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당신이 몰랐던 파예 투굿

전 세계가 탐내는 천재 디자이너의 비결은 독학?

프로필 by 이경진 2025.09.05
파예 투굿은 도면을 그리지 않고 카드보드, 종이, 철사 등 다양한 재료를 손으로 만져 형태를 잡아간다. 그의 상징적인 디자인 오브제이자 기법이 된 ‘마케트’들.

파예 투굿은 도면을 그리지 않고 카드보드, 종이, 철사 등 다양한 재료를 손으로 만져 형태를 잡아간다. 그의 상징적인 디자인 오브제이자 기법이 된 ‘마케트’들.

<아상블라주 6: 언러닝 Assemblage 6: Unlearning>전의 ‘클레이 코트’(2022)를 위한 마케트 작업이 진행 중이다.

<아상블라주 6: 언러닝 Assemblage 6: Unlearning>전의 ‘클레이 코트’(2022)를 위한 마케트 작업이 진행 중이다.

첫아이를 낳은 직후, 당신의 디자인 언어가 부드럽고 감각적인 곡선으로 변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변화는 신체적 감각에서 온 것일까요? 아니면 감정적 반응이었을까요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상블라주 롤리-폴리(Assemblage Roly-Poly)’를 디자인했어요. 그 시기의 제 디자인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둥글어졌죠. 이전엔 어둡고, 각지고, 용접 자국이 그대로 남은 강철 같은 작업을 했거든요. 그런데 몸과 마음, 양쪽으로 겪은 모성은 저를 둥근 형태로 이끌었어요. 롤리-폴리 체어처럼 진짜 감정과 연결된 작품은 단순히 ‘예쁘다’를 넘어 정말 깊게 사람과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됐죠.


 ‘Plot II, Purbeck Marble’, <Assemblage 7: Lost and Found>.  ‘Maquettes’, .  ‘Maquette 208’(2022), Paper Chair, .

그때부터 종이와 테이프로 수백 개의 마케트(Maquette)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어요. 이 방식은 ‘배움이 아니라 망각에서 창조가 시작된다’는, 당신의 ‘언러닝(Unlearning)’ 철학과 맞닿아 있어요. 언러닝을 통한 디자인에는 당신의 어떤 본능이 있나요

‘언러닝’은 2020년 뉴욕 프리드먼 벤다(Friedman Benda) 갤러리에서 선보인 전시 <아상블라주 6 Assemblage 6> 제목이기도 해요. 시작할 땐 이전 작업을 전혀 참고하지 않고 새로운 기하학을 찾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언러닝은 설계라기보다 ‘직관적인 놀이’에 가까웠어요. 어쩌면 놀이에 관한 본능적인 이끌림인지도 몰라요. 종이나 테이프, 철사, 카드보드처럼 일상의 재료로 수백 개의 작은 마케트를 만들다 보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무의식적 몰입 상태에 빠져요. 규칙이나 제약 없는, 아주 자유로운 상태가 되죠.


<아상블라주 7: 로스트 앤 파운드>를 위한 마케트와 실물 크기로 제작 중인 오브제의 제작 과정. <아상블라주 7: 로스트 앤 파운드>를 위한 마케트와 실물 크기로 제작 중인 오브제의 제작 과정. 작업 중인 파예 투굿의 손. 그는 도면을 그리지 않고 재료와 직접적인 대화를 나눈다.

작업을 위해 캔버스나 페인트, 점토, 청동, 종이, 테이프, 카드보드까지 수많은 재료를 다뤄왔어요.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재료가 있다면

재료에 어떤 위계도 두지 않아요. 캔버스나 점토나 청동이나 캐시미어나 제게는 모두 중요한 재료랍니다.


스튜디오 투굿과 바르니(Vaarnii)의 협업작 ‘피스 체어(Peace Chair)’(2024).

스튜디오 투굿과 바르니(Vaarnii)의 협업작 ‘피스 체어(Peace Chair)’(2024).

‘피스 체어(Peace Chair)’를 위해 앞서 만든 마케트들.

‘피스 체어(Peace Chair)’를 위해 앞서 만든 마케트들.

