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BAL OF SC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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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앞에서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빅투아의 모습.
프랑스 오뜨 꾸뛰르 뷰티 브랜드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Officine Universelle Buly)의 공동창립자인 빅투아 드 타야크(Victoire de Taillac)가 2년간 프랑스 전역의 정원을 탐험하며 완성한 ‘레 자뎅 프랑세 컬렉션(Les Jardins Français Collection)’. 이 놀라운 향기의 앙상블을 경험하기 위해 〈엘르〉가 한국 대표로 빅투아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프랑스 남서부 툴루즈(Toulouse)의 ‘샤토(Château)’에 다녀왔다. 파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약 1시간 반을 날아가 또 차를 타고 30분 정도 들어가자 모습을 드러낸 성은 드넓은 대지에 둘러싸여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요새 같았다. 저마다의 목소리로 지저귀는 새들과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 소리, 풀잎이 부딪치는 소리까지. 오랜 시간 잊고 지낸 자연의 소리가 귓가에 맺히는 경험을 하며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부터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텃밭을 가꾸고 있는 빅투아.
빅투아가 좋아하는 베이커리에서 사 왔다는 빵과 싱그러운 과일에 에스프레소를 곁들여 프렌치식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시작된 첫 일정은 그녀가 직접 가꾸는 텃밭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약 10년간 가드닝을 취미로 하고 있다는 빅투아가 자연스럽게 흙에 핀 잡초를 뽑으며 자신이 가꾸는 텃밭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전체 면적에 비해 소박한 사이즈의 텃밭이었지만 토마토와 주키니, 감자, 비트, 파촐리 등이 자라고 있었다. 매년 여름이 오면 빅투아의 가족 모두가 모여 이틀간 공들여 씨앗을 심는다고. 따스한 여름 바람에 실려온 각종 채소와 과일, 허브 향이 코끝을 스미자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전에 맡아본 적 없는 향에 대한 흥미랄까? 빅투아는 “정원에 햇볕이 머물 때의 향과 이른 아침 정원에 나가 채소를 수확할 때 느껴지는 향이 다르다”며 “레 자뎅 프랑세 컬렉션은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 향을 표현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 싱그러운 컬렉션을 가리켜 ‘꽃을 원료로 하지 않는 향수에 대한 선언’이자 ‘자연이 지닌 가치를 오롯이 재현’한 향기라고 표현했다. 텃밭을 지나 작은 개울가를 건너자 녹음이 우거진 프랑스 스타일의 정원이 나타났고, 빅투아는 그곳에서 레 자뎅 프랑세 오 트리쁠 향수를 만들게 된 계기와 추억, 감상을 공유했다. 2019년,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의 창립자인 람단 투아미(Ramdane Touhami)는 평소 즐겨 찾는 생 제르맹 골동품 가게에서 아름다운 캘리그래피가 새겨진 19세기 씨앗 상자를 발견했다. 빅투아에 따르면 그 상자의 크기가 두 팔을 뻗어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커서 어딘가에 곧바로 보관하지 못하고 디너 테이블에 올려놓은 채 가족 모두가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구경했다고 한다.

