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비자 갱신 신청을 위해 증명사진을 찍었다. 사진관에서 촬영해본 이들이라면 모두 알다시피 ‘살짝 웃으세요’ ‘고개를 왼쪽으로 조금만 돌려보세요’ 찰칵, 이게 전부가 아니다. 촬영 후 동네 사진관 아저씨는 컴퓨터 스크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마우스와 키보드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받아 든 결과물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사진 속엔 낯선 ‘내’가 있었다.
피부는 백인만큼 하얗게 변했고 얼굴 골격은 부드럽게 깎였다. 비자 갱신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사진을 볼 때마다 좀 씁쓸하다.
왼쪽은 〈엘르〉에서 촬영한 사진, 오른쪽은 사진관에서 찍은 증명사진 사진/ JTBC Plus 자료실, 라파엘 라시드
치과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 있다. 2011년 한국에 막 도착했을 무렵, 나는 치아교정 중이었다. 주기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요했다. 런던의 치과 의사가 보낸 나의 X-레이 사진과 치료비. 그거면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치과에서는 예상치 못한 옵션을 붙였다. “수술하셔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수술? 아, 양약 수술이란다. 얼굴 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대수술을 권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완벽한 미소를 짓게 만들어주겠다는 거였다. 지금의 상태로는 70% 정도만 완벽하다고 덧붙였다. (근데, 완벽한 미소라는 게 뭐야? 도대체?) 두 군데 치과를 더 방문했음에도 답은 똑같았다. 세 번째 치과에서 겨우 수술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살이 좀 붙었다. (온종일 앉아서 컴퓨터만 보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잦은 야근과 회식 탓이겠지!) 친구들은 나보다 먼저 알아챘다. 몸매 관리 좀 하라는 충고(?)와 걱정(?)을 해줬다. 아니, 몰랐는데 그렇게 심각한 정도인가? 어차피 만성피로에 시달리던 차라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헬스장에 등록했다. 인바디 테스트 결과는… 체지방률에서 ‘비만’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객관적인 사실처럼 보이는 수치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통장 잔고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괴로움을 감내하면서 PT(personal trainer)를 고용했고 비만 탈출을 위해 몸부림쳤다. 어쨌거나 친구들의 날카로운 분석에 감사를!
사실 한국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해서는 영국에 있을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게다가 외모지상주의라는 게 비단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입술을 부풀린 스타와 몸매를 과시하는 인스타그램 사진은 범세계적인 이슈니까.
하지만 한국의 외모지상주의가 이렇게 일반적이고 일상적일 줄은, 그러니까 도착하자마자 치과에서 문전박대를 당할 줄은 몰랐다. 완벽한 미소를 짓기에 내 얼굴이 비대칭이기 때문에 얼굴 뼈를 깎아 구조를 다시 맞추는, 한동안 음식물을 코로 흡입해야 하는 대수술을 권할 줄이야. 어찌 알았겠나? 증명사진을 찍을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하얀 피부의 나를 보게 될 줄,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가장 밝은 톤으로 메이크업을 받게 될 줄, ‘요즘 살쪘네?’ ‘피부에 뭐가 났네?’ 같은 소리를 친구들에게 듣게 될 줄, 옷 좀 잘 입으라고 타박을 받게 될 줄 말이다.
한국에서는 평가가 일상이다. ('얼평(얼굴 평가)'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을 보라.) 전세계가 열광하는 K-뷰티의 진정한 비밀 역시 남의 눈, 타인의 외모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지적과 비난에서 자유롭기 위해 스스로를 가꾼다. 남에게 엄격한 것처럼 외모에 있어서만큼 자신을 끊임없이 체크한다. 지하철 계단엔 거대한 거울이 항상 걸려있고 사람들은 급히 내려가다 잠깐 멈춰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화장실에서 남자들이 오랜 시간 거울을 보면서 머리나 얼굴을 다듬는 장면 역시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혼란스러웠다. 지하철 거울 속 운동화에 배낭을 멘 나는 분명하게 못나 보였다. 영국에 살았을 때는 외모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나름 괜찮은 편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불안했다. 작은 뾰루지 하나, 살짝 잡히는 뱃살, 완벽하게 매끄럽지 않은 턱 라인 때문에. 물론 내가 ‘완벽한’ 외모를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우려에 겉모습에 대한 불안은 확신으로 자리 잡았다.
확신이 된 불안은 구매로 이어졌다. 스킨케어 제품을 열심히 발랐고 2년간 PT에 절대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며 겨우 ‘정상’ 몸매를 얻어냈다.
중국 영화 〈성형 일기〉 중. 한국계 대기업에서 일하는 한 중국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외모지상주의를 풍자했다
남자로서 이 정도인데 여자들, 특히 한국 여성이 느끼는 압박감은 어느 정도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원사이즈, S라인, V라인, 피부관리, 화장품, 보정, 시술, 종아리 알빼기 등등 관련 단어들로 사전을 만들어도 될 지경이다. 한 여성인 친구는 최근 친구를 따라 피부과(성형외과가 아니다)에 갔다가 미용의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필러와 보톡스는 기본이고 슈링크, 울쎄라, 각종(윤곽, 물광, 백옥) 주사 등 수백 가지의 관리가 존재하고 약 3분 만에 정수리부터 턱까지 이른바 ‘견적’을 내어준단다. 피부과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의 비슷비슷한 얼굴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눈 밑에 꺼진 부분을 채우고 앞 광대를 살짝 올리면 덜 피곤해 보이는 건 물론 동안이 될 거예요.”라는 말에 순간 카드를 내밀 뻔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마치 사교육의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모두가 학원 하나둘쯤, 수학과 영어 과외 정도는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안감을 느꼈다는 거다. 중국 영화 〈성형 일기〉 중. 중국의 미용 산업에 한국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역시 알 수 있다
도대체 이 모든 관리, 교정, 수술의 끝은 어디인가? 젊은 나이에는 미리미리 예방 차원으로, 나이 들면서는 하나둘 늘어나는 주름을 관리해야 하고, 처진 피부는 당겨야 하며, 셀룰라이트는 매끈하게 제거해야만 한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는 어쩐지 굴욕적이기 때문에 자기를 향한 채찍을 끊임없이 들어야 하는 이 상황은, 정말이지 모두에게 고욕이다. 그리고 우리는 늘 충분하지 않다. 이상하게도 노력하면 할수록 완벽은 항상 멀게만 느껴진다. (2년간의 PT 끝에도 나는 결코 만족하지 못했다)
되돌아보면 이 정신적인 자학의 끝에 웃는 건 이 심리에 기생하는 거대한 미용 산업뿐이다. 사실 이 글은 자기비판이나 다름없다. 이제 영국에 돌아가면 주위 모두가 못생겨 보이거나 너무 옷을 못 입는다고 느낀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남동생에게 이런 훈계를 둔다. “피부관리 좀 해! 한국에서 스킨케어 제품 좀 보내 줘?” 새치 가득한 친구에게도 핀잔을 준다. "머리 염색 좀 해!" 그는 아직도 염색약을 사지 않았고 동생의 주름도 그대로다.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