여전히 언어로 개념을 정리하기 전에 손으로 형태부터 만들기 시작하나요? 손과 몸이 의식보다 먼저 형태를 만들어낸 순간이 있다면

작업은 매번 다르게 시작돼요. 보통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개념이나 아이디어를 몇 마디 말이나 이미지로 잡아두죠. 그리고 곧바로 모델을 제작합니다. 저는 컴퓨터나 기술 도면으로 디자인하지 않아요. 3D로 만들면 형태를 훨씬 빨리 보고, 실체를 잡을 수 있거든요. 이렇게 만든 작품은 제작자의 손맛이 남는 것 같아요. 마케트를 만들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비대칭이나 작은 불완전함 같은 것들이요. 창작의 원형이 제작 과정과 맞물릴 때 최종적으로 보는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더 크게 다가갈 수 있거든요.


 ‘스쿼시 암체어(Squash Armchair)’와 ‘스쿼시 러그(Squash Rug)’ 디자인을 위해 만든 마케트들. 2024년 출시된 ‘스쿼시 체어’와 ‘스쿼시 러그’. 폴트로나 프라우(Poltrona Frau)와 투굿이 만나면 이런 의자가 탄생한다.

작업에서 의식적으로 버리려 했던 습관이 있나요

저는 디자인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아서 처음부터 규칙에서 자유로웠어요. 굳이 버리려 한 건 트렌드를 따르거나,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 신경 쓰는 습관이죠(웃음).


 타키니(Tacchini)의 ‘코스믹(Cosmic)’ 컬렉션 발표에 앞서 제작한 마케트들 사이에서 어린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빛의 파예 투굿.

타키니(Tacchini)의 ‘코스믹(Cosmic)’ 컬렉션 발표에 앞서 제작한 마케트들 사이에서 어린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빛의 파예 투굿.

당신의 초기 작업은 금속 질감과 구조적 긴장감이 도드라졌지만, 이제는 감각적이고 따뜻한 재료로 확실히 옮겨왔어요. 이제 파예 투굿이라 하면 유기적인 곡선부터 생각납니다. 언젠가 다시 단정하고 단단한 디자인으로 돌아가게 될까요

초기의 단정한 선과 단단한 재료는 제 디자인 언어의 시작이었어요. 그땐 일부러 강철처럼 ‘남성적’인 재료를 골랐죠. 용접도 많이 했고요. 반대로 섬유나 도자기, 색과 패턴 같은 ‘장식적’이고 여성 디자이너에게 익숙하다고 여겨지는 분야는 피했습니다. 당시엔 그것이 디자이너로서 인정받는 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아상블라주 4>의 ‘롤리-폴리’ 체어 이후로 제 디자인은 더 둥글고, 부드럽고, 유희적인 방향으로 변했어요. 이제는 남성과 여성, 단단함과 부드러움 같은 대비를 함께 안을 수 있고, 필요하다면 날카로운 형태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스믹 컬렉션의 마케트 시리즈.

코스믹 컬렉션의 마케트 시리즈.

2024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코스믹 컬렉션 중 소파 ‘솔라(Solar)’.

2024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코스믹 컬렉션 중 소파 ‘솔라(Solar)’.

최근 뉴욕에서 연 전시 <루시드 드림 Lucid Dream>처럼 취약함과 투명함을 드러낸 시리즈에서는 감정을 재료로 시각화했어요

<루시드 드림>은 뉴욕의 더 퓨처 퍼펙트(The Future Perfect)와 TIWA 셀렉트(TIWA Select) 갤러리에서 동시에 연 전시였어요. 그 작업에서는 몽상과 야간의 잠재의식, 즉 좌뇌와 우뇌, 비물질적인 것과 육감적인 것, 감정적 직관과 꿈의 논리 같은 이중성을 탐구했어요. 오랫동안 협업 프로젝트를 하다가 오랜만에 완전히 혼자서 자유롭게 작업할 기회가 생겼어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그냥 풀어놓아보자’고 했죠. 물감과 색, 펜, 손, 스펀지를 써서 꿈꾸는 듯한 방식으로 투굿 가구 위에 표현했어요. 이렇게 대담하고 즉흥적이며, 색채가 강한 가구와 대비되도록 TIWA 셀렉트 갤러리에서는 ‘야간의 잠재의식’을 표현한 ‘조니(Johnny)’ 조명 시리즈를 만들었어요. 구겨진 종이에 일본 먹으로 한 번에 감각적인 선을 그려 넣었죠. 조명을 켜면 그 선들이 인물과 패턴으로 살아나는데, 밤이 되면 그 몽환적인 세계가 완전히 드러납니다.


