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겨울을 물들일 뉴 펑크에 관하여
2025년 F/W 식 펑크는 더 이상 분노와 반항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대의 향수와 낭만 그리고 정교한 장인 정신을 만나 우리가 지닌 마음을 대변해 주는 새로운 태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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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 순서대로 )1970년대 영국 펑크 신의 성지인 ‘SEX’ 부티크. 영국 펑크를 이끈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클래런. 1992년 비비안 웨스트우드 가을/겨울 컬렉션. 펑크 신의 대모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2011~2012 F/W 파리 쇼. MCQUEEN. VIVIENNE WESTWOOD
1970년, 거리에서 분노를 외치던 펑크가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엔 과거의 분노와 거친 외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2025 F/W 런웨이에서 한층 세련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우스 디자이너들은 저마다의 시선과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펑크 무드를 재해석하며, 새로운 시대의 펑크를 제안했다. 1970년대 영국은 혼돈 그 자체였다.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 젊은 세대의 좌절감이 사회 전반에 불만을 쌓아올렸다. 권위와 제도, 계층에 대한 반감은 음악과 패션, 태도로 분출되었고, 바로 이 혼돈의 시기에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클래런이 등장한다. 이들은 대처 정부의 보수주의에 맞서 ‘영국의 무정부주의’를 외쳤고, 펑크는 문화적 저항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들이 1971년에 오픈한 ‘SEX’ 부티크는 사회적 금기와 반항의 에너지가 뒤섞인 성지였다. 찢어진 티셔츠,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슬로건 티셔츠, 타탄체크, 본디지, 체인과 징은 곧 펑크의 상징이 되었고, 이는 섹스 피스톨스부터 조앤 제트, 수지 수, 조니 로튼, 시드 비셔스, 케이트 모스까지 음악과 스타일을 규정한 인물들로 이어졌다. 펑크를 입는다는 것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닌, ‘태도’를 입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레트로 무드가 대세여서일까? 디자이너들은 거칠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펑크를 다시 꺼내들었다.

(왼쪽상단) 펑크 문화의 레전드로 불리는 섹스 피스톨스의 베이시스트 시드 비셔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ALTUZARRA. ISABEL MARANT. CHANEL. ISABEL MARANT.
하지만 2025년 F/W 펑크는 조금 다른 결을 보인다. 과거의 분노를 지우고 코드와 상징만 남겼다. 레트로적 향수와 정교한 테일러링, 장인 정신으로 새로운 뼈대를 구축했다. 새로운 펑크의 시대가 재탄생한 것이다. 이자벨 마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킴 베커는 이렇게 말한다. “다들 같은 무드에 빠져 있는 게 놀랍지만, 사실 우리가 무언가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강해져야 한다는 마음이 반영된 것 같다.” 그는 펑크의 반항 정신을 섹슈얼리티로 치환해 록과 그런지, 뉴 로맨틱 무드 등 모두를 아우르는 룩을 제안했다. 버버리는 타탄체크를 전면에 내세워 전통 시골집 무드와 펑크 미학을 동시에 담았고, 알렉산더 맥퀸의 션 맥기르는 가죽과 정교한 테일러링으로 ‘보호’와 ‘취약성’을 대비시키며 펑크의 본질을 새롭게 풀어냈다. 하이더 애커만의 톰 포드 데뷔 쇼는 나이트클럽 무드와 함께 강렬한 실루엣, 지퍼와 가죽으로 펑크의 강렬함을 우아하게 각인시켰다. 파투와 발렌티노는 2010년대 인디 슬리즈와 펑크를 결합해 혼종적이고 대담한 새 장르를 만들어냈다. 오늘날의 펑크는 단순한 복고풍이 아니다. 불안한 경제와 사회적 위기 속에서 개인이 이를 극복하려는 무의식적 심리가 패션으로 표출된 결과다. 이전처럼 거칠게 항의하기보다 정교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저항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뉴 펑크’다. 강하면서도 세련되고, 거칠지만 정교한 펑크. 더 이상 단순한 옷차림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태도와 마음가짐을 대변하는 새로운 언어가 됐다.
Credit
- 에디터 장효선
- 사진 LAUNCHMETRICS SPOTLIGHT·GETTYIMAGESKOREA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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