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샤넬과 리움미술관이 만든 ‘시간을 다시 쓰는’ 실험실

샤넬 컬처 펀드와 리움미술관 그리고 예술가 컬렉티브 ‘블랙 퀀텀 퓨처리즘’이 함께 만든 ‘시간을 다시 쓰는’ 실험실에 초대받았다.

프로필 by 이경진 2025.10.10
프로젝트 전시 <타임 존 프로토콜>의 오프닝 행사에 참석한 올데이프로젝트의 타잔.

프로젝트 전시 <타임 존 프로토콜>의 오프닝 행사에 참석한 올데이프로젝트의 타잔.

시계와 믹싱 콘솔이 놓인 자리 위로 즉흥적인 음악, 낯선 주술을 외치는 목소리가 교차된다. 무대에 오른 여성 예술가 듀오는 필라델피아 출신 펑크 시인인 카메이 아예와(Camae Ayewa)와 파트너 라시다 필립스(Rasheedah Phillips). ‘블랙 퀀텀 퓨처리즘(Black Quantum Futurism)’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아티스트 듀오가 벌인 퍼포먼스는 ‘샤넬 컬처 펀드’가 리움미술관과 함께 예술 전시를 아이디어 실험실로 만드는 ‘아이디어 뮤지엄’의 세 번째 시리즈이자 최신 버전인 <타임 존 프로토콜>의 일환이다.


세계 표준시를 뒤집으며 새로운 시간 체계를 실험하기 위한 전시 <타임 존 프로토콜>의 오프닝 퍼포먼스가 리움미술관 로비에서 열렸다. 무대에 오른 오른 주인공은 ‘블랙 퀀텀 퓨처리즘’의 카메이 아예와와 라시다 필립스. 다중의 목소리가 하나로 수렴되는 독특한 ‘시간 의식’을 연출했다.

세계 표준시를 뒤집으며 새로운 시간 체계를 실험하기 위한 전시 <타임 존 프로토콜>의 오프닝 퍼포먼스가 리움미술관 로비에서 열렸다. 무대에 오른 오른 주인공은 ‘블랙 퀀텀 퓨처리즘’의 카메이 아예와와 라시다 필립스. 다중의 목소리가 하나로 수렴되는 독특한 ‘시간 의식’을 연출했다.

샤넬은 지난 100여 년 간 세계 곳곳에서 예술의 미래를 키워온 조용한 후원자다. 샤넬 컬처 펀드는 이런 후원 전통을 이어 예술을 성장시키는 ‘보이지 않는 손’을 자처해 왔다. 예술가와 혁신가가 자유롭게 실험하고 실패하며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무대 뒤편에서 묵묵히 예술의 다음 장을 준비해 온 것이다. 세계 곳곳의 미술관과 문화기관이 실험적이고 장기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샤넬 아트 파트너스’, 장르와 국경을 넘어 활동하는 아티스트에게 창작 자금과 멘토링을 제공하는 ‘샤넬 넥스트 프라이즈’, 분야와 세대를 초월한 사상가들의 대화를 팟캐스트로 담아낸 ‘샤넬 커넥츠’ 등을 이어가며 예술가와 혁신가들의 새로운 아이디어, 동시대의 중요한 사회문화적 이슈를 전 세계로 확장해 왔다. 샤넬 컬처 펀드가 후원하는 무대는 지리적으로도 넓다. 캘리포니아의 ‘캘아츠(CalArts)’에서 기술을 통한 예술 혁신을 지원하고, 베를린의 ‘함부르거 반호프’에서 실험적 자유를 북돋우며,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차세대 게임 체인저를 발굴하는 식이다. 예술이 앞으로 나아갈 길목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싹 틔워 온 샤넬이 서울에서 리움미술관과 함께 예술 실험실을 연 프로젝트가 바로 ‘아이디어 뮤지엄’이다.


오프닝 행사에는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를 비롯해, 모델 아이린과 배우 이청아, 박서준도 참석했다.

오프닝 행사에는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를 비롯해, 모델 아이린과 배우 이청아, 박서준도 참석했다.

포용성과 다양성, 평등과 접근성 같은 추상적 가치들이 물질과 예술로 구체화되는 ‘아이디어 뮤지엄’의 올해 실험 주제는 ‘시간’. 블랙 퀀텀 퓨처리즘은 전시 오프닝을 기념하는 특별 퍼포먼스인 ‘붕괴된 시간, 표류하는 선들(Collapsed Time and Drifting Lines)’을 통해 시간과 시계의 질서를 흔들고 SF소설에 숨겨진 정치 문제를 해체했다. 두 예술가, 카메이 아예와와 라시다 필립스는 양자물리학의 시공간 개념, 흑인 디아스포라의 시간 감각, 아프리카 전통에서 말하는 순환적 시간 개념을 다양한 관점으로 흥미롭게 교차시키며 실험해 왔다.


샤넬 컬처 펀드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는 중장기 연구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의 세 번째 프로젝트 <타임 존 프로토콜>. 시간을 규정하는 기존의 프로토콜을 새로 쓰고, 시간대를 재구획하며, 제국주의가 만든 세계 표준시 체계를 비판적으로 해체한다. 전시는 9월 28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샤넬 컬처 펀드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는 중장기 연구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의 세 번째 프로젝트 <타임 존 프로토콜>. 시간을 규정하는 기존의 프로토콜을 새로 쓰고, 시간대를 재구획하며, 제국주의가 만든 세계 표준시 체계를 비판적으로 해체한다. 전시는 9월 28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샤넬 컬처 펀드가 후원한 이번 프로젝트 역시 제국주의가 만든 세계 표준시라는 단일한 시간 체계에 균열을 내고 비판적으로 되짚는 작업이다. 기억과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시간 풍경을 펼쳐 시간을 규정하는 기존 룰을 새롭게 쓰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음악과 퍼포먼스,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경험적으로 체화되도록 설계되는 ‘아이디어 뮤지엄’의 방식대로 이번 전시 역시 관람자가 문화적 기억과 감각을 불러내 시간의 다층적 존재 방식을 몸으로 느끼도록 했다. 전시는 지난 9월 4일부터 6일까지 열린 <본초자오선 언컨퍼런스 Prime Meridian Unconference>로 확장됐다.


‘언컨퍼런스’라는 이름처럼, 전통적인 학술회의의 구조를 따르지 않고 활동가나 학자, 예술가들이 서울을 배경으로 아시아적 시간성과 흑인 디아스포라의 관점을 엮어 대안적 미래를 탐구한 자리. 경연과 워크숍, 퍼포먼스가 뒤섞인 이 프로그램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아시아적 시간성과 블랙 퀀텀 퓨처리즘의 시각을 연결하며 ‘다른 미래’를 함께 그렸다. 리움미술관 전시장에서 마주한 이 복합적인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 시간 속에서 살고 있을까. 누가 그 시간을 규정하는 것일까. 관람자 각자의 시간 또한 하나의 프로토콜이지 않을까. 다른 시간과 리듬을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그러니 아이디어 뮤지엄의 전시 관람을 시작할 땐 반드시 폰의 전원을 꺼두기를. 불가항력이던 시간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만의 새로운 타임 프로토콜을 탐색할 수 있는 경험을 위해서 말이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