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아이들과 독일로 떠난 짐블랑 김은희 대표의 슬로우 라이프

한국 떠나 정착한 함부르크, 그곳에서 진짜 행복을 찾았다.

프로필 by 권아름 2025.09.10

독일 함부르크의 조용한 주택 단지. 엘베 강이 흐르고 오래된 공원이 인근에 자리한 이곳에 리빙 편집 숍 ‘짐블랑’을 이끌고 있는 김은희 대표가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유럽 출장에서 마주한 풍요로운 자연과 여유로운 삶의 모습은 언젠가 아이들과 그런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상상을 품게 했다. 가장 바쁘고 성공적인 시기를 지나던 어느 날, 너무 빠르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고, 연고나 계획도 없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독일로 왔다.



사계절 내내 돌봐야 할 큰 나무와 식물이 많다.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가드닝은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 됐다.

사계절 내내 돌봐야 할 큰 나무와 식물이 많다.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가드닝은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 됐다.

날씨가 좋은 날엔 가든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 반려견이나 아이들과 뛰어놀기도 한다. 얼마 전엔 딸아이의 생일 파티를 이곳에서 열었다.

날씨가 좋은 날엔 가든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 반려견이나 아이들과 뛰어놀기도 한다. 얼마 전엔 딸아이의 생일 파티를 이곳에서 열었다.


낯선 나라지만 이상하리만큼 익숙한 이곳에서 그녀는 새로운 일상을 시작했다. 천천히 삶을 비워내며 계절 흐름에 따라 걷고, 아이들과 나무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단순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한국에서의 삶은 늘 속도와 효율 속에 갇혀 있었어요. 아름답지만 치열했고, 긴장도 많았죠.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나답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커졌어요. 이곳에선 삶의 리듬이 외부가 아닌 내면의 호흡을 따르게 했고, 그게 저에게 가장 큰 변화였어요. 공간에 대한 감각도 달라졌죠. 기능이나 트렌드보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것으로 집을 채우는 중입니다.”


거실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자리한 비트라의 ‘아무브(Amoebe)’ 라운지체어가 편안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그 뒤편에는 무어만의 ‘데어 클라이네 레너(Der Kleine Lehner)’ 테이블. 좋아하는 책이나 오브제를 올려둔다.

거실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자리한 비트라의 ‘아무브(Amoebe)’ 라운지체어가 편안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그 뒤편에는 무어만의 ‘데어 클라이네 레너(Der Kleine Lehner)’ 테이블. 좋아하는 책이나 오브제를 올려둔다.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꾸며 하루의 끝을 온전히 쉬어 갈 수 있도록 만든 침실.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꾸며 하루의 끝을 온전히 쉬어 갈 수 있도록 만든 침실.


독일로 이주한 지 5년 차에 접어든 그녀는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두 번의 이사를 마친 끝에 지금의 함부르크에서 자리를 잡았다. 1950년대 독일 건축가 베른하르트 헤름케스(Bernhard Hermkes)가 설계한 주택으로 외관상으로는 단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형의 높낮이를 살린 2층 구조다. 북유럽 주거 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 집은 담장이 없고, 낮고 단정한 지붕선과 초록의 정원이 인상적이다. 김은희에게는 집을 고르는 데 있어 화려함이나 면적보다 창밖 풍경과 빛이 머무는 방식, 공간이 주는 감각적 리듬이 자신의 삶과 어우러질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그 안에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갈 수 있는 여백이 있는지도 살펴봤다.


“처음 독일 주택을 접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공간에 대한 관점이었어요. 한국은 평면 구성이나 수납 중심의 레이아웃이 일반적인데, 이곳 집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먼저 고민한 흔적이 있어요. 창의 방향과 높이, 자연광의 흐름, 방과 방 사이의 거리 같은 요소가 섬세하게 배려돼 있죠. 문을 닫으면 사적인 공간이 되고, 열면 또 다른 흐름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또 하나 흥미로웠던 건 지하 공간의 활용이에요. 한국에선 다소 낯선 개념이지만, 이곳에선 여유롭고 유연한 생활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더라고요.” 김은희의 말처럼 이 집의 외관은 소박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사방에서 스며드는 빛이 시간에 따라 공간의 표정을 바꾸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간은 넓고 부드럽게 펼쳐져 다층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마치 집 전체가 온종일 조용히 움직이며 자신만의 리듬으로 호흡하는 느낌이다.


책상 위에는 좋아하는 책과 소장품, 도구를 올려뒀다.

책상 위에는 좋아하는 책과 소장품, 도구를 올려뒀다.

