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말했다_요주의여성 #76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그녀가 말했다_요주의여성 #76

용기와 용기가 모여서 세상을 흔들기까지.

박지우 BY 박지우 2022.12.12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

2017년 10월 〈뉴욕타임스〉는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의혹을 폭로하는 기사를 내고, 이는 미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미투(#Metoo) 운동의 시발점이 됩니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는 두 여성 기자 조디 캔터(조 카잔)와 메건 투히(캐리 멀리건)가 세상을 뒤흔든 이 기사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할리우드에서 ‘신’으로 군림하던 하비 와인스타인의 추악한 행위는 이미 뉴스를 통해 많이 전해졌지요. 마리아 슈레이더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가해자 와인스타인을 등장시키지 않고, 성범죄 장면을 재연하지도 않습니다. 영화가 집중하는 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마음과 용기가 더해지는 과정입니다. 두 기자가 얼마나 끈질기게 증거를 수집하고 진심을 다해 취재원을 설득해 나갔는지,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 기사 속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겁니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

피해자들은 대부분 신인배우나 사회 초년생, 꿈 많고 열정 넘치고 기회와 성공을 원했던 젊은 여성들입니다. 하비 와인스타인은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이들을 유인하고 짓밟았습니다. 법과 돈을 이용해 기밀유지 서약서로 그들의 입을 틀어막고 미래를 방해했습니다. 피해자들은 두려워합니다. ‘말해봤자 달라질 게 없는’ 현실 그리고 진실을 말했을 때 자신에게 돌아올 낙인과 손가락질을.
 
영혼을 갉아먹는 그 날의 기억을 홀로 품은 채 살아가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한 이유는 결국 ‘다른 여성들을 위해서’ 였습니다. 더 이상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메건 투히 기자는 망설이는 그들에게 진심을 다해 말합니다. “과거에 겪으신 일을 제가 바꿀 순 없지만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건 우리가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유방암 수술을 앞두고 자신의 일을 기사화하는 걸 허락한 로라 매든은 이렇게 덧붙이지요. “제 세 딸이 그런 폭력에 순응하며 살기 바라지 않아요.”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

투철한 직업정신을 지닌 두 기자 역에 캐리 맬리건과 조 카잔이 캐스팅된 건 더없이 완벽해 보입니다. 〈언 에듀케이션〉에서 천진한 소녀의 얼굴로 알려졌던 캐리 멀리건은 시간이 흐르며 점점 더 대단한 배우가 되어가고 있지요. 〈서프러제트〉 〈프라미싱 영 우먼〉 등 여성 이슈와 관련 깊은 작품을 이어가는 행보에서 이번 작품은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만합니다. 다재다능하고 매력적인 배우로 알고 있던 조 카잔(〈왓 이프〉랑 〈빅 식〉 보셨죠?) 역시 지성과 신념을 지닌 인물을 사실적으로 그려냈습니다.
 
영화는 취재 과정과 더불어 두 기자의 사적인 삶에 대한 묘사에도 시간을 들입니다. 메건 투히는 임신 중에 기사에 반대하는 세력의 협박 전화에 시달리기도 하고 출산 후에는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합니다. 두 아이를 기르는 조디캔터는끊임없는 업무 연락과 장거리 출장으로 육아에 어려움을 겪습니다(남편들이 화를 내거나 불평하는 장면이 나올까 봐 내내 신경 쓰였으나 다행히 그들은 훌륭한 파트너였습니다). 이들이 특별한 영웅이나 투쟁가가 아니라,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여성 중 하나라는 것. 영화에서 더욱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 대목입니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 배우와 실제 기자들이 함께 한 모습. 왼쪽부터 조디 캔터, 조 카잔, 메건 투히, 캐리 맬리건.

영화 〈그녀가 말했다〉 배우와 실제 기자들이 함께 한 모습. 왼쪽부터 조디 캔터, 조 카잔, 메건 투히, 캐리 맬리건.

하비 와인스타인이라는 권력자와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법 시스템, 뿌리 깊은 성차별 구조에 맞서 싸우는 일은 결코 한두 사람의 결기로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양심과 책임감을 갖고 행동한 많은 이들이 있었다는 걸 영화는 되짚어줍니다. 〈뉴욕 타임스〉의 보조 편집국장 레베카 코벳(패트리시아 클락슨)도그 중 한 명입니다. 어려운 취재를 하는 후배 기자들을 독려하고 지지해주는 ‘시니어’의 모습이 인상적이지요. 하비 와인스타인의 악행을 증언한 피해자 중 한 명이며 기사 첫머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도록 허락했던 애슐리 저드는 이번에도 직접 출연해 힘을 보탰습니다. 영화를 통해 당시 그가 이름난 배우로서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그의 결단이 다른 이들의 참여를 이끄는 데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알 수 있었지요.
 
시간은 모든 것을 희석시키지만 어떤 일들은, 어떤 고백들은 잊히지 않아야 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뉴욕 타임스〉 보도와 미투 운동이 가져온 변화를 언급하는 자막을 읽으며 현실을 돌아봅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진짜 파도는 일어나긴 한 걸까요? 영화 〈그녀가 말했다〉를 극장에서 만나는 일, 우리 안의 용기와 연대의 마음을 기억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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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김아름
    사진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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