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말 달려온 밴드 크라잉넛 인터뷰
크라잉넛의 30년은 한 시대를 관통한 청춘의 기록이자, 사라지지 않는 밴드 정신의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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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0주년을 맞은 크라잉넛. 오랫동안 밴드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이 지속을 가능하게 만든 힘은
상면 일단 경록, 상면, 윤식, 상혁 네 명은 초등학교 때부터 동창이었어요. 밴드 해체가 잦지만, 우리는 동네 친구다 보니 오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경록 음악이라는 교집합 덕분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진짜 재미있게 놀았어요. 놀이터부터 클럽까지 함께했으니까요.
(왼쪽부터) 이상혁이 입은 스커트는 Number (N)ine. 팬츠는 P.A.M. 선글라스와 티셔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인수가 입은 니트는 Molly Goddard. 재킷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팬츠는 모델 소장품. 이상면이 입은 레더 재킷은 Deadwood. 니트와 티셔츠, 팬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한경록이 입은 재킷은 Martine Rose. 팬츠는 Simone Rocha.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윤식이 입은 니트는 Casablanca. 이어링과 브레이슬릿은 모두 모델 소장품.
30주년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어떤가요? 현재 홍대 ‘상상마당’에서 30주년 기념 전시 <말 달리자>도 활발히 진행 중이죠
상면 30주년이 대단한 세월이라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이 기념비적인 해를 발판 삼아 앞으로 행보에 대한 고민과 마음가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인수 일하는 모든 분께 말씀드리고 싶네요. 여러분도 30주년을 맞을 테니까 일기라도 좀 써두시고, 사진을 버리지 말고 꼭 챙겨두십시오.
윤식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하는 라이브 밴드로서 함께 땀 흘리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묵묵히 걸어왔어요. 30년 동안 잘될 때도 있었지만, 멤버들의 군 입대나 팬데믹처럼 어려운 때도 있었거든요. 무대 경험도 다채로워요. 대통령 행사에도 참여했고, 무료 봉사 무대도 했고, 아주 더운 곳 혹은 아주 추운 곳에서도 공연했습니다. 이런 시기를 다 겪었지만 무엇보다 라이브 밴드라는 정체성을 지금까지 지켜온 것이 가장 자랑스럽죠.
이상면이 입은 프린트 톱은 Kiko Kostadinov. 데님 쇼츠는 Who Decides War. 레더 재킷과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크라잉넛의 초기 음악은 ‘펑크’ ‘DIY’ ‘날것’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되곤 합니다. 당시 표현하고 싶었던 ‘펑크 정신’은
상혁 ‘DIY’ 정신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 록 밴드가 앨범을 내려면 특정 레이블에 들어가야 했고, 주로 부력이 많이 쌓인 밴드가 무대를 했어요. 우리는 연주를 잘하지도 못하고, 그냥 자작곡 만드는 걸 매번 시도했어요. 연습이나 돈, 실력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부딪혔죠. 그게 펑크 정신 아닐까요?
굉장히 과감한 도전이었겠네요
상혁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매일 공연하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상면 그냥 광야에 내던져졌죠. 잘 못하는데도 별로 창피한 줄 모르고 미친 것처럼 공연했으니.
경록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이 없었어요. 망설임보다 저지르는 게 더 빨랐고요. 일단 해보고 나서 생각하자! 인디 밴드다 보니 정답이 없었고, 개척해 나간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크게 투자받은 돈도 없어서 잃을 게 없었죠(웃음).
인수 비틀스가 대중화되기 전에 겪었던 함부르크 시대처럼. 클럽에서 ‘뼈빠지게’ 고생했지만 그때가 제일 즐거웠습니다.
윤식 저항 정신이라든가 정치 진영이 노래에 담겼던 시대가 있었고, 헤비메탈이 떴던 시기, 펑크나 모던 록이 유행했을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유행을 좇지 않고 소소하게 우리끼리 만든 성향이 지금까지 이어져왔어요. 이게 장수 비결이 아닌가 싶어요.
이상혁이 입은 코트는 Lemaire. 팬츠는 Steppa. 슈즈는 Toga Virilis. 글러브는 Maison Margiela. 선글라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크라잉넛만의 규율도 있나요
경록 공연을 정말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 어릴 때도 철딱서니 없이 놀았지만 공연만큼은 성실하게, 펑크 내지 않고 열정적으로 준비해서 임했거든요. 소규모 라이브 클럽이든, 객석이 텅텅 비거나 단 한 명이 있든 우리는 늘 한결같은 에너지로 공연했어요. 정한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지켜온 규율이죠. 10월에 공연이 스무 개 정도 있었는데, 다음 공연을 위해 에너지를 아끼는 건 또 싫었어요. 매 공연이 마지막 공연인 것처럼 최선을 다합니다.
