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잇백 2025 패션 트렌드로 부활하다
추억 속 패션 아이템을 다시 봐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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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 가방 어딨어?” 오랜만에 찾은 본가에 오자마자 오래된 짐을 모아둔 창고부터 찾았다. 독립할 때 두고 왔던 몇몇 짐 속에 불현듯 떠오른 것을 찾는 일이었다. 어디 갔지? “그 옛날 가방들 모아둔 박스 있잖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 20대 초반 에디터의 패션 바이블은 할리우드의 아름다운 그녀들이었다. 지금의 Y2K 패션은 물론 다양한 스타일의 스트리트 패션 등을 엿볼 수 있었던 파파라치 컷은 패션을 동경하고 애정하는 에디터에겐 바이블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열심히 모았던 유물 같은 패션 아이템이 지금 저 창고에 있을 것이다.



2005년 끌로에의 패딩턴 백을 처음으로 매거진 화보에서 봤다. 묵직한 자물쇠 장식이 달린 가방을 케이트 보스워스가 아무렇지 않게 팔에 걸고 거리를 활보하던 파파라치 컷도 단연 화제였다. 셀린느의 러기지 백 역시 기억 속 한편에 자리한 아이템. 피비 파일로의 미니멀리즘이 정점에 달했던 시절, 기네스 팰트로와 안젤리나 졸리가 블랙 러기지를 손에 든 채 거리를 걷는 사진은 ‘시크미’에 목숨 거는 뭇 여성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당시 러기지 백은 피비 파일로의 스타일을 몸소 이룰 것 같은 마법의 아이템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그 옛날 목숨 걸고(?) 사수했던 ‘잇’ 백을 다시 찾아야 할 때다.
2000년대 초반 패션 언어는 ‘잇’ 백(It Bag)’이었다. 런웨이에서 탄생해 할리우드 셀럽들의 손에 들리면 곧장 세계적인 열풍으로 번졌고, 파파라치 컷 속의 한 장면이 유행을 결정하던 시대였다. 펜디의 스파이 백은 제니퍼 애니스턴과 린지 로한이 일상처럼 들면서 자연스러운 럭셔리의 상징이됐고, 펜디의 맘마 백은 <섹스 앤 더 시티> 속 사라 제시카 파커가 남긴 대사와 함께 뉴욕을 대표하는 ‘잇’템으로 자리 잡았다. 발렌시아가의 르 시티 백은 니콜 리치, 메리 케이트 올슨, 케이트 모스 같은 보헤미언 아이콘들의 한쪽 팔에 걸려 자유분방한 ‘쿨’걸 무드를 완성했다. 앞서 말한 끌로에의 패딩턴 백은 케이트 보스워스와 시에나 밀러의 파파라치 컷을 통해 가장 구하기 어려운 ‘대기 리스트 아이템’으로 기록되는가 하면, 셀린느의 러기지 백은 안젤리나 졸리가 보여준 강렬한 파워 시크 룩과 함께 럭셔리의 새로운 얼굴이 됐다.




그런가 하면 디올의 새들 백은 패리스 힐튼, 비욘세 그리고 사라 제시카 파커가 즐겨 들며 2000년대 초반 Y2K 감성의 상징으로 루이 비통의 멀티컬러 스피디 백은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협업으로 등장해 패리스 힐튼과 제시카 심슨의 상징 같은 아이템으로 당시 가장 대중적이면서 ‘힙’한 명품 가방의 아이콘이었다. 마크 제이콥스의 스탐 백도 빼놓을 수 없다. 2005년 공개된 이 백은 모델 제시카 스탐의 이름에서 탄생해 니키 힐튼과 린지 로한이 즐겨 들면서 2000년대 중반 럭셔리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이처럼 수많은 ‘잇’ 백은 단순히 브랜드의 상징을 넘어, 그 시대 셀러브리티들의 개성과 라이프스타일을 투영한 하나의 패션 오브제였다.
하지만 ‘잇’ 백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과시적 소비에 대한 피로감과 경제적 압박 속에서 ‘잇’ 백에 대한 로망은 예전 같지 않았다. 동시에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가 트렌드를 선도하면서 유행보다 개인의 취향이 중요한 시대로 서서히 탈바꿈하게 되고, MZ세대의 비싼 가방보다 지속 가능한 패션을 선호하는 성향도 한몫했다. 결국 ‘잇’ 백의 하향세는 단순한 사라짐이 아니라 패션이 더 이상 획일적인 상징물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과 시대의 이야기를 담는 방향으로 나아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2025년,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고전 속담 같은 이야기가 또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2005년, 전 세계 대기 리스트를 만들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끌로에의 패딩턴 백이 돌아왔고, 한때 파워 우먼의 상징으로 불렸던 셀린느의 러기지 백 역시 마이클 라이더의 손끝에서 새롭게 재해석돼 런웨이에 등장했다. 패딩턴 백은 여전히 묵직한 자물쇠 장식을 지니고 있지만 소재와 컬러, 크기에서 2025년의 감각을 더해 레트로와 모던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러기지 백은 구조적 실루엣과 존재감을 유지한 채 좀 더 경쾌한 디테일과 대담한 사이즈, 부드러운 컬러 팔레트를 입어 등장하자마자 소셜 미디어에 도배가 됐다.
재미있는 건 이 가방들이 단순한 복고 아이템이 아니라 빈티지 시장에서 수집의 가치를 갖고, 브랜드의 리에디션 라인을 통해 지속 가능성과 하이퍼 퍼스널 트렌드까지 담아내며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것. 과거의 상징적 오브제가 지금의 시대성과 결합해 새롭게 소비되는 과정에서 패션은 돌고 도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결을 입고 다시 태어난다는 걸 방증한다. 끌로에의 패딩턴 백이 케이트 모스의 무심한 보헤미언 무드를 상징했다면, 2025년의 패딩턴 백은 지속 가능한 소재와 미니멀한 스타일링 속에서 더 세련된 레트로를 구현한다. 셀린느의 러기지 백 역시 과거 안젤리나 졸리와 기네스 팰트로의 파워플하고 시크한 패션 아이콘에서 오늘날에는 개인화된 럭셔리와 데일리 시크로 재정의되고 있다.
결국 유행은 원을 그리며 돌아오지만, 같은 지점을 맴돌진 않는다. 시대와 세대를 거치며 우상향을 그리는 나선형에 가깝다. 그리고 그 나선 속에서 다시 돌아온 ‘잇’ 백들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현재의 욕망을 담아내며, 패션이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방식임을 보여준다. 요 며칠 리바이벌된 ‘잇’ 백들을 보니 반가움이 앞선다. 그 옛날 사랑했던 아이템을 다시 한 번 꺼내 볼 수 있다는 점. 추억의 아이템으로 다시 오늘의 패션 스토리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랄까.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잇’ 백도, 추억도!
Credit
- 에디터 이하얀
- 일러스트레이터 김란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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