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조기 폐경이라니, 맙소사
폐경은 먼 미래의 일인 줄 알았건만.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하지만 ‘조기 폐경’을 준비하셔야 할 것 같아요. 아직 나이가 어리니 이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고, 만약 임신 계획이 있다면 빠르게 난자를 얼려두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생리 불순으로 가볍게 동네 산부인과를 찾아 난소기능검사(AMH)를 받은 나에게 의사가 들려준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AMH는 ‘항뮬러관 호르몬(Anti-Müllerian Hormone)’의 약자로, 난소에 있는 미성숙한 난포들에서 분비돼 난소에 남아 있는 난자의 개수를 추정하는 주요 지표로 사용된다. AMH 수치가 높을수록 난소 내 난자가 생성되는 난포가 많이 남아 있음을 의미하는데, 당시 내 AMH 수치는 0에 가까운 0.48. 이를 난소 나이로 환산하면 약 48세에 해당하는 결과였다. ‘내게 조기 폐경이 올 수도 있다니….’ 얼마 전 할리우드 여배우 나오미 와츠가 36세에 폐경기를 겪었다는 인터뷰를 보고 꽤 충격을 받았던 게 떠올랐다. 내 나이는 고작 만 스물여덟이었다.
“흔히 말하는 조기 폐경은 수술로 난소를 제거하거나 난소 기능을 저하시킬 수 있는 항암 또는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았음에도 40세 이전에 난소 기능이 다한 것을 의미합니다. 40세까지는 100명 중 1명이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유병률이 3%에 달한다는 연구도 있고 점점 증가하는 추세예요.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조기 폐경을 겪은 여성의 5~10% 정도는 자연적으로 에스트로겐이 생성되기도 하고, 간헐적으로 배란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조기 폐경’보다 ‘조기난소부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대한폐경학회에 소속돼 폐경 관련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산부인과 김영아 교수의 설명이다. 그의 말을 듣고 ‘어머! 그럼 조기 폐경이 와도 자연 임신이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잖아?’라는 희망이 번뜩였지만, 이내 ‘내가 그 5~10%가 아닐 확률이 훨씬 더 크잖아’라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날 이후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빈발 월경(생리 주기가 21일보다 짧은 월경. 내 경우 생리를 2주에 한 번씩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 때문일까?’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터라 예비신랑에게 괜스레 미안했고, 꼭 죄인이 된 기분도 들었다. 내 잘못으로 생긴 일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조기난소부전은 유전적 요인과 연관이 있다는 근거가 많긴 하지만, 난소의 난포를 손상시키고 난자의 질을 떨어트려 폐경을 앞당길 수 있는 흡연과 과음, 불규칙한 수면 패턴, 스트레스, 과도한 다이어트 등의 생활습관도 위험 인자로 작용할 수 있다는 단편적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기난소부전의 80% 이상은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유를 찾으려 애쓰기보다 갑작스러운 무월경이나 월경 과다 등 몸이 보내는 전조 증상을 빠르게 캐치하고 그에 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건강검진처럼 주기적으로 난소기능검사를 받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김영아 교수는 이어서 조기난소부전이 여성의 몸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조기난소부전이 생기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결핍되는데, 이는 식은땀이나 홍조, 내장 비만 증가 같은 갱년기 증상 유발은 물론 인슐린 민감성 저하로 혈당 조절을 어렵게 해 당뇨와 심혈관 질환의 위험도 증가시킵니다. 또 뼈를 분해하는 파골 세포의 수를 늘려 골밀도를 떨어트리고, 골절 위험성도 높아지게 만들죠. 무엇보다 자연 임신이 어렵다는 사실 역시 간과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절망감에 휩싸여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혼을 앞둔 나에게 “임신이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은 충격 그 자체였고, 곧 내 몸에 닥쳐올 변화가 공포로 다가왔다. 그래서 ‘냉동 난자’를 결심했다.
