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상상초월 하우스
삶과 상상이 만난, 오피신 불리 디렉터의 특별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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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서 분리된 듯한 독특한 부아세리로 장식한 거실. 람단 투아미가 디자인한 펠트 튜브 소파가 공간을 따라 길게 놓여 있다.

다이닝 공간은 거실에 놓인 곡선형 소파의 형태와 색감을 그대로 반영한 테라초 바닥으로 시공했다. 빈티지 의자는 지역 공예 시장에서 구입한 것.
현실과 환상, 허구와 감정이 조화를 이루는 비현실적인 세계. 그 경계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빅투아르 드 타야크(Victoire de Taillac)와 그녀의 남편 람단 투아미(Ramdane Touhami)가 만들어낸 강렬한 공간이 펼쳐진다. 이들 부부는 세 자녀와 반려견과 함께 안정된 일상을 꾸려왔지만, 잦은 이사 탓에 거처가 늘 바뀌곤 했다. 최근 파리의 새 집에 정착하기 전까지 무려 열 번 넘는 이사를 반복했다. 탕헤르, 뉴욕, 도쿄까지 나라와 도시를 넘나들며 다양한 집의 문을 열고 또 다른 장면 속으로 들어섰다. 유랑하듯 이어진 삶의 기록은 두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과 생활 철학을 형성하고, 공간을 대하는 태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머무는 장소는 삶의 방식과 행동, 생각에 영향을 주고 그 흐름은 자연스럽게 특정한 미적 선택으로 이어지죠.” 빅투아르가 말했다.





람단 투아미가 디자인한 테라코타 타일 벽이 스테인리스스틸 표면에 반사돼 강렬한 질감을 드러낸다.
2014년 빅투아르는 남편과 향수 및 화장품 브랜드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Officine Universelle Buly)’를 설립했다. 이후 브랜드가 LVMH 그룹에 인수된 후에도 여전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던 가구들은 집을 옮길 때마다 늘 함께했어요. 낯선 공간에 놓일 때마다 가구들이 새로운 역할을 찾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어요. 람단이 처음부터 끝까지 내부를 직접 디자인하고 싶어 했거든요. 처음 있는 일이죠. 그래서 남편의 취향에 꼭 맞는 가구와 소품을 새로 구입했어요.” 람단 투아미의 타고난 미적 감각은 지금까지 전 세계 ‘불리’ 부티크의 독보적 정체성을 만들어온 핵심이다. 그런 그가 선택한 집은 파리 9구, 피갈 인근의 활기찬 중심부에 자리 잡은 오래된 저택. 람단은 보기 드물게 나무가 우거진 안뜰을 품은 이 집과 마주한 순간, 도심 속 오아시스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곳은 프랑스의 다작 소설가이자 미국 아카데미 공로상을 수상한 각본가 장 클로드 카리에르(Jean-Claude Carrie‵re)의 오래된 저택이었다. 장 클로드 카리에르는 <세브린느 Belle de Jour>,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Le Charme Discret de la Bourgeoisie> <보르살리노 Borsalino> <수영장 La Piscine> 등 컬트영화의 각본을 쓰며 영화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겼다. 작가에서 예술가 부부로 집주인이 바뀌었지만, 이 유서 깊은 집의 구조는 그대로 이어진다. 단지 각 방을 구성하는 시선과 해석이 바뀌었을 뿐이다. 람단은 집 곳곳에 환상 속 세계를 재현한 듯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거실에는 다양한 색감의 펠트 튜브 의자가 벽을 따라 길게 놓여 있고, 벽 귀퉁이의 살짝 벗어진 부아세리(Boiserie) 장식은 가장자리가 살짝 말려 마치 포장지가 벌어져 열린 듯한 형상이다. 그 아래에는 숨어 있던 빈티지 벽 장식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흥미로운 구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견되는 집.

타로 카드 무늬의 이탈리아 도기 마욜리카 (Maiolica)로 꾸민 벽난로 앞에는 피에르 잔느레의 ‘쇼푀즈 (Chauffeuse)’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벽에는 가나의 ‘아사포(Asafo)’ 군기가 걸려 있다.

집주인 빅투아르 드 타야크와 그녀의 반려견.
“천장화, 건축물 벽면과 몰딩 사이의 띠 장식인 프리즈, 고전적인 몰딩을 포함한 모든 디테일은 람단의 손에서 탄생했어요.” 빅투아르가 덧붙인다. “이 집의 장식 요소들은 또 다른 세계를 품고 있어요. 우리는 그중 일부분만 엿볼 수 있고, 나머지 미지의 영역은 우리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해요. 결국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기도 하고요.” 재료의 질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집념 또한 인상적이다. 욕실에는 다양한 색상의 대리석 블록으로 이뤄진 세면대와 욕조가 하나의 조각품처럼 놓여 있다. 그리고 테라코타로 마감한 주방은 벽과 가구가 하나로 이어진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독창적인 패턴과 형태가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부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색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요소예요. 항상 가구나 벽에 은은하게 색을 더하며 그 효과를 실험하죠. 어떤 색은 기분을 즉각적으로 바꿔주고, 또 어떤 색은 공간에 평온함이나 생기를 불어넣기도 하니까요.” 집 안 곳곳에는 장르도, 작가도 경계를 두지 않은 예술 작품과 오브제 역시 자연스럽게 배치돼 있다. 모두 부부의 본능적 감각과 직관으로 선택된 것들이다. 계절 꽃다발과 캔들, 디퓨저에서 풍기는 은은한 불리의 향이 공간 전체를 감싸며 마치 어느 시골의 느긋한 공기를 머금은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향기야말로 집에 돌아올 때마다 우리를 반겨주는 무형의 존재예요. 실내에 개성을 더하는, 다채롭고도 부드러운 방식이죠.”
Credit
- 에디터 권아름
- 글 FLAVIA GIORGI
- 사진가 KAREL BALAS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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