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LYE

'쿨'한 도시 도쿄 여행!

도쿄는 쿨한 도시다. 지난 역사를 끌어안으면서 현재를 창조하고 미래를 설계할 줄 아는 안목을 지닌 도시. 그 속에 움튼 도쿄 스테이션 호텔에서 보낸 호사스런 하룻밤은 ‘공간의 즐거움은 물론 문화를 유지하는 도시의 시각과 태도에 눈뜬 계기가 됐다’는 앤더슨의 호텔 탐방기.

프로필 by ELLE 2013.12.18

 

도쿄의 지난 역사를 완벽하게 박제시키고 미래로 향하는 호텔이 있다. 이름하여, 도쿄 스테이션 호텔(The Tokyo Station Hotel). 신칸센의 속도만큼 빠르게 시대를 거슬러온 듯 모던한 객실 공간과는 달리 한 세기 전의 외관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호텔은 무려 6년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지난해 재오픈한 후 도쿄역 속의 완벽한 휴식처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뉴욕과 보스턴 등지를 이동하는 미국 여행의 종지부를 도쿄에서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차별화된 아시아에 잠시 머물며 숨 고르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도착한 도쿄와 서울에서 이동한 도쿄의 느낌은 이상하리만치 달랐다.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 도시로서 도쿄는 상대적으로 감흥이 적었지만 뉴욕발 도쿄행 비행기에서 내린 도시의 모습은 어쩐지 쿨해 보였다.

 

나리타 공항에 내려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이용하니 별다른 루트를 그리지 않고 자연스레 도쿄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1915년 개장해 1923년에 발생한 대지진과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공습이라는 잔혹한 역사를 고스란히 품으며, 빅토리안(Victorian) 건축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도쿄 스테이션 호텔과 마주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대규모 폭격으로 3층 돔이 무너지는 등 원형이 크게 훼손된 도쿄역은 2년 후 2층 건물로 복원돼 사용돼 왔다. 최대의 난공사로 알려진 지난 레너베이션을 통해 건물 전체를 들어올려 초대형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면진 설비를 갖췄다. 무엇보다 공들인 작업은 역사성을 보존하는 것으로 도쿄역의 상징인 빨간 벽돌과 기존 건물 유리창 등을 재활용했으며 폭격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았다. 지금 도쿄역 주변은 오히려 내국인들을 열광하게 만든다. 사정이 이러하니 ‘전통의 레너베이션’이라는 이슈로 과거, 현대, 미래를 연결하는 일본인들의 문화에 대한 시각에 경외감이 들기도 했다.

 

 

 

1 호텔 투숙객들에게만 오픈되는 조식 뷔페 레스토랑 ‘아트리움’은 도쿄역 안에 위치한 공간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해 보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2 클래식한 샹들리에, 모던한 소파와 카펫이 드라마틱하게 매치된 호텔 로비.

 

호텔 입구에 들어서니 수트를 입은 남자 직원들이 마치 황태자를 맞이하듯 프런트 데스크까지 안내해 준다. 사실 이보다 더 큰 감동은 일본 전압에 맞는 아이폰5 충전기(은근 구하기 힘들다)가 당장 필요한 상황에서 이에 빠르게 대처해 준 서비스 정신이었다. 항상 준비된 자세로 고객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방문을 열었다. 첫인상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공간이라는 느낌. 타임머신을 타고 도쿄로 날아온 유럽 어느 나라의 왕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든 건 유럽 왕실 문화를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판타스틱한 공간 때문이다. 한편 도쿄 스테이션 호텔에 묵는 또 다른 즐거움 중 하나는 호텔 투숙객들에게만 오픈하는 레스토랑이 있다는 사실이다. 조식 뷔페 레스토랑 ‘아트리움(The Atrium)’이 그 주인공. 웅장한 높이를 가진 클래식한 공간에 세련된 인테리어 소품과 데커레이션까지, 먹지 않아도 배부를 정도로 호사스러운 레스토랑은 그 어떤 카메라도 표현할 수 없는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객실 구석구석에선 일본인들이 추구하는 하이 테크놀로지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조명과 금고 등 첨단 기기들이 호텔 이곳저곳에 보일 듯 말 듯 정갈하게 설치돼 있어 편리함을 더해준다. 파우더 룸, 샤워 룸, 배스 텁(BathTub) 3개 공간으로 이뤄진 욕실은 가장 감동적인 장소로 고급스런 개인 사우나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날려버릴 궁극의 욕실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만하다. 특히 최첨단 재패니스 하이테크(Japanese High-Tech)가 반영된 욕조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원하는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어 럭셔리 스파 부럽지 않다. 가장 궁금했던 이곳의 어메너티는 영국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 길크리스트 앤 소에임즈(Gilchrist & Soames). ‘기념으로 가져가세요’라는 배려인지 샤워 부스와 파우더 룸에 동일 제품 라인을 여러 개씩 진열해 놓은 덕에 풍요로운 마음으로 원없이 낯선 뷰티 브랜드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또 특유의 일본식 디테일이 살아 있는, 그리하여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이 겸비된 공간은 약간의 과장을 더하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그곳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했다.

 

 

 

 

각각의 룸은 도쿄역 주위를 한눈에 관망할 수 있는 뷰를 선사한다.

 

빅토리아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레너베이션한 로비.

 

카멜리아 바에 운치 있게 늘어선 술병들.

 

6 신구의 조화. 마루노치 빌딩을 등에 업은 도쿄역 야경.

 

창문을 통해 내려다본 도쿄역 광장은 마치 장난감 도시처럼 반듯하고 아기자기해 보였다. 일본 특유의 진한 아스팔트 컬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 풍경 너머로 일본 왕궁(Imperial Palace)이 보였는데, 그래서 더욱 더 대접받는 왕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든 건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에 산재한 대도시들은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 쇼핑몰 등을 내세우며 서로 ‘내가 최고’라 부르짖지만 생각해 보면 일본만큼 다채롭고 개성 넘치는 숍이 즐비한 곳도 없다. 조식을 먹고 서둘러 나선 도쿄 여행은 호텔 건너편에 있는 쇼핑몰 키테 쇼카(Kitte Shoka)에서 시작했다. 이럴 수가, 체신부 건물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환상적인 이곳은 장난감 나라 같다.

 

빌딩 안엔 10층 이상 높이로 뻥 뚫린 열린 공간이 펼쳐지고 그 둘레로 다양한 매장들이 층별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가장 인상적인 곳은 건물 루프톱이다. 루프톱에 오르면 도쿄 역사 주변을 한눈에 관망할 수 있는데 전망은 환상 그 자체다. 호텔 오른쪽 건너편에는 마루노치 백화점이 있고, 그 뒤편으로 왕궁이 있으니 관광과 쇼핑의 탄탄한 긴장감이 오가는 지역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론 유라쿠초 역에 새로 생겼다는 남성 전문 백화점 한큐 멘스 스토어(Hankyu Mens Store)가 궁금해 긴자로 향했다. ‘핫’한 남성 브랜드를 모두 갖추고 있고 일본 남성의 취향이 반영된 제품군이 유독 눈에 띈 이곳은 쇼핑할 맛 나는 공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은 휴식과 쇼핑, 볼거리라는 3박자의 균형을 절묘하게 즐긴 진정한 여행의 마침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Credit

  • EDITOR 채은미 WRITER ANDERSON PHOTO ANDERSON
  • THE TOKYO STATION HOTEL
  • HOTELS.COM DESIGN 하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