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Dotlinesurface(
@dotlinesurface_)'를 운영 중인 박혜진입니다. 미국 LA에서 자동차 CMF(컬러/메터리얼)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쌓았고, 2020년에 포틀랜드로 거주지를 옮겼어요. 이를 계기로 오랜 꿈이었던 제 브랜드를 런칭하고 선보인 지 이제 1년이 넘어갑니다.
제 브랜드의 철학과 마찬가지로 타임리스한 디자인에서 가장 큰 영감을 받는 편이에요. 그래서 미드센추리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가구를 무척 좋아합니다. 집안 곳곳에 마련된 오브제를 일상에서 매일 감상하고, 또 실사용하는 순간이야말로 제겐 오롯한 즐거움이자 그 자체로 영감이 되어줍니다.
저희 집은 포틀랜드의 북서부 포레스트 헤이츠(Forest heights)라는 언덕 마을에 자리하고 있어요. 여름을 제외하곤 비가 자주 내리는 흐린 빛의 도시예요. 처음 이 집을 발견했을 땐 글래스 블럭으로 마감한 창가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독특한 외관에 호기심이 생겨 바로 홈 투어를 신청했죠.
첫 방문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 탓인지 집 내부가 기대했던 만큼 마음에 쏙 들지 않았어요. 벽 대부분이 아주 짙은 회색이라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냈고, 여러 벽으로 막혀서 답답한 공간이 있었거든요. 직사각형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공간도 거의 없었고요.
이후 날이 좋을 때 다시 한번 찾기로 약속을 잡았고, 두 번째 방문에서 이 집의 매력을 깨닫게 됐답니다. 개방감을 주는 거실의 드높은 층고부터 남향으로 난 창문들을 통해 볕이 잘 드는 점, 뒤뜰의 커다란 자작나무 두 그루 등등. 첫 방문 때는 보이지 않았던 장점들이 눈에 들어왔고, '여기다' 싶어 최종적으로 선택했어요.
저희 집은 아주 다재다능한 공간이에요. 가장 먼저 저희 가족이 일상을 보내는 공간이죠. 또 제가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워크숍 겸 스튜디오이기도 해요. 그뿐만 아니라 각종 커머셜 비디오나 사진 촬영을 위해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랍니다. 한마디로 매우 복합적인 기능을 하는 장소랍니다.
이사 온 이후 일부 내부 구조물과 벽을 제거하는 공사, 셀프 시공을 거쳐 지금의 룩을 완성했어요. 우선 제각각이었던 벽의 컬러를 모두 화이트로 도색해 정결하고 환한 분위기를 더하고 통일감을 줬답니다. 새하얀 캔버스 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가구들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데 집중했어요.
인테리어 자재는 최대한 기존의 것들을 보존하면서 부분적으로 리노베이션을 했어요. 페인트나 타일, 플로어 같은 코스메틱 체인지는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두고 유튜브에서 정보를 얻어 하나하나 직접 공사해 시공비를 크게 절약했죠. 대신 가구에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자했어요. 지난 8년 동안 온/오프라인 숍에서 꾸준히 탐색하고 구매해온 6, 70년대에 제작된 빈티지 가구들, 라이센스를 가진 컴퍼니에서 80-2000년대 초반에 생산된 중고 제품이 그 예시죠.
「 #3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과 그 이유
」 1층 리빙 룸과 키친 사이의 벽난로 앞 공간인 패밀리 룸은 다양한 쓰임으로 잘 활용하는 공간이에요. 일과 인테리어를 위해 가장 많은 영감을 받는 공간이기도 하죠. 또 책을 읽고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요.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차를 마시며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좋도록 가구 배치를 염두에 뒀죠.
지난해 우연한 기회로 스위스에 있는 숍에서 1970년대에 생산된 아일린 그레이의 몬테 카를로 소파를 아주 좋은 가격에 구매했어요. 또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던 이사무 노구치의 러더 테이블을 블랙 프라이데이 시즌에 로컬 숍에서 구입한 후 이 두 오브제를 패밀리룸에 함께 배치했어요. 이와 함께 독서 등으로 활용하려고 기존 등 보다는 낮게 설치한 타락사쿰(Taraxacum) 램프가 공간에 어우러지죠. 저는 이 풍경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 #4 인테리어에 대한 영감을 얻는 방법
」 공간과 가구를 직접 보고 체험해 보는 방식이 가장 마음에 와 닿고, 또 인상적인 영감을 준다고 생각해요. 저희 부부가 처음 만났던 뮌헨으로 10주년 여행을 언급하고 싶어요. 그때 방문했던 뮌헨 현대 미술관(Pinakothek Der moderne)에서 감상한 오브제들이 아주 선명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거든요. 시간순으로 전시된, 꽤 방대한 'Thonet & Design' 섹션이 있었는데 아치형 계단 타입의 공간이 주는 힘도 근사했고, 가까이에서 체어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어요.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를 좋아하신다면 뮌헨에 여행 가셨을 때 꼭 들려 보시길 추천해요.
