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으로 꼽는 프랑스 배우들은 하나같이 다 빨간 립스틱이 잘 어울린다. 아니 이것은 마치 ‘프랑스 여자이니까 당연히 빨간 립스틱이 어울리지!’라는 소리 없는 외침 같다. 배우 마리옹 코티야르, 에바 그린, 레아 세이두, 아델 에넬, 마린 백트 등. 다 다른 얼굴에 각자에게 어울리는 빨간 립스틱이 있다(물론 그녀들을 돕는 실력 있는 조력자들이 많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평범한 프랑스 여자들의 가방 속에도 반드시 그것이 들어있다. 바로 빨간 립스틱! 색깔도 브랜드도 다양한, 자신에게 어울리는 빨간 립스틱 하나쯤은 그녀들의 가방에 반드시 들어있다. 몇 번의 구매, 시도, 실패 끝에 나도 내게 어울리는 빨간 립스틱을 찾았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친구가 시골 말고 파리에 갈 때 바르라고 선물해 준 에스티 로더 립스틱. 톤이 가라앉은 가을빛의 빨강, 검붉은 색에 가까운 빨강 립스틱이다. 생기 돋는 봄의 빨강도, 여름 해변 같은 정열의 빨강도 아닌, 테이블 스탠드 하나 켜둔 피아노가 있는 재즈 바의 무드처럼 차분한 빨강.
프랑스 여자들은 가방 속에 넣어둔 빨간 립스틱을 매우 유용하게 쓴다. 예를 들면, 평일의 어느 날 어느 저녁에 계획하지 않았던 저녁 약속에 가기 전, 일상에 지친 얼굴 위에 빨간 립스틱을 쓱쓱 바르는 것이다. 브러시 따위는 없다. 무심하게 립스틱을 입술 위에 긋고 손가락으로 쓱쓱쓱. 개인의 취향에 따라 화장을 더할 때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프랑스 여자들은 립스틱 하나면 끝이다. 민낯에 바른 빨간 립스틱은 자신감을 부른다. 따라서 준비가 덜 됐을 때, 꾸미고 싶거나 돋보이고 싶을 때 꺼내는 비기가 된다. 그러니 무엇보다 자신이 잘 휘두를 수 있는 완벽한 무기를 소지한다. 여러 번의 시도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빨간 립스틱을 찾고, 다 쓰면 똑같은 것을 찾고 또다시 다 쓰면 똑같은 것을 찾는다. 내가 아는 프랑스 여자들은 그렇다.
나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 그것이 곧 존재의 이유 아닐까?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신을 요목조목 따져가며 어울리는 빨간 립스틱 하나를 찾아내어 가방 속에 넣고 다니는 것이다.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질문을 해야 할 게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아는 프랑스 여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질문을 했고, 시도와 실패 끝에 그녀들에게 맞는 빨간 립스틱을 찾았을 것이다. 프랑스 여자처럼, 자연스러운 꾸안꾸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맨 얼굴에 올릴 빨간 립스틱이 필요하다. 이제 립스틱을 찾는 모험을 시작해보자. 오직 나 스스로를 위한 아름다운 무기를 찾아 나서는 거다.

* 프렌치 패션, 리빙, 음악, 미술, 책……. 지극히 프랑스적인 삶! 김모아의 '프랑스 여자처럼'은 매주 화요일 업데이트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