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준비하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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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준비하기

갱년기 증후군은 빠르면 40대 초반부터 찾아온다. 지금 당장 준비가 필요하다.

류가영 BY 류가영 2022.07.16
 
나이가 들수록 엄마의 지난 선택과 결정에 내 경우를 비춰보는 경우가 늘어난다. 엄마는 내가 여성으로서 겪는 모든 것을 30년 일찍 경험한 영원한 선구자였으므로 중요한 삶의 변곡점마다 난 항상 엄마를 찾았다. 그날따라 유독 몸과 결혼, 출산 등 여성의 삶에 대한 화두가 끊이지 않던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각자 목격한 엄마의 갱년기 ‘썰’로 이어진 적 있다. 엄마를 통해 우리가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 갱년기 시점과 증상은 비슷한 듯 달랐고, 갱년기에 대해 똑같이 무지했던 우리는 대화 내내 스마트폰을 뒤적이며 겨우겨우 말을 이었다. 더위를 거의 안 타는 편인 엄마가 유난히 ‘덥다’는 말을 자주 했던 어느 여름과 유독 아빠에게 집중됐던 엄마의 짜증 어린 말투에 내 신경까지 곤두섰던 순간이 떠오르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수년에 걸쳐 지속됐을 엄마의 갱년기에 대해 난 10분도 마음 쓴 적 없었으니까. 그렇게 엄마의 갱년기는 지나갔다.
 