또 몇 년 전 외근으로 임스 하우스(Eames House)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요. 정말 많은 책과 잡지를 통해 숱하게 접해온 공간이지만, 직접 그 장소에 머물며 느꼈던 감흥은 정말 대단했어요. 종이 너머론 쉽게 추측할 수 없었던 공간과 스케일에 압도당했고, 높은 층고를 자랑하면서도 동시에 아늑한 분위기가 감돌아서 신기하단 인상을 받았어요. 또 산을 등지고 바다가 보이는 위치 역시 이상적이었죠. 부부의 명성에 비해 아기자기한 스타일로 집안 곳곳에 오브제들을 배치한 스타일링을 보면서 큰 영감을 받았답니다.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취향을 말하자면, 가구와 조명 그리고 소품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인테리어를 완성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개성이 강한 가구를 배치했다면 벽이나 주변을 최대한 비운다거나, 한 공간 안에서 메인인 가구와 부수적인 가구 그리고 소품 순으로 각각의 역할을 생각하고 배치하는 식이죠. 중요한 건 조화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가구를 들일 때 역시 이미 보유한 가구와 톤 앤드 매너가 잘 어울릴 수 있는 스타일인지 신중히 검토하는 편입니다.
그리 크지 않은 크기와 규모의 오브제를 모으는 것 또한 제 취미예요. 여행하면서 산 기념품, 자동차 다이캐스트나 가구 미니어처를 곳곳에 장식해 아기자기한 갤러리나 편집숍처럼 꾸미는 것도 좋아하는 홈스타일링 방식 중 하나입니다.
제가 운영하는 브랜드에서 만들어 낸 오브젝트를 꼽고 싶어요. 개인의 취향과 캐릭터를 표현해주면서 동시에 집 안에 두었을 때도 자연스럽게 공간과 어울리는 레더 백을 선보이는 일이 첫 프로젝트였어요. 제 삶과 경험을 통해 축적한 취향과 안목을 바탕으로 선별하고 취합해 낸 첫 결과물이죠. 이를 작업하면서 집의 분위기와 오브제, 가구로부터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고요. 쭉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회사 소속이 아닌 포지션에서 처음으로 저만의 스타일링 비전과 테이스트를 담아 완성한 오브제라 의미가 남다릅니다. 최근엔 기능성 홈 데코 소품을 기획 중이에요. 심혈을 기울이는 만큼 많은 분이 공감해주실만한 결과물이 나와줬으면 좋겠습니다.
포틀랜드는 비가 많이 내리거나 대부분 흐린 편이라 자칫 기분도 우울해지기 쉬운 편이죠. 구름이 짙게 드리운 날엔 밝은 분위기의 음악을 감상해 기분을 환기하는 편이에요. 또 향기에 관심이 생겨서, 날씨나 기분에 맞춰 좋은 향을 뿌리거나 곁에 두기도 하고요.
무탈하고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행복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제 브랜드를 시작하고 집이 일터가 되면서 루틴이 더욱 중요해졌답니다. 아침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침구를 정돈한 후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정해진 일과에 따라 일에 집중해요. 바쁘지 않은 날엔 예쁜 그릇에 담아 정성껏 차려 먹는 식사도 소소한 행복이죠. 뒤뜰의 낙엽과 나뭇가지를 정리하거나 동네 산책을 하는 것도 일상에 활력을 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답니다.
요즘 들어 이탈리안 디자인에 관심이 커졌어요. 그중에서도 건축가 마리오 벨리니가 디자인한 가구들이 눈에 들어와요. 한국에서도 점점 알려지고 인기가 상승 중인 듯하더라고요. 마리오 벨리니의 작품 중 제가 관심이 가는 건 두 가지 제품인데요. 크림, 캐러멜, 초콜릿 등의 디저트가 떠오르는 색감의 'Camaleonda' 모듈러 소파와 'Chiara' 플로어 램프를 한 공간 안에 함께 배치해 보고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집은 포화 상태라 들이게 된다면 다른 집으로 이사 한 후거나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시점일 듯해요(웃음).
팬데믹으로 인해 집에 대한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됐다고 생각해요. 집과 집에 머무는 일상의 패턴에 크고 작은 변화가 뒤따라 왔고요. 저 역시 제 브랜드를 선보인 후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집의 존재감이 확장됐죠. 편히 먹고 자는 공간인 동시에 즐겁게 일하고, 좋은 영감을 받고 소소하게 즐길 거리가 많은 아늑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상대적으로 문화적 인프라가 방대하지 않은 소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집이 지니는 다채로운 면이 절실할 정도로 소중하단 생각도 들었어요.
집은 제 모습 그대로 편안히 머물며 일할 수 있는 소중한 작업 공간,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쉼터이자 휴식처,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제 취향으로 채워진 공간이라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