2층 한쪽에는 아이들이 어릴 적에 읽었던 책이나 그림, 장난감 등이 놓인 작은 플레이 공간이 있다.

2층 한쪽에는 아이들이 어릴 적에 읽었던 책이나 그림, 장난감 등이 놓인 작은 플레이 공간이 있다.

거실은 비트라 ‘위글 체어(Wiggle Chair)’와 발레리 오브젝츠의 ‘스탠딩 램프 넘버 1(Standing Lamp N°1)’, 피에르 잔느레의 ‘이지 체어(Easy Chair)’ 등 한국에서 사용하던 가구로 구성했다. 소소한 오브제와 소품은 여행지나 플리 마켓에서 하나씩 모은 것들로, 집 안 곳곳에 이야기를 더한다.

거실은 비트라 ‘위글 체어(Wiggle Chair)’와 발레리 오브젝츠의 ‘스탠딩 램프 넘버 1(Standing Lamp N°1)’, 피에르 잔느레의 ‘이지 체어(Easy Chair)’ 등 한국에서 사용하던 가구로 구성했다. 소소한 오브제와 소품은 여행지나 플리 마켓에서 하나씩 모은 것들로, 집 안 곳곳에 이야기를 더한다.


약 100m2 규모의 집은 세 개의 방과 거실, 주방 그리고 각기 다른 분위기의 욕실 세 곳으로 구성돼 있다. 마당과 연결된 거실은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끼는 공간이고,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드는 주방은 하루를 따뜻하게 시작하게 해준다. 아이들 방은 조용하고 독립적인 구조로 꾸며져 그들만의 세계가 펼쳐진다. 한쪽엔 어릴 적 장난감과 직접 그린 그림이 놓여 있어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지낸 것처럼 안정감과 편안함이 감돈다. “다른 나라로 이주한다는 것은 삶의 결을 바꾸는 커다란 전환이죠. 낯선 환경이 차갑게 다가오지 않도록 살아온 기억의 조각들을 함께 옮겨왔어요. 아이들이 익숙한 감각과 연결된 채 새로운 삶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에 오랫동안 함께 써온 식탁, 따뜻한 빛을 품은 조명, 손길이 닿은 도자기들도 가지고 왔어요. 단순히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낸 시간을 품은 존재들이니까요.”


거실에는 한국에서 소중히 가져온 가구들을 낮고 간결하게 배치해 시선이 막히지 않도록 하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광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얇은 커튼을 걸었다. 그리고 곳곳에 자연스러운 색감과 재질의 오브제로 공간을 완성했다. 최근 오래된 선박에서 지도를 펼치기 위해 쓰였다는 작은 테이블, 손으로 깎은 나무 의자를 들였다. “이곳에 오면서 ‘익명의 빈티지’ 세계에 빠졌어요. 아이코닉한 디자이너의 물건이 아닌, 누군가의 할머니 집에 있었던 오래된 가구에는 시간을 살아낸 이야기와 감정이 담겨 있어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독일에서의 삶은 제 취향을 입체적으로 확장시켜 줘요. 정제된 모던과 감성적 빈티지가 공존하는 이 취향의 스펙트럼이 어쩌면 지금 제 삶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언어일지도 몰라요.”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는 김은희.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는 김은희.


현재 김은희는 오브제와 식문화, 공간 그리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미학적 언어로 엮어내는 ‘The Found’라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단지 심미적 오브제를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고른다는 것’이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도록 삶의 결을 제안하는 플랫폼이다. 생경한 도시에서 다시 삶을 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은희는 세상의 속도와 기준에서 잠시 비켜나 오롯이 자신의 리듬에 따라 살아가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간다. “오후 네 시, 햇살이 비스듬히 기울며 뒷마당 나무 그림자가 거실로 스며드는 순간 집 안의 사물이 전혀 다른 결로 빛나요. 잠시 모든 걸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 자체를 감각하려고 해요. 이웃 아이들의 웃음소리, 바람과 나무의 소리 같은 것들이 음악처럼 들려오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아요.” 지금 그녀는 바로 그 고요한 힘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주방.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주방.

한국에서는 늘 바쁜 일상 탓에 요리할 틈이 없었지만, 이곳에선 매일 요리해서 자연스럽게 주방 용품이 하나둘 늘어났다.

한국에서는 늘 바쁜 일상 탓에 요리할 틈이 없었지만, 이곳에선 매일 요리해서 자연스럽게 주방 용품이 하나둘 늘어났다.

1950년대 초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함부르크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건축가 베른하르트 헤름케스가 설계한 주택.

1950년대 초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함부르크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건축가 베른하르트 헤름케스가 설계한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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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권아름
  • 사진가 CHARLOTTE SCHREIBER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