다시 갱(更)에 해 년(年). 신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를 일컫는 갱년기의 핵심 사건은 폐경(Menopause)이다. 난소의 노화로 배란과 여성호르몬의 분비가 완전히 멈추는 현상. 쉽게 말해 생리가 끊기고, 자연 임신이 불가능해지는 시점을 일컫는다. 한국인 평균 폐경 연령은 49.7세. 폐경 4~7년 전부터 여성호르몬의 급격한 감소로 본격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 예는 다음과 같다. 안면 홍조, 발한, 방광염, 질염, 질 건조증, 배뇨 곤란, 피로감, 신경과민, 성교통, 근육통, 부정 출혈, 골다공증, 기억력 감소, 불안감, 우울…. 생리의 양과 주기가 급격하게 불규칙해지는 이 시점부터 폐경 후 1년 정도를 폐경이행기 혹은 폐경주위기(Perimenopause)라 부르는데 이 기간이 바로 갱년기다. 갱년기의 가장 흔한 연관 검색어가 ‘갱년기 우울증’이지만 심리적인 것보다 신체 변화가 훨씬 시급한 문제다. 땀이 너무 많아져 아끼는 블라우스를 더는 입을 수 없고, 가슴이 답답한 현상 때문에 숙면을 취할 수 없다면 쉽게 불안해지고 짜증이 밀려드는 것은 당연하니까. 대부분의 여성이 4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 사이, 거의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갱년기로 살아가는데 전체 중 약 5%의 여성은 40~45세에, 1%의 여성은 그보다 이른 20~30대에 조기 난소 부전(조기 폐경)을 경험한다. 3개월 이상 무월경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 재빠른 정밀 검진을 권장하는 이유다. 물론 갱년기가 ‘질병’은 아니지만 대한폐경학회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90%는 결국 크고 작은 갱년기 증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엄마의 갱년기에 대해 철저하게 무관심했던 것에 대한 변명을 굳이 늘어놓는다면 이는 나에게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라는 거다. 신경질적인 중년 여성을 두고 “갱년기인가 보다”라며 농담을 던질 줄만 알지 증상과 치료법 등 진짜 중요한 갱년기 이야기에 관해 우리 사회는 놀랄 만큼 무지하고, 필요 이상으로 침묵한다. 선진국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은퇴자협회(AARP)에서 지난해 2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갱년기이거나 갱년기를 목전에 둔 35~49세 여성 중 ‘앞으로 당면할 호르몬 변화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14%에 불과했다고 한다. 엄마나 친척, 친한 친구와 갱년기 고민에 대해 나눈 적 있다고 답한 여성은 절반을 밑돌았고, 갱년기 증상을 묻는 질문에 단 한 가지 증상도 얘기하지 못한 사람도 16%나 됐다. “출산을 앞두고 아무런 정보도 찾아보지 않는 임신부를 당신은 이해할 수 있나요?” 산부인과 전문의 젠 건터(Jen Gunter) 박사가 묻는다. 출간 인터뷰와 강연회를 통해 수많은 중년 여성과 마주하며 건터 박사는 여성이 갱년기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련 정보에 굶주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최근 북 토크에서 일어난 일이었어요. 폐경과 폐경이행기에 대해 누군가 제게 묻자 곧바로 관련 질문이 쏟아졌죠. 갱년기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부족한지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갱년기를 ‘여성성의 종말’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 역시 갱년기에 대한 충분한 담론이 형성되지 못하도록 막는 가장 큰 방해 요소다. “쓸모없는 노인이 돼가고 있다는 기분은 문제에 맞서 해결하려는 의지를 꺾습니다. 세상이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열의를 갖고 이야기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건터 박사의 말이 맞다. 페경이 시작도, 심지어 과정도 아닌 ‘끝’에 가까운 단어로 여겨지는 한 갱년기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가 피어날 여지는 크지 않을 것이다. 종말론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폐경’이란 단어를 폐기하고, 여성으로서 지난 삶을 축복하는 의미를 담아 ‘완경’이란 단어를 쓰자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50세 이후의 삶은 길다. 폐경을 맞이한 몸을 이끌고도 우린 더 먼 길을 걸어가야 한다. 폐경 이후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공포가 아닌 의지로 맞서야 한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혹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너무 늦기 전에 헤아려야 한다.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에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돌파구를 찾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 다음은? 나에게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을 찾기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일 차례다. 갱년기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고, 설사 증상이 같다 하더라도 기질과 체질, 유전 요소와 기저 질환을 고려했을 때 치료법은 천차만별이니 인터넷 검색에 의존하기보다 내 몸의 변화를 세심하게 측정하고, 증세가 심각할 때는 전문 상담과 치료의 도움을 받는 편이 좋다. 가장 흔한 갱년기 질환 중 하나인 골다공증을 막기 위해서는 충분한 단백질과 칼슘, 비타민 D 섭취가 필요하다. 갱년기 이전과 똑같이 먹고 움직였을 때 갱년기 이후에는 평균적으로 매년 0.8kg 정도의 체중 증가가 발생한다고 하니 활동량을 높이거나 단백질 위주로 식단을 구성해 체중 조절에 신경 써야 한다. 눈과 입, 질 등 신체 곳곳의 점막이 마르며 생기는 불편함을 막기 위해 물과 히알루론산·오메가3·콜라겐 등을 추가로 섭취하고, 때에 따라 여성호르몬제 복용을 고려해도 좋다. 유방암과 혈전 위험도를 급격하게 상승시킨다는 이유로 그간 호르몬제 복용에 대한 갑론을박이 뜨거웠지만, 현재는 정기검사가 뒷받침된다면 10년 이상 장기 복용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완전 호르몬제인 안젤릭, 유방암의 위험성을 높이지 않는 반(항)호르몬제인 리비알과 듀아비브, 체내에서 두 가지 기능을 병행하는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SERM)인 비비안트 등 증상과 시기, 부작용이 우려되는 정도와 심지어 계절에 따라서도 호르몬제의 종류와 복용량을 그때그때 바꿔 처방받아 갱년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길이 확장되고 있다.
 
무엇보다 갱년기에 관해 세상이 지금보다 더 시끄럽게 떠들 필요가 있다. 고통과 맞닥뜨렸을 때 나 혼자 겪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주는 위안은 엄청나다. 두 딸의 무관심 속에서 1년 정도 극심한 홍조 현상과 발한, 수면 장애에 시달린 엄마 곁엔 다행히 세 자매가 있었다. 구하고, 물으며 추가 영양제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된 엄마는 이후 콜라겐과 프로폴리스, 오메가3와 산양유 단백질 등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갱년기에 대응해 나갔다. 동생들과 소소한 갱년기 에피소드를 나누며 처음 폐경을 맞닥뜨렸을 때의 당혹감과 ‘너무 늙었다’거나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도 점차 흐릿해졌다. 근거 없는 공포로부터 해방을 선언한 엄마는 고통을 인정하고 타인과 나누며 비로소 위기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 10년 후, 이번엔 내가 본격적인 갱년기 고민을 시작할 때쯤 나는 이때의 엄마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변화의 파동 한가운데 서서 급격한 신체 변화에 대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을 때 내가 기댈 사람은 엄마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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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류가영
    courtesy of Emma currie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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