싱그러운 토마토와 베르가못, 레드 커런트, 로즈메리 등이 어우러진 향으로 따사로운 여름 태양과 푸른 정원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레 자뎅 프랑세 오 트리쁠 향수, 그로세이, 75ml 29만5천원, Officine Universelle Buly.
100여 개의 씨앗이 든 상자를 열었을 때 그녀는 이 상자가 ‘씨앗 도서관(Seed Library)’처럼 느껴졌고, 자연의 관대함을 품은 이 씨앗이야말로 ‘향의 향연’이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람단과 빅투아는 이 놀라운 박스를 보며 “쿠킹 레서피처럼 과일과 채소, 허브가 들어간 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란 대화를 하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프랑스 가든’이란 의미의 ‘레 자뎅 프랑세’ 컬렉션인 것. 그녀가 고심 끝에 첫 번째로 소개한 향은 톡 쏘는 루바브와 달콤한 비트의 풍미가 느껴지는 가운데 파촐리, 머스크로 부드럽게 마무리되는 ‘베트라브’. 흙에 묻힌 채소의 얼시(Earthy)한 느낌과 풋과일의 달콤한 향이 풋풋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실제로 빅투아가 가장 좋아하는 향이라고. 새콤한 토마토와 톡 쏘는 베리 향이 머스크의 파우더리함과 조화를 이루는 ‘그로세이’는 향을 맡자마자 여름 태양빛과 녹음이 우거진 정원, 싱그러운 과일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세 번째로 소개한 ‘콩콩브르’는 오이를 베어 물었을 때의 물기 어린 느낌과 시원한 민트 향이 어우러지며 마음까지 환하게 환기시켜 주는 향으로, 무더운 여름날 피부는 물론 옷에도 사용하기 좋을 듯. 파리에 있는 네 개의 부티크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크레송’은 물냉이(크레송)와 파슬리의 신선한 향이 제라늄과 베티베르, 고수 향과 어우러지며 그린과 우디함의 경계를 넘나드는 향기로 여섯 가지 향 중에서 가장 젠더 프리하게 느껴졌다. 고구마와 당근처럼 향수 원료로 상상하기 어려운 채소로 이뤄진 ‘빠따뜨 두쓰’는 스파이시하면서도 얼시한 향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람단이 빈티지 마켓에서 발견한 19세기 씨앗 상자.
빅투아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누군가 ‘너 향 정말 좋다. 무슨 향수 썼어?’라고 물었을 때 ‘나? 고구마랑 당근 향’이라고 답하는 걸 상상해 보세요. 정말 재밌잖아요!”라며 “향기의 퀄리티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유머 감각을 담고 싶었어요”라고 말한다. 마지막 향은 상대적으로 익숙한 버베나와 바질이 들어간 ‘베르벤느’. 이 상쾌한 두 가지 원료에 포근한 시더와 민트로 활기를 더했다.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의 오 트리쁠 향수는 모두 알코올이 없는 워터 베이스인 건 알고 있을 터. 레 자뎅 프랑세 컬렉션은 워터 베이스에 머스크를 넣어 채소와 과일, 허브의 싱그러운 잔향이 더 오래 지속되도록 만들었다. 기존의 화이트 컬러에서 매력적인 그린 컬러로 옷을 갈아입은 보틀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는 정원에서 얻은 영감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그린 컬러야말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를 가장 잘 표현한 색”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 보틀 중앙엔 원료 이미지를 새겨 향을 맡기 전부터 어떤 향기인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향수에 담긴 향은 맡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의 정원을 거닐며 느껴지는 향, 따스한 여름 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다채로운 채소와 허브의 향, 차가운 물에 송송 썬 오이를 담그고 한 모금 들이켰을 때의 상쾌함….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 레 자뎅 프랑세 컬렉션이 당신을 싱그러운 여름 정원으로 초대한다.
THE SPECIAL, CHÂTEAU DE LUXE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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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성의 전경.
이번 트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빅투아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성에서의 하룻밤이다. 매년 여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가족이 모두 모인다는 이 성엔 빅투아 가족의 오랜 추억이 담겨 있다. 16세기에 지어진 성은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삼총사〉에서 포르토스 캐릭터의 바탕이 된 이삭 드 포르타우의 후손인 할아버지가 구입한 것으로, 빅투아가 어릴 때부터 이곳은 줄곧 가족과 손님들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인테리어의 근간이 되는 바로크 양식과 다채로운 컬러 스펙트럼은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 부티크를 디자인할 때 영감의 원천이 됐다고.

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오크스 관련 사진들.
우선 입구에 들어서면 멋스러운 이탈리아 스타일의 타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위로 오크스(Oaks) 경마 사진이 가득한데, 실제로 그녀의 가족들이 오크스에 나가는 말을 키우기도 했다고. “가족들이 오면 이곳에 바글바글 모여 있어요. 여기가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인터넷 스폿이거든요(웃음).”

가족의 다양한 취향이 담긴 다이닝 룸.
안쪽으로 들어서면 진달래색 벽지가 새겨진 다이닝 공간이 등장한다. 가문 대대로 내려온 그림과 어머니가 좋아하는 화이트와 블루 컬러로 만든 중국 장식품, 그녀의 가문을 상징하는 물고기 문장, 디올 하우스 창립자 무슈 크리스찬 디올이 선물한 식기,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은식기 등 가족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장소. 오른쪽 문을 열고 나가면 각기 다른 느낌을 주는 리빙 룸으로 이어진다. 다채로운 꽃 그림이 그려진 화이트 톤 벽지에 파스텔 블루 소파로 이뤄진 여름 리빙 룸과 붉은 색감의 벽지와 빈티지 가구가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겨울 리빙 룸으로 나뉜 이곳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리 사용한다.

파스텔 블루 소파가 인상적인 여름 리빙 룸.
여름 리빙 룸에 있는 커다란 파스텔 블루 소파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친구인 루시앙 펠라피네(Lucien Pellat-finet)에게서 구입한 것으로, 15명이 넘는 ‘빅 패밀리’가 모두 앉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리빙 룸에 놓인 카펫에도 재미난 이야기가 담겼다. 온 가족이 이 거대한 카펫을 빨기 위해 총동원되는데, 이날만큼은 모두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어른들은 수영복을 입고 아이들은 발가벗은 채 물놀이하듯 카펫을 세탁한다는 귀여운 스토리.

