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슬로건 티셔츠 트렌드
메시지 담은 레터링 티셔츠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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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메시지를 새긴 티셔츠로 주목받은 디자이너 코너 아이브스.
아마 누구나 한 번쯤 슬로건 티셔츠를 입었거나 본 적 있을 것이다. 여름날 거리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의 등판에 적힌 ‘NO FEAR’ 같은 문장, 여행지에서 사온 기념 티셔츠에 새겨진 도시 이름 혹은 학창 시절 단체 티셔츠 위에 큼직하게 박힌 농담 같은 문구들. 단순한 옷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그 짧은 글자에 웃고, 공감하고, 때로는 고개를 갸웃하며 의미를 반추했다. 그렇게 티셔츠 위의 문장은 늘 우리 곁에 있었고, 기억 속에 남았다. 이번 시즌 런웨이는 그 익숙한 ‘문장의 힘’을 다시 소환했다. 조용히 미니멀리즘에 잠겨 있던 패션이 깨어나, 거리의 확성기처럼 선명한 슬로건을 옷 위에 새겨 넣은 것이다. 아쉬시는 반짝이는 시퀸 티셔츠 위에 ‘WOW WHAT A SHIT SHOW’라는 문구를 올렸다. 이는 디자이너 스스로 악플을 받아들이는 자조적 태도인 동시에 세상을 향한 도발적인 농담처럼 읽힌다. 유쾌하고 뻔뻔한 이 한 줄은, 바로 지금의 불안정한 시대를 솔직하게 요약한 선언이었다.

아쉬시의 슬로건 티셔츠.

존 갈리아노 시절, 디올의 상징적 문구였던 ‘J’ADORE DIOR’를 부활시킨 2025 F/W 시즌 디올.
한편, 디자이너 코너 아이브스는 쇼 피날레에 ‘PROTECT THE DOLLS’라는 티셔츠를 입고 나타나 젊은 세대의 유머와 사회적 감각을 동시에 포착했다. 언뜻 귀엽고 장난스럽게 들리는 이 문구 속에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에 대한 연대와 동시대 젊은 세대만 이해할 수 있는 위트가 숨어 있다. 윌리 차바리아는 ‘HOW we LOVE IS WHO WE ARE’라고 쓰인 티셔츠를 통해 라틴 커뮤니티와 퀴어 정체성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런웨이를 집회장처럼 바꾸고, 디올은 존 갈리아노가 탄생시킨 전설적인 슬로건 ‘J’ADORE DIOR’를 부활시키며 여성 연대와 권한 부여의 메시지를 드러냈다. 이렇게 슬로건 티셔츠는 단순한 장식이나 복고가 아닌, 지금과 시대 정서를 반영하는 강력한 언어가 된다. 사실 슬로건 티셔츠의 힘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80년대 영국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캐서린 햄넷은 이미 티셔츠를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며 패션과 사회적 발언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는 1984년, 당시 총리 마거릿 대처와의 만남에서 커다란 흰 티셔츠 위에 ‘58% DON’T WANT PERSHING’이라는 문구를 적었다.

캐서린 햄넷의 상징적 슬로건 티셔츠 중 하나인 ‘STAY ALIVE’.
미국 퍼싱 미사일 배치에 반대하는 영국인의 과반 여론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사람들은 놀랐고, 대처는 당황했으며, 카메라는 그순간을 영원히 기록했다. 햄넷은 “슬로건은 잠재의식에 닿는다. 입는 순간, 그것은 자신을 브랜딩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슬로건 티셔츠는 단순한 옷이 아니라, 청년 세대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강력한 도구가 됐고, 이후 팝 듀오 왬!(Wham!)이 뮤직비디오에서 입은 ‘CHOOSE LIFE’ 티셔츠는 당시 방황하던 청소년의 마음에 희망의 싹을 심은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슬로건 티셔츠는 서서히 변화의 궤적을 그렸다. 1990년대에는 아이러니와 유머, 스케이트보드 문화의 내부 은어로 기능했고, 2000년대에는 ‘Got Milk?’ ‘That’s Hot’ 같은 팝 컬처 문구가 티셔츠를 장악했다.



2010년대에는 다시 사회적 의미를 띠며 ‘Time’s up’과 미투(#MeToo) 운동 속에서 레드카펫을 장식했지만, 곧 SNS가 사회적 발언의 중심이 되면서 티셔츠의 존재감은 줄어든 듯했다. 하지만 2025년, 우리는 다시 티셔츠 위의 글자와 마주한다. 아쉬시의 ‘WOW WHAT A SHIT SHOW’는 아이러니와 자조를 담은 유쾌한 외침으로, 현재의 혼돈과 불안을 유머러스한 태도로 압축한다. 코너 아이브스의 ‘PROTECT THE DOLLS’는 장난스럽지만 연대와 보호의 메시지를 담아 젊은 세대와 소통한다. 윌리 차바리아와 디올까지, 모든 디자이너가 말한다. 그리고 슬로건 티셔츠를 입는 순간, 우리 역시 세상에 목소리를 낸다. 선언이자 농담 또는 연대이자 자기표현의 목소리를. 햄넷이 40년 전에 증명했듯, 티셔츠 위의 한 줄 문장은 스타일을 넘어 태도가 된다. 지금 패션은 다시 묻는다. 우리는 무얼 말하고 싶은가?
Credit
- 에디터 손다예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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