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아파트, 빌라, 복층 주택을 오다니면서 생긴 일

성동구 아파트부터 서촌 복층 주택까지, 문화공간 ‘윗층에서 생긴일’을 운영하는 정영민의 이야기.

프로필 by 윤정훈 2025.07.01

우리 부부는 결혼 전 각자 독립해 살고 있었고, 아내는 대학생 시절부터 이미 10여 번의 이사를 겪으면서 원룸과 하숙, 고시원 같은 주거 형태를 경험했다. 그 시절 서울에서 집을 구하고 이사를 다니는 것은 즐겁기보다 고단한 일이었다. 결혼과 함께 ‘집다운 집’에 정착해 ‘잘 살아보자’며 파이팅을 외친 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누군가 ‘이제는 원하는 곳에서 잘 살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성동구 아파트 첫 번째 집은 상왕십리역 근처 아파트. 출퇴근하기 적합한 위치에 괜찮은 금액대의 전셋집이었고, 처음 얻게 된 집다운 집이라 나름 잘 꾸미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행히 집주인도 흔쾌히 마음대로 하라고 해서 셀프 인테리어 여정을 시작했다. ‘오늘의집’도, 핀터레스트도, 이케아도 없던 시절이라 정보 얻을 곳이 별로 없어서 셀프 인테리어 장인으로 유명한 김반장님의 블로그를 참고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페인트칠과 타일 작업 세계에 입문했고, 조명 교체를 위한 전기 작업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게 됐다.


@upstairs_hap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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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동 북서향 빌라 상왕십리 아파트에서 6년이나 살고 나니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집 못지않게 동네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서촌·북촌·성북동처럼 적당히 오래되고 나지막하고 한적한 곳을 좋아했다. 막상 살아보자고 마음먹고 나니 집이 금방 구해졌다. 성곡미술관이 있는 신문로 근처의 붉은 벽돌 빌라였는데, 특이하게도 건물에 널찍한 중정이 있었다. 창으로 은은하게 들어오는 햇살이 마음에 들어 이사를 결심했다. 하지만 이사하고 보니 베란다와 창문이 북서향이라 막상 집 안에서 빛이 귀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고, 몇 달 뒤엔 팬데믹이라는 더 큰 문제가 터졌다. 당시 모두 그러했듯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잠자고 밥 먹는 건 물론, 일과 취미생활, 친구와의 약속이나 모임도 집에서 하게 됐다. 집은 가족을 위한 휴식공간이라고 여기던 생각이 이 시기를 거치며 점점 바뀌었다. 사람들을 자주 초대해 즐거운 기운을 나누고, 때마다 철마다 반짝이는 순간을 발견하며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등 집 안에서의 즐거움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서촌 복층 주택 내수동 집은 동네도 집도 전반적으로 맘에 들었지만, 햇빛이 귀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아예 서촌 쪽으로 옮겨보는 건 어떨까 싶어 평소처럼 네이버 부동산을 뒤적이다가 익숙한 대로변의 상가 건물에 있는, 의외의 집에 눈길이 갔다. 집 보는 일만큼 쉽게 의기투합하는 우리 부부는 곧바로 약속을 잡아 현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와우!’ 사방에 있는 창으로 햇빛이 충분히 들어왔고, 특히 거실 통창으로 보이는 인왕산 뷰가 무척 멋졌다. 실내에 있는 비밀스러운 계단을 올라가면 아늑한 다락방이 있고, 그 옆 옥상에서 바라보는 뷰도 끝내줬다. 바닥과 벽면, 몰딩 등은 상당히 낡았으나 빈티지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손볼 곳이 꽤 있어 몇 달간 셀프 인테리어에 매달렸지만 집이 좋으니 그 과정도 즐거웠다. 널찍한 데다가 전망도 좋고, 다락방과 옥상도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위층은 독립된 공간이라 단순 생활공간보다 특별하게 활용하면 좋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에어비앤비 같은 걸 구상했으나 목적을 한정 짓지 말고 무엇이든 재미있는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윗층에서 생긴일’이라는 공간. 이곳에서 손님들은 글쓰기나 스케치, 명상과 요가, 독서 모임이나 가드닝 클래스 등의 문화 활동을 함께한다. 외부인이 자주 방문하면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예약을 적당히 조절하면 되니 큰 문제는 없었고, 오히려 많은 이야깃거리와 추억이 차곡차곡 쌓였다. 손님 방문 전 정리를 해야 하니 집이 늘 깨끗하게 유지되는 건 예상치 못한 순기능이었다.


@upstairs_hap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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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서촌 복층 주택 그러던 어느 날 날벼락이 떨어졌다. 건물 주인이 본인이 살겠다며 계약 갱신 불가를 통보해 왔다. 우리는 최소 4년은 살 생각으로 집수리와 인테리어에 돈을 적잖이 썼고, 뭐니 뭐니 해도 정이 많이 들었는데 갑자기 나가라니! 속 터질 노릇이지만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모드 전환이 빠른 편이라 즉시 이사 갈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음날 세 군데의 집을 봤는데 그중 한 곳이 마음에 들어 곧바로 계약했다. 사실 서촌에는 적당한 매물이 많지 않은데, 대체로 운이 많이 따라준 것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이전과 비슷한 복층 구조다. 아래층은 상대적으로 아늑한 느낌이고, 위층은 박공 천장에 넓은 개방감을 가진 공간이다. 곳곳에 너른 창이 있어 북악산과 북한산 뷰가 근사하고, 배화학교 교정과 회화나무를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벽 없이 뻥 뚫린 구조라 ‘윗층에서 생긴일’을 하기에는 더없이 적합한 환경. 얼마 전 집 정리를 마무리하고 다시 손님을 모시기 시작했는데, 전화위복이란 게 이런 걸까. 전보다 더 멋지고 근사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쯤이면 원하는 곳에서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단지 이번 집에서는 부디 쫓겨나는 일 없이 원하는 만큼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정영민

광고인으로 일하다 이것저것 새로운 일을 꾸미고 있다. 서촌 복층 집에서 ‘윗층에서 생긴일(@upstairs_happening)’을 운영한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글 정영민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