강렬한 레드 컬러로 이뤄진 겨울 리빙 룸.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아치형의 층계를 따라 아늑한 2층으로 올라가면 가족 초상화가 벽을 가득 메운 공간이 나오고, 그곳을 나서면 저마다 스토리를 지닌 방이 나타난다. 1970년대 리버티 직물로 덮인 어머니의 침실, 1920년대에 할아버지가 이 성을 샀을 때의 벽지와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한 방 등 성 안의 모든 공간 속 벽지와 소품 하나하나에도 가족들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방과 방 사이에 놓인 드레스 룸엔 수백 켤레의 신발과 의상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데, 저녁 시간이 되면 가족들은 정해진 컨셉트에 맞춰 스타일링하곤 한다고. 가령 ‘화이트, 70년대, 빅토리아 시대’라는 컨셉트가 주어지면 그에 맞춰 의상을 갖춰 입는 식.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 놓여 있는 부엌의 모습.
빅투아에게 이곳은 단지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성이라는 공간을 넘어 쉼과 안식의 근원이자 새로운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곳이다. 영감을 얻고 싶을 때, 무한한 에너지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머무는 곳. 이토록 사적인 공간으로의 초대는 에디터로 하여금 레 자뎅 프랑세 컬렉션이 지닌 향과 더불어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가 지닌 진정성을 오롯이 전달하려는 마음으로 다가왔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이 공간에서의 기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PARIS BOUTIQUES 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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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와 솝, 오일과 목재 가구의 향이 묘하게 어우러지며 깊고 아득한 향을 자아내는 르 마레 부티크.
다음 여정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플로리안-엘리 바즈(Florian-E′lie Vaz)와 함께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의 파리 부티크를 투어하는 일정으로 이뤄졌다. 19세기 프랑스 귀족들이 즐겨 찾던 장 뱅상 불리의 약국을 완벽하게 재현한 불리 부티크는 파리지앵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즐겨 찾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마레 지구 중심부 생통주(Saintonge)가에 위치한 ‘르 오트-마레(Le Haut-Marais)’ 부티크. 고풍스러운 초록색 외관을 따라 문고리를 ‘딸깍’ 하고 열면 짙은 목재 패널과 유리 캐비닛, 오래된 그림 액자들이 시공간을 초월한 듯 묘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랑 카페 토르토니와 스파 룸까지 마련돼 있는 르 오트-마레 부티크.
전면에는 제품이 진열돼 있고, 오른쪽엔 커피와 티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바(Bar) 형태의 그랑 카페 토르토니(Grand Cafe′ Tortoni)가 자리한다. 안쪽으로 들어서면 프라이빗한 스파 공간이 마련돼 있는데, 마치 바닷속에 들어온 듯 새파란 타일이 공간을 가득 메워 보는 것만으로 시원한 느낌을 선사한다. 마레 지구를 따라 걷다가 마주한 두 번째 매장은 ‘르 마레(Le Marais)’로, 수백 개의 향수와 솝, 모든 집기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특유의 공기와 공간을 타고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이 매장을 묵직하게 채우고 있었다.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 본점인 생제르맹데프레 부티크. 매장 한쪽에서 캘리그래퍼가 정성스럽게 글씨를 써준다.
한국의 서까래처럼 매장 중앙에 나무 기둥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건물 원형을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기 위함이라고. 세 번째로 방문한 보나파르트(Bonaparte)가의 ‘생제르맹데프레(Saint-Germain-des-Pre‵s)’ 본점에서 놓쳐서는 안 될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19세기에 쓰인 재료로 이뤄진 짙은 빈티지 나무 가구와 천장, 바닥에 깔린 민트색 타일 등이다. 약 10평 남짓한 매장엔 손님들이 가득했는데, 정신없는 와중에도 직원들은 직접 제품을 종이 포장지에 곱게 싸고, 정성스러운 캘리그래피를 선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리적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지만 이 시간을 통해 고객들이 이 공간을 더 오래, 더 깊게 향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타협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이 정교한 디테일이야말로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가 ‘오뜨 꾸뛰르 뷰티’라 불릴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19세기 씨앗 박스에서 영감을 받아 프랑스 정원의 아름다움과 전통을 결합해 세련된 향으로 완성한 레 자뎅 프랑세 컬렉션. 채소와 과일, 허브 등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향을 매력적인 여섯 가지 향기로 재해석한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이다. 레 자뎅 프랑세 오 트리쁠 향수, (왼쪽부터) 그로세이, 크레송, 베르벤느, 콩콩브르, 베트라브, 빠따뜨 두쓰, 각 75ml 29만5천원, Officine Universelle Bu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