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공간의 향기, 바람, 햇살을 그리는 미술가

케이트 메리는 기억 속 장소를 떠올리며 세상을 몽환적으로 표현한다.

프로필 by 권아름 2025.04.07

KATE MARY

회화와 실내 디자인을 결합해 공간과 기억이 얽힌 풍경을 그려내는 케이트 메리. 그녀의 작품은 오래된 기억 속 장소로 이끌거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데려간다. 프랑스 리비에라의 햇살, 키프로스의 바람, 브뤼셀의 향기 등 여행 중 마주한 장소의 인상과 감동은 케이트 메리만의 색감과 패턴, 질감을 입고 생생히 살아난다.


‘Botanical Reflections’

‘Botanical Reflections’

건축의 세부 요소와 강렬한 패턴이 당신의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건축 디테일에 담긴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그리고 강렬한 패턴은 묘사 역할을 넘어 특정 공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젤리지(Zellige) 타일을 보면 바로 모로코 건축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내 작업은 기억을 재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방문한 건축과 실내를 떠올리며 세상을 몽환적으로 표현한다.


글래스고 예술학교에서 실내 디자인을 전공한 경험이 특정 장소를 작품 주제로 삼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맞다. 대학에서 공간을 시각적이고 감각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전통적인 인테리어 드로잉과 달리 내 작업은 공간에서 인간적 경험을 포착한다. 크기나 원근법을 자유롭게 다루며, 사람이 경험하는 공간 속 질감이나 향기, 움직임 같은 감각적 깊이를 표현하는 것이다. 인테리어에 대한 이해는 이런 경험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데 필요한 기반이 됐다.


‘Tulips in the Close’

‘Tulips in the Close’

자신의 경험을 재료로 사용해 장소가 지닌 정수를 표현한 작품으로는 무엇이 있나

2024년 여름, 포르투갈에서 머물렀던 집은 매우 세련되면서도 따뜻한 나무 패널로 가득 차 있었다. 창문 셔터를 열면 밝고 대담한 정원과 풍경이 펼쳐졌는데, 그와 대비되는 어둡고 그늘이 진 실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이 극적인 대조를 그림으로 담아내고 싶어 ‘Interior Patterns, Portugal’이라는 시리즈를 작업했다. 깊고 풍부한 보르도 와인 특유의 붉은색을 많이 사용했다.


의외의 선택이다. 당신의 작업 대다수가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던데

색을 고를 때 꽤 즉흥적이다. 공간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그 순간 가장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색을 선택한다. 하지만 푸른색은 부드러운 하늘색부터 선명한 울트라 마린까지, 하늘과 바다처럼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동시에 광대한 외부 세계를 상징한다. 그래서 장소의 분위기와 감정을 자연스럽게 담아낼 수 있고, 또 어떤 감정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Dream of Riviera, Balcony to Endless Skies’

‘Dream of Riviera, Balcony to Endless Skies’

작품 주제를 선택할 때 ‘이곳을 꼭 그려야겠다’는 아이디어가 운명처럼 다가오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바로 알게 된다. 그건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런 곳에는 언제나 독특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하지만 모든 감흥이 즉각 작품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들은 몇 달 전에 경험한 장소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많다. 계속해서 스케치하다 보면 더 자세한 기억이 떠오르고, 그렇게 강렬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담은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경험과 감정의 기억 외에 당신의 창작욕을 자극하는 또 다른 영감이 있다면

책, 영화, 건축 그리고 주변 풍경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특히 풍경 속의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에 매료되곤 한다. 파도 소리나 나무 사이로 스치는 바람처럼 자연의 섬세한 순간들이 그렇다. 스코틀랜드의 집과 스튜디오, 하일랜드의 풍경 같은 일상적 장소도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스튜디오에 있는 물건들, 할머니가 준 꽃병이나 오래된 가구도 종종 작품에 등장한다.


 ‘Interior with Lemons’.

‘Interior with Lemons’.

개인적인 기억과 감각에서 출발한 그림을 통해 보는 이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는

그림 앞에서 잠시 멈춰 섰으면 한다.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위로와 평안을 느끼길 바란다. 폴 세잔의 말처럼 “내 그림은 세상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방식을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내 작업은 공간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동시에 그 속에는 보편적 감동이 담겨 있다. 관람자들이 각자의 추억과 감정을 떠올리며 공감하길 바란다.

Credit

  • 에디터 권아름
  • 사진 ©kate mary ©laura meek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디자이너 민홍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