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된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얼굴에는 푸른 색조가 감돌고 전시장에는 블루지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와인하우스가 유명을 달리한 2011년, 초상화를 통해 인종과 성, 죽음을 탐구하는 마를렌 뒤마가 그린 〈에이미 블루〉다. 자신의 영혼과 삶을 불태워 특별한 음악을 들려줬던 와인하우스가 그립고 그녀의 노래를 사랑하던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에이미 와인하우스(1983~2011), 마를린 뒤마, 2011년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존 테일러, 1600~1610년경
아이작 뉴턴(1642~1727), 고드리프 넬러, 1702년
아이작 뉴턴(1642~1727), 고드리프 넬러, 1702년
에드 시런(1991~), 콜린 데이비슨, 2016년
방송이 없던 시대에 초상화는 그림 속 인물의 권위를 느끼도록 하는 중요한 미디어의 역할을 했다. ‘권력’ 섹션에서는 영국에서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왕족들의 초상화를 소개한다. 영국 역사에 큰 흥미가 없어도 주인공의 위엄을 강조하기 위한 특별한 자세와 도상으로 가득 찬 패션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니컬러스 힐리어드, 1575년경에 그린 것으로 추정
당시에는 드물게 미혼의 여성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에는 여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다양한 장치로 가득하다.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옷은 순결함과 불변성을, 가슴에 착용한 불사조 모양의 팬던트는 재생과 처녀성을 상징한다. 손에 쥐고 있는 붉은 장미는 튜더 왕가의 상징물로 그녀가 왕조를 계승하고 지켜나갈 진정한 통치자임을 암시한다.
‘혁신’ 섹션에서는 초상화가 어떤 방식으로 발전을 거듭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왔는지 살핀다. 루벤스, 로댕 등 위대한 예술가들이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여 그린 초상화는 물론 19세기 사진이 발명되던 시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이 소설의 모델이 된 소녀 앨리스 리들을 찍은 초상 사진, 얼굴의 기본적인 요소만 남기고 단순화시킨 앤디 워홀의 작품과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그린 자하 하디드 등 초상화의 다채롭고 혁신적인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안나 윈투어 (1949~), 알렉스 카츠 , 2009
자하 하디드 (1950~2016),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 2008 년
마지막 섹션은 정체성과 자화상. 호크니와 프로이드의 자화상, 트레이시 에민의 데드 마스크, 자신의 의식을 구성하는 여러 이야기를 담은 지도로 자화상을 대신한 그레이슨 페리의 독특한 판화 작품 등 정체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소개하며 전시는 막을 내린다. 셀피도 예술이 되는 시대, 패널에 유채로 그린 수백 년 전의 초상화와 오늘날의 셀피가 전하는 메시지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8월 15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