 <아상블라주 8>의 일부인 ‘구미 암체어(Gummy Armchair)’ 드로잉.

<아상블라주 8>의 일부인 ‘구미 암체어(Gummy Armchair)’ 드로잉.

구미 암체어를 개념적으로 풀어낸 아트워크 오브제.

구미 암체어를 개념적으로 풀어낸 아트워크 오브제.

완제품으로 선보인 ‘구미 암체어’(2024).

완제품으로 선보인 ‘구미 암체어’(2024).

스튜디오 투굿 팀을 ‘미스피츠(Misfits)’로 부르고 있죠. 애정과 자율성이 함께 느껴지는 이름이에요. 전통적인 역할 구분을 넘어 일한다는 팀 문화에도 당신의 언러닝 철학이 반영된 듯해요

우리는 가구와 패션, 인테리어의 경계를 흐리며 일해요. 디자인뿐 아니라 세일즈, 마케팅 같은 다른 역할도 마찬가지죠. 놀이와 실험은 우리 디자인의 핵심이에요. 각자 다른 경험과 훈련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경계를 깨고 관습을 의심하도록 격려받습니다.


얼마 전 뉴욕 전시 <루시드 드림 Lucid Dream>(2025)에서 선보인 구미 암체어와 풋 스툴은 생동감 넘치는 컬러로 핸드페인팅한 것. <루시드 드림>에 함께 전시된 ‘팔레트 스크린(Palette Screen)’와 ‘조니 플로어 라이트(Johnny Floor light)’. <루시드 드림>에 함께 전시된 ‘팔레트 스크린(Palette Screen)’와 ‘조니 플로어 라이트(Johnny Floor light)’. 버켄스탁(Birkenstock)과의 협업을 위한 마케트와 조각들.

실제로 팀 내의 디자인 실험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아이디어에서 완성까지 과정이 얼마나 비선형적인지

정말 다양해요. 어떤 프로젝트는 마케트에서 최종 프로토타입까지 6개월 만에 가기도 하고, 어떤 모델은 몇 년 동안 선반 위에 놓아뒀다가(적절한 재료나 제조사, 프로젝트가 나타날 때) 다시 꺼내 발전시키기도 해요.


투굿과 러그 브랜드 씨씨-타피스의 협업 컬렉션 ‘루드(Rude)’ 중 ‘Bits in Space’(2024). 투굿과 러그 브랜드 씨씨-타피스의 협업 컬렉션 ‘루드(Rude)’ 중 ‘Poking Fun’(2024). 코펜하겐에서 발표한, 프라마(Frama)를 위한 스페셜 디자인 ‘콜라주(Collage)’(2024). 버켄스탁x투굿의 협업 아트워크.

오랜 시간 동안 당신만의 주제나 질문은 무엇이었나요

돌아보면 제 디자인 프로세스에는 네 가지 주제가 늘 중심에 있었어요. 드로잉, 재료, 조각 그리고 풍경.


투굿의 일러스트레이팅 아트워크 ‘Landscape’.

투굿의 일러스트레이팅 아트워크 ‘Landscape’.

2025년 파리 메종 & 오브제(Maison & Objet)에서 공개했던 설치미술 전시 <Womanifesto!>의 네 가지 장이 바로 그것이었어요. 네 가지 주제를 통해 당신의 창작 과정을 ‘예술가의 뇌’로 대담하게 시각화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드로잉은 요즘 투굿 스튜디오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어요. 요즘은 패턴과 색을 더 많이 탐구하고 있어요. 조각은 기하학과 형태를 연결하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실타래죠. 재료는 투굿의 모든 프로젝트가 출발하는 지점이고요. 풍경은 제게 항상 중요한 영감의 원천입니다. 작품 속에서 인간과 자연을 잇는 방법이기도 하죠. 이 네 가지 기둥이 제 디자인을 지탱하고 있어요. 만들기 과정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본질적이고 단순한 감각을 끌어내줘요.


