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팬데믹 이후의 세상을 그리는 예술적 치유_인싸 전시 #30

전 지구적 재난 속에서 예술이 할 일은 이후의 삶에 대해 새롭게 상상하는 것.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 〈재난과 치유〉가 상상력의 토대를 마련한다.

BY라효진2021.07.09
 
국내외 작가 35명의 작품 60여 점을 소개하는 기획전 〈재난과 치유〉는 다섯 개의 소주제로 구성돼 있다. 먼저 ‘징후와 증상’을 고찰하는 것으로 전시가 시작된다. 관람객은 사진과 영상이 다채롭게 구성된 거대한 통로를 지나게 된다. 이는 열한 명의 사진가들로 구성된 〈신디케이트:코로나 에디션〉으로 코로나 시작 단계에서 현재까지의 기록을 통해 감염병의 대유행으로 드러난 사회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작가 노트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재난의 시작은 평등할지 몰라도, 그 결과는 불평등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지원으로 제작된 신디케이트: 코로나 에디션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지원으로 제작된 신디케이트: 코로나 에디션 전시 전경

 
5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거대한 삼각 구조물 각 면을 섬세한 동양화기법 붓질로 채운 대형 회화 작품 〈사각 死角〉이 자리한다. 핏빛으로 가득 찬 수영장, 마스크를 쓴 소년 두 명이 가장자리에 앉아 알 수 없는 손길이 내민 액체를 받아 마시고 있다. 곳곳에 못 박힌 나무 기둥들에는 우윳빛 수액을 받아내는 그릇이 달려 있고 흰 광목천이 기묘하게 뒤덮여 있다. 이진주 작가는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리며 천을 뒤집어쓴 상황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대”를 표현했다. 프란시스 알리스는 홍콩 라마 섬에서 치른11일간의 격리를 3분 22초의 시적인 영상 작품 〈금지된 걸음(Prohibited Steps)〉으로 담아냈다. 초점이 잘 맞지 않는 화면에는 난간 없는 사각의 콘크리트 건축물 위를 주춤거리며 걷는 한 남자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또 다른 은유로 읽힌다.
 
이진주, 〈사각 死角〉, 2020, 리넨에 한국화와 아크릴릭이진주, 〈사각 死角〉, 2020, 리넨에 한국화와 아크릴릭이진주, 〈사각 死角〉, 2020, 리넨에 한국화와 아크릴릭이진주, 〈사각 死角〉, 2020, 리넨에 한국화와 아크릴릭
 
‘집콕’과 ‘언택트’는 팬데믹의 시대를 대변하는 가장 대표적인 말이다. 홍진훤 작가의 〈Injured Biker〉는 바이커 복장을 한 사람이 한쪽 다리를 절며 걷는 모습이 무한 반복되는 ‘짤’ 같은 작품이다. 화면에는 역설적으로 ‘Stay Home. Save Lives’라는 문구가 떠 있다. 언택트의 삶이 가능하기 위해서 위험에 노출되는 배달 노동자의 상황을 환기한다.
 
 리암 길릭(Liam Gillick), 〈상승하는 역설(Elevated Paradox)〉, 2020, 채색된 알루미늄

리암 길릭(Liam Gillick), 〈상승하는 역설(Elevated Paradox)〉, 2020, 채색된 알루미늄

 
양옥금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파올로 조르다노의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가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조르다노는 이렇게 썼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즉석에서 숫자 변화를 확인하고 계산하는 것은 보통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징후이다.’ 그 말대로 ‘일일 확진자, 사망자, 거리두기 단계’와 같이 감염병의 진행 상황을 지시하는 숫자와 정보들은 그날의 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이 섹션에는 무시로 지나쳤을 수도 있는, 미술관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벽면에 설치된 리암 길릭의 높이 7m에 달하는 설치 작품이 포함돼있다.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나뉜 숫자들은 양극단으로 뻗어 나가며 ‘1’과 ‘0’으로 수렴돼 삶과 죽음을 마주했던 상황을 암시한다.
 
 
리암 길릭(Liam Gillick), 〈상승하는 역설(Elevated Paradox)〉, 2020, 채색된 알루미늄

리암 길릭(Liam Gillick), 〈상승하는 역설(Elevated Paradox)〉, 2020, 채색된 알루미늄

 
1년이 넘도록 공항, 공원, 광장 등은 물론 미술관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비대면의 삶은 공적/사적 공간에 대한 색다른 관점과 사유를 낳는다. 6관 전시실 중앙에는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와토마스 스트루스의 사진 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다. 예수의 앙상한 시신 그림이 걸려있는 텅 빈 바젤 미술관과 관람객들로 가득한 피렌체의 한 미술관의 강렬한 대비는 익숙하던 공간에 대한 생경한 감각을 일깨운다.
 
에이샤-리사 아틸라(Eija-Liisa Ahtila), 〈사랑의 잠재력(POTENTIALITY FOR LOVE)〉, 2018, 3개의 부분으로 구성된 무빙이미지 조각: ⓒ 사랑의 잠재력, 에이샤-리사 아틸라. 사진 ⓒ2018 크리스탈 아이, 헬싱키.

에이샤-리사 아틸라(Eija-Liisa Ahtila), 〈사랑의 잠재력(POTENTIALITY FOR LOVE)〉, 2018, 3개의 부분으로 구성된 무빙이미지 조각: ⓒ 사랑의 잠재력, 에이샤-리사 아틸라. 사진 ⓒ2018 크리스탈 아이, 헬싱키.

 
마지막 섹션 ‘유보된 일상, 막간에서 사유하기’에 다다라 관람객은 질주하던 문명의 삶이 전 지구적 재난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을 수 있음을 깨닫고 고찰과 상상으로 나아간다. 여기 소개된 작품들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새로운 세상을 그리는 인식의 틀을 갖추기 위한 노력에 다름없다. 무감각하게 퍼져가는 폭력의 전이를 담은 봉준호 감독의 단편영화 〈인플루엔자〉, 인간의 욕망이 표범으로 대표되는 자연을 어떻게 지배하게 되는지 그려낸 이영주의 애니메이션 〈표범의 눈〉 등을 지나쳐 마지막 작품에 도달한다. 자궁 안 태아처럼 우주를 유영하는 인간의 모습이 나오는 LED 구조물이 광활한 우주처럼 거대하다. 맞은편에서는 그런 인간을 흘깃 넘겨다보는 침팬지의 모습이 세로형의 프로젝션에 나타난다. 핀란드 작가 에이샤-리사 아틸라는 모니터와 조각 등이 결합한 하이브리드 설치작을 통해 인간 이외의 생물들에 대한 사랑의 잠재력을 다룬다. 그렇게 전시실을 나오면 이배의 〈불로부터(Issudufeu)〉가 이루는 숯의 숲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새하얀 한지 위에 설치한 거대한 숯 조형물 사이를 걷는 동안 관람객은 팬데믹 이후의 평온한 삶을 위한 회복과 치유의 시간을 그려본다.  
 
이배, 〈불로부터(Issu du feu)〉, 2021, 소나무 숯, 가변크기.

이배, 〈불로부터(Issu du feu)〉, 2021, 소나무 숯, 가변크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8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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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안동선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아라리오갤러리/이진주/홍진훤/안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