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한번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주목! 내 몸은 완벽하지 않아, 그런데 뭐 어쩌라고?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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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한번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주목! 내 몸은 완벽하지 않아, 그런데 뭐 어쩌라고?

소설가 천선란이 평생 함께 살아가야하는 내 몸을 긍정하는 방법

이마루 BY 이마루 2022.07.05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몸과 평생 살아가야 한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당시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던 10대 시절의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 플롯이 단순하고 전하려는 메시지가 뚜렷한 영화는 대개 왜곡 없이 관객에게 와닿는다. 다시 말해 10대의 나도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읽었다. 관객 수 600만 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극적 변화’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때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가 직접 부른 ‘Beautiful Girl’이 아직도 흘러나올 정도로 인기인 이 영화를 그날 영화관에서 본 소감은 ‘그래도 결국 예쁘잖아’였다. 과거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주인공은 끝내 과거의 ‘외적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스스로의 내면을 사랑하며 끝난다. 그것을 정말 자신을 온전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단 나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환골탈태하고 정말 내가 원했던 건 ‘외적인 것이 아닌 내면의 나를 사랑하는 법’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한동안은 말이다. 지금은 아니다.
 
몇 달 전 세 명이 함께 운영하는  팟캐스트 〈일기떨기〉에서 ‘몸’에 대한 일기를 쓰며 나는 이제야 조금 내 몸을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말은 아직 완전히 안다는 건 아니라는 말과 같다. 근 20여 년을 몸과 지독하게 싸우고 혐오하고 살았는데 화해가 그렇게 빨리 이뤄질 리가. 쉽게 화해할 거였으면 그토록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내 살을 파먹으며, 내 속을 갉아먹으며.
 
내 다이어트 일대기는 15세를 기점으로 찬란하고 유구하다. 지중해식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올리브오일을 한 컵씩 마신 이후로 그 역함에 지금도 어떤 요리를 하든 기름을 두르지 못하는 사람이 됐고, 매일 밤 스쿼트를 500개씩 한 결과 탄탄한 허벅지 근육을 얻어 지금도 의자에 10시간씩 앉아 있어도 힘들지 않은 사람이 됐다. 물론 방금 말한 것은 뜻밖의 이득이었고, 결코 내가 원했던 몸은 아니다. 내가 올리브오일을 먹고 스쿼트를 하며 꿈꿨던 몸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몸인지 모두 떠올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스키니 진이 유행하던 시절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는 단서를 주면 더 선명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나는 조금씩 ‘음식’ 자체를 ‘금기’의 영역으로 몰아넣었고, 먹는 행위를 죄처럼 여겼다. 그러다 20대 초반, 집안 사정이 힘들어져 마음고생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몇 개월 동안 살이 10kg 넘게 빠지는 걸 보면서 먹지 않는 것만이 살을 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아침이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고, 얼굴이 보기 힘들 정도로 상한 걸 보면서도 나는 커진 바지가 더 좋았다. 운동해서 뺀 게 아니니 먹으면 다시  찔 거라는 불안감에 더, 더 먹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실 나는 내가 그 상태로 영원히 마를 줄 알았다. 만족했으니까 운동하며 노력한 만큼 잘 유지하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했다. 결론은 아니었다. 좋으면서 내심 나를 징그럽게 여기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몸에 집착하며 불행하게 살 수는 없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하던 20대 중반. 과식도 야식도 아닌 밥 한 끼를 먹으면서 ‘토하고 싶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는 나를 발견한 그날, 나는 미뤄두었던 몸과 화해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둘 수 없다. 내가 마르지 않아서 행복하지 못하다면 나는  내 행복의 기준에서 몸을 없애야겠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몸에 관한 부정적인 생각 끝에 ‘어쩌라고’를 붙이는 것이었다. 간단하다. ‘이 옷은 다리가두꺼워 보이네…. 어쩌라고. 그냥 입어.’ ‘이건 팔뚝살이 너무 많이 보이는데…. 어쩌라고.  마음에 들면 그냥 입어!’ ‘살이 좀 쪘나…. 진짜 어쩌라는 건지.’ 효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적어도 나한테는 당장 내 몸을 혐오하고 싫어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 더 중점이 됐으므로. 그리고 이것보다 더 좋은 훈련은 나의 멋진 부분을 계속해서 적어나가는 것이다. 나는 (아마도) 다른 사람들보다 이야기를 잘 만든다. 오래 걸어도 잘 지치지 않고, 마찬가지로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지 않은 식이다. 그렇게 매일 적어가다 보면 내 몸이 꽤 멋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몸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된 이후에 나는 조금씩  내 몸을 사랑할 수 있게 됐다.
 
결국 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원래의 나를 잃고 난 후에야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지만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를, 훨씬 더 성숙하고 삶의 태가 곳곳에 새겨진 내 몸과 제법 자랑스럽게 마주할 수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내가 더는 혐오스럽지 않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 나를 더 사랑하게 돼 두려움이 없어지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아직 멀어도 좋다. 내가 나를 어떻게 느끼든, 나는 내 몸과 평생 살아가야 하므로 우선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부끄러움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
 
천선란
1993년생 소설가. 2019년 첫 장편소설 〈무너진 다리〉를 펴낸 후 〈천 개의 파랑〉 〈어떤 물질의 사랑〉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를 썼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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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이마루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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