‘Drawing’.

‘Drawing’.

당신에 관한 유명한 일화 중 브랜드 버켄스탁(Birkenstock)과의 첫 미팅에 마케트 상자를 들고 갔던 이야기가 있죠. 종이와 테이프, 철사로 만든 자발적 형태의 마케트로 대화를 시작하는 방식이 당시 어떤 영향을 줬나요

버켄스탁 디자인 팀이 마케트를 보자마자 흥분했어요. 우리가 이 협업을 어떻게 접근하려는 건지 바로 이해한 거죠. 샌들을 작은 조각품처럼 다루고, 가구를 만들 때처럼 형태와 재료를 실험하면서 클래식한 버켄스탁 디자인을 존중하는 방식이었어요.


투굿 스튜디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마케트들.

투굿 스튜디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마케트들.

지난 밀란 디자인 위크에 선보인 타키니(Tacchini)와의 협업 역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탈리아 장인 정신의 기술적 완성도와 당신 특유의 유기적 형태가 만난 프로젝트였죠. 두 미학이 매우 상반될 때 그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찾나요

사실 협업에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저는 처음부터 브랜드와 제 성격이 맞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아요. 디자인 과정이 길기 때문에 사람 사이의 좋은 분위기가 꼭 필요하거든요. 가장 잘 맞는 파트너는 제가 대화를 주도하도록 믿고 맡기는 사람들이에요. 그럴 때 스튜디오의 역량이 가장 잘 발휘됩니다. 동시에 저도 제 ‘에고’를 문 앞에 두고 들어가요. 서로 다른 분야와 비전을 하나의 새로운 언어로 맞춰가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죠. 디테일과 재료, 형태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공유하면 그게 가능해집니다.


 ‘2025 메종 & 오브제’에서 올해의 디자이너(Designer of the Year)로 선정된 파예 투굿과 카드보드 플라워 형태의 설치미술 작품.

‘2025 메종 & 오브제’에서 올해의 디자이너(Designer of the Year)로 선정된 파예 투굿과 카드보드 플라워 형태의 설치미술 작품.

미술사를 전공한 뒤 영국의 매거진 <월드 오브 인테리어스 World of Interiors>에서 8년간 에디터로 일하며 18세기 찻잔부터 현대 브루탈리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웠어요. 이런 시선과 경험이 지금 당신의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월드 오브 인테리어스>에서 좋았던 점은 단순한 인테리어 잡지가 아니었다는 것이에요. 최고의 건축, 최고의 앤티크, 최고의 예술, 최고의 장식미술… 그 모든 걸 다뤘죠. 거기서 제 창의적인 본능과 기초 지식이 생겼을 거예요. 나만의 스튜디오를 설립하던 무렵에는 평면의 페이지가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무엇에 관해서든 어떻게 하면 ‘이걸 3차원으로 옮길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세트를 만들고 이미지로 이야기를 전하던 방식, 공간에 적용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향과 음식, 오브제, 공간을 결합해 이야기를 만들고 환경을 구성했죠. 저는 디자인 세계를 전체적으로 보았어요.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 건축이나 그래픽, 제품 디자인이 따로 움직였어요. 저는 그 모든 분야의 전문가를 한 지붕 아래 모았어요. 건축가가 의자를 디자인하고, 제품 디자이너가 건물을 설계해 보는 식이죠. 디자이너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퍼지 체어. 롤리-폴리 다이닝 테이블과 체어. 팔레트 커피 테이블. 거미 암체어.

지금 파예 투굿의 세계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가구와 패션, 인테리어, 설치미술을 넘나들며 규칙보다 감각을 추적해 왔죠. 영국에서 가장 작은 주인 러틀랜드에서 보낸 목가적인 어린 시절이 창작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한 적도 있어요

이사를 여러 번 했고, 미니멀리스트와 함께 살고 있지만 그 시절 자연에서 주운 작은 보물들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어요. 특히 나무 상자에 담긴 조약돌들은 제게 아주 소중해요.