윤식 음원을 듣고 음반을 많이 사주시는 것도 좋지만, 공연을 즐겨주시는 게 진짜 밴드를 느낄 수 있는 방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공연장이 제대로 된 울림을 안겨주거든요.
김인수가 입은 퍼 코트는 Pièces Uniques.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헤드 스카프와 선글라스, 팬츠는 모두 모델 소장품.
1990년대 홍대 인디 신은 지금과 문화적 맥락이 많이 달랐겠죠. 그 시절의 에너지와 분위기, 감각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경록 야생이요. 거칠었던 1990년대는 진짜 야생이었어요.
인수 야만이라 쓰고 낭만이라 읽는다.
경록 우하하하. 야만이 더 맞겠네. 공연 문화가 아직 제대로 자리 잡기 전이어서 관객도 날것, 우리도 날것 그 자체였고, 흥분을 감출 수 없었어요. 1996년에 ‘스트리트 펑크 쇼’를 했는데, 그 무대에 부직포가 깔려 있었거든요. 당시에는 무대를 만드는 시스템이 부족해서 대충 부직포를 박아 마감했고 바리케이드 같은 것도 없었어요. 근데 관객들이 너무 흥분해서 무대 부직포를 갈기갈기 찢었더라고요.
상면 ‘무대를 찢었다’는 말이 그렇게 시작된 걸지도 몰라(웃음). 예전 클럽과 요즘 클럽 스타일의 변화라면 예전에는 특정 클럽이 하나의 장르를 표방해 그 장르에 관객이 모여들면서 문화가 형성됐는데, 요즘 클럽이라는 공간은 이벤트성 행사를 여는 곳으로 많이 활용되는 것 같아요.
초창기 작업을 떠올렸을 때 가장 ‘크라잉넛스럽다’고 느끼는 지점은
상면 역시 ‘말 달리자’. 이 곡은 크라잉넛의 전과 후를 가르는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윤식 ‘서커스 매직 유랑단’에도 우리 색깔이 많이 담긴 것 같아요. 꿍짝꿍짝하고 시끌벅적하잖아요.
상면 그 곡은 인수의 아코디언이 들어오면서 사운드 스펙트럼이 확장됐지.
경록 저는 요즘 ‘좋지 아니한가’ 가사가 새롭게 들려요. 예전에 들었을 때보다 더 와닿더라고요. ‘바람에 흐를 세월 속에 우리 같이 있지 않나’라는 문장이 특히. 우리가 30년 동안 함께 왔구나 싶고요.
한경록이 입은 레더 재킷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라이브의 고수, 우리들의 ‘레전드’ 무대를 꼽자면
경록 2002년 월드컵. 전 국민의 축제였죠. 월드컵 4강 신화와 여러 팀의 응원 소리, 현장에서 사람들이 이토록 흥분할 수 있나 싶을 만큼 다들 미쳤던 것 같아요. 도파민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노는 거 정말 좋아하잖아요(웃음).
윤식 저는 1996년 홍대 앞 주차장이랑 명동 거리에서 열린 ‘스트리트 펑크 쇼’. 당시에는 홍대클럽 ‘드럭’ 같은 지하 공연장에서만 무대를 했어요. 우리는 인기가 없었고, 우리 음악은 마이너한 문화로 여겨졌으니까요. 무작정 야외에 모니터 스피커를 세워놓고 공연했는데, 심지어 모니터 스피커 개념을 몰라 발을 올리는 물건인 줄 알았죠. 그때 처음으로 사람들이 펑크 록 문화를 받아들이고 같이 즐길 수 있다는 걸 체감했고 충격을 받았어요.
당시 밴드 신과 지금 밴드 신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경록 그때는 매번 같은 공연이라도 늘 ‘슬램’하고, 놀고 끝나면 다 같이 뒤풀이하며 자연스럽게 연대가 됐어요.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하는 모든 팀이 서로 친했거든요.
상면 요즘은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규모가 아니죠. 규모가 방대해지고 장르도 다양해져서 그때처럼 얽히고설키기 힘든 것 같아요. 그렇지만 밴드가 활성화될 수 있는 장치가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루키를 육성하는 프로그램도 많아졌고, 클럽이나 기획사에서 자체적으로 밴드를 키우기도 하고요. 심지어 아이돌 기획사에서도 밴드를 만들죠.
