 운동이 가져온 변화를 언급하는 자막을 읽으며 현실을 돌아봅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진짜 파도는 일어나긴 한 걸까요? 영화 〈그녀가 말했다〉를 극장에서 만나는 일, 우리 안의 용기와 연대의 마음을 기억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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