재료 라이브러리.  마케트들이 이뤄낸 세계관 투굿 스튜디오. 카드보드 플라워 조각 등 파예 투굿의 디자인 오브제와 재료.

어린 시절 당신의 방은 그야말로 ‘작은 갤러리’였다죠. 자기만의 공간에서 삶과 형태에 대한 감각이 어떻게 섞였나요

지금 함께 스튜디오 투굿을 운영하고 있는 동생 에리카 투굿과 저의 어린 시절엔 TV도 없었고, 장난감도 많지 않았어요. 대신 자연에서 뭔가를 모았죠. 어떤 날은 나뭇가지를 묶어 무언가를 만들고, 또 어떤 날은 해변에서 조약돌을 주웠어요. 중요한 건 ‘모으고, 그걸 가지고 뭔가를 한다’는 거였죠. 제 경우에는 그걸 배열하거나 패턴을 찾아보는 거였어요. 자연물을 모으고, 집착하듯 재배열하면서 세상을 이해하려던 습관은 지금도 제 작업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드로잉 역시 투굿 스튜디오와 그의 팀원인 ‘미스피츠’에게 점점 중요한 과정이 돼가고 있다. 그는 드로잉으로 색과 패턴을 재발견하며 투굿의 디자인 세계를 확장해 간다.

드로잉 역시 투굿 스튜디오와 그의 팀원인 ‘미스피츠’에게 점점 중요한 과정이 돼가고 있다. 그는 드로잉으로 색과 패턴을 재발견하며 투굿의 디자인 세계를 확장해 간다.

여덟 살 때 바버라 헵워스(Barbara Hepworth)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일 인생의 결정적 순간으로 꼽았어요. ‘작은 체구의 여성 조각가가 돌을 다듬는 모습’이 당신을 깊이 사로잡았다고요. 그의 어떤 점이 그렇게 강하게 다가왔나요? 형태를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부모님이 저를 콘월에 있는 헵워스 스튜디오로 데려갔어요. 거대한 돌덩이를 다듬으며 멋진 조각을 만드는 그녀의 사진에 완전히 매료됐죠. 갤러리를 나올 땐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조각가가 돼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녀의 작품을 보면 정말 기하학이 완벽하게 느껴져요. 곡선과 여성적 형태, 동시에 볼륨과 빈 공간, 귀함과 거침이 공존하죠. 저에겐 그런 대비가 항상 매혹적이에요. 귀함과 거침, 남성성과 여성성의 공존.


롤리-폴리 체어. 첫아이 출산 후 파예 투굿의 디자인 언어가 완연히 부드럽고 둥글게 변하기 시작한 시점에 탄생했다.

롤리-폴리 체어. 첫아이 출산 후 파예 투굿의 디자인 언어가 완연히 부드럽고 둥글게 변하기 시작한 시점에 탄생했다.

파예 투굿이 도면 없이 손으로 매만지며 형태를 잡아 만든 마케트들. 그는 이를 통해 수많은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했다.

파예 투굿이 도면 없이 손으로 매만지며 형태를 잡아 만든 마케트들. 그는 이를 통해 수많은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했다.

지금도 갤러리에 들어설 때보다 숲이나 바닷가에 서 있을 때 더 가슴이 뛰나요

갤러리와 자연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저를 자극해요. 20대 때는 갤러리를 찾아다니는 일이 거의 집착에 가까웠어요. 1990년대는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들이 등장하던 흥미진진한 시기였고, 루이즈 부르주아, 필리다 발로, 세라 루커스, 레이철 화이트리드 같은 작가들의 작업을 발견했어요. 그들은 제게 많은 영향을 미쳤죠. 자연과 풍경은 제 안식처입니다. 그곳으로 계속 돌아가야 하고, 거기서 끊임없이 영감을 받아요. 실내보다 야외에 있을 때 훨씬 편안하고, 제 아이디어와 정보는 거의 거기서 온다고 봐도 무방해요. 공간이나 냄새, 색, 질감, 재료 등 이 모든 것이 제 작업 언어의 토대가 됩니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사진 GENEVIEVE LUTKIN·PHILIP SINDEN· PIOTR NIEPSUJ· JOHN WILLIAM
  • COURTESY OF TOOGOOD· POLTRONA FR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