경록 옛날에는 아이돌 기획사가 밴드를 만들면 밴드를 흉내내는 아이돌의 모습에 그쳤는데, 요즘은 진짜 실력도 좋고 잘해요.
윤식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멋있던데요.
경록 날것의 느낌이 살아 있어서 좋더라고요. 기획사도 멤버들의 DNA를 훼손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아요.
지난 9월 국민대학교 축제 무대를 찢었습니다. 1990년대생부터 2000년대생으로 이뤄진 대학생 관객이 ‘좋지 아니한가’부터 ‘말 달리자’ ‘룩셈부르크’ 등 세트리스트를 ‘떼창’했죠
상면 요즘 친구들이 대단한 게 곡을 공부하고 와요. 우리가 활동했던 1995년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친구들이 다 따라 불러서 너무 신기했죠.
경록 1997년에 클럽 드럭에서 ‘말 달리자’를 부른 영상에는 ‘와, 저 시대 때 태어나서 놀았어야 했는데’ 같은 댓글이 달려서 신기했습니다.
박윤식이 입은 프린트 톱은 Mugler. 니트는 Andersson Bell. 팬츠는 Namesake. 슈즈는 Timberland.
세대가 다른 관객을 동시에 만나는 요즘, 공연을 구성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나요
윤식 옛날에는 PC 통신으로 ‘저희 어디에서 공연합니다’라는 게시글을 올리거나, 포스터를 직접 만들어서 붙였어요. 심지어 CD랑 테이프도 전국에 배포되지 않아 공연장에서 팔기도 했죠. 지금은 음원 사이트에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고, SNS를 통해 세계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게 부럽습니다.
상면 아, 최근에 태국 뮤지션 ‘품 비푸리트’가 옛날 비디오테이프 감성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던데, 인상 깊었어요.
2020년대 세대에도 귀 기울이는 크라잉넛은 후배 밴드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경록 10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까지는 고민과 걱정을 덜하고 그냥 ‘로큰롤’을 즐겼으면 좋겠어요. 딱 ‘미친 놈’처럼 놀 수 있는 시기가 있어요. 우리 어떻게 밴드를 해야 되지? 어디 기획사에 들어가야 하지? 히트곡을 내고 유행을 따라가야 해. 이런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땀 흘리고 놀아요. 얼마나 재미있어요! 그 꿀 같은 청춘을 놓치지 마세요.
인수 무엇보다 기타 살 때는 저렴한 걸 사서 쓰다가 실력이 오를수록 비싼 걸 사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처음부터 비싼 기타를 사 놔야 합니다.
(왼쪽부터) 김인수가 입은 퍼 코트는 Pièces Uniques.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헤드 스카프와 선글라스, 팬츠는 모두 모델 소장품. 이상면이 입은 프린트 톱은 Kiko Kostadinov. 데님 쇼츠는 Who Decides War. 레더 재킷과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윤식이 입은 프린트 톱은 Mugler. 니트는 Andersson Bell. 팬츠는 Namesake. 슈즈는 Timberland. 한경록이 입은 프린트 톱은 Jean Paul Gaultier. 레더 팬츠는 Juntae Kim.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상혁이 입은 코트는 Lemaire. 팬츠는 Steppa. 슈즈는 Toga Virilis. 글러브는 Maison Margiela. 선글라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 친구들에게 크라잉넛이 남기고 싶은 밴드 정신은
윤식 우리 계속할 건데요(웃음).
상면 자신의 밴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남의 것을 똑같이 할 수는 없어요. 자기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갖고, 고유한 것들을 만들어냈으면 좋겠어요.
인수 자신에게 솔직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즐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경록 저는 주저하지 않고 저질렀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너무 검열하지 말고, 일단 저질러도 된다. 그것이 ‘로큰롤’ 아닌가!
크라잉넛의 마지막 곡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길지 너무 궁금합니다
경록 갑자기 생각났는데, 마지막 가사는 ‘너는 나였다’ 이렇게 될 것 같아요. 세상은 하나였다, 이런 뜻이죠.
상면 곡에 담길 내용은 아니지만, 마지막 무대는 그냥 작은 클럽이어도 저는 좋을 것 같아요. 더 따뜻할 것 같아요.
경록 맞아. 사실 클럽 공연이 제일 재밌지
Credit
- 에디터 정소진
- 사진가 황병문
- 스타일리스트 이종현
-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최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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