“생리 불순이나 생리량 감소, 생리 횟수 감소 등 평소와 다른 생리 패턴의 변화는 조기난소부전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젊다’는 이유로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말고 빨리 병원에 방문해 몸 상태를 적극적으로 체크해야 해요.”
나를 담당했던 주치의는 과배란 유도 주사부터 수면 마취를 통한 채취 과정을 설명하며, 약간 머뭇거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한시가 급해요. 살짝 과장을 보태 말씀드리면 난자를 한 달이라도 빨리 채취할수록 본인의 임신 확률이 ‘확확’ 달라질 걸요?” 난자의 양은 적더라도 퀄리티는 여성의 생물학적 나이와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에 난자 냉동 시점이 하루라도 빠를수록 해동 후 생존율과 임신 성공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었다. 주치의는 “나이가 어리니 난자 채취 과정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했지만 그저 ‘젊다’는 말에 희망을 건 채 시작한 난자 채취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매일 하루에 한 번 배에 주사를 놓다가 점점 하루에 세 번, 마지막엔 대여섯 번까지 주사의 양이 늘었다. 10일 남짓 되는 자가 주사는 시간을 ‘정확히’ 맞춰 배에 놓아야 하는 데다 ‘과배란’을 유도하는 호르몬 주사인 만큼 정신적 피로감과 우울감은 가볍게 넘길 수준이 아니었다. 감정 변화는 감당하기 어려웠고, 가만히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날이 많았다. 이때부터 시작된 수면 장애는 첫 채취 이후 약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다. 결과라도 좋았으면 위로가 됐을까. 호르몬 주사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이 다이내믹한 과정을 어렵게 지나왔지만 난소 기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채취된 난자는 네 개 남짓이었고, 그중 일부는 미성숙 난자로 분류돼 배아 형성이 어려웠다. 결국 나는 또 한 번 난자 채취를 진행했다. 두 번째 시도는 첫 번째보다 나았지만, 만들어진 배아는 단 한 개뿐이라 다시 이 여정을 반복해야 한다.
연속으로 이어진 과정을 거치며 내 몸, 특히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우울감을 겪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다양한 증상으로 인해 일상이나 사회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넘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케어했으면 해요. 긍정적 감정을 가질 때 분비되는 세로토닌, 도파민, 엔도르핀 같은 호르몬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꾸준히 몸을 움직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분당차여성병원 산부인과 나은덕 교수는 스스로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권했다. 이어 그는 냉동 난자 시술뿐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중점을 둔 여성호르몬 치료도 함께 권장했다. “에스트로겐 보충도 꼭 기억하세요. 에스트로겐은 폐경기 증상뿐 아니라 우울감 완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어요. 단, 폐경 후 10년 이상 지난 경우에는 오히려 인지 기능 저하나 혈관 질환, 신경학적 이상과 같은 부작용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조기난소부전 진단이 내려지면 빨리 병원을 찾아 에스트로겐 투여를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자궁이 있는 여성은 에스트로겐만 단독으로 투여하면 자궁내막암의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궁내막 보호를 위해 반드시 프로게스테론도 함께 투여해야 합니다.”
이른 나이에 찾아온 조기난소부전. 그저 폐경만 하면 끝인 줄 알았건만, 앞으로 ‘나’를 위해 해결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많다. 다시 시도해야 하는 냉동 난자, 우울감 극복, 호르몬 치료 등 넘어야 할 산이 여럿이기 때문. 하지만 조기난소부전이라는 진단은 내 몸의 이야기에 더 일찍 귀를 기울이게 만든 계기가 됐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두렵지만, 때론 울고, 멈춰 서더라도 또 한 걸음 나아가며 언젠가 찾아올 폐경을 담대하게 맞고 싶다. 나처럼 너무 이른 ‘폐경’이라는 시계 앞에 서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생리가 멈춘다 해도 삶까지 멈춘 게 아니야.”
Credit
- 에디터 김하늘
- 사진가 장승원
2025 가을 필수템 총정리
점점 짧아지는 가을, 아쉬움 없이 누리려면 체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