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마인드셋 키워드는? 외로움 바이러스, 빨리 감기, 하이퍼 인플레이션, 여자 프레카리아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2023 마인드셋 키워드는? 외로움 바이러스, 빨리 감기, 하이퍼 인플레이션, 여자 프레카리아트

희망과 낙담, 그 사이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2023년의 키워드. 그 중에서 우리가 인지하고 정비해야 할 여덟 가지 개념을 <엘르>가 골랐다.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질 때, 때로는 아는 것이 큰 힘이 되기도 하니까.

이마루 BY 이마루 2023.01.05
 
 
앱으로 저녁 식사를 배달하고, 줌으로 요가 수업을 듣고, 슬랙으로 동료와 업무 이야기를 나눈다. 메신저와 DM이 릴레이처럼 오가고,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본 ‘인친’들이 하트를 보내지만 끝끝내 잔존하는 외로움. 급격한 도시화와 디지털 도구의 발전으로 우리 안에 내재돼 있던 이 감정은 팬데믹 이후 바이러스처럼 우리 몸과 마음을 더욱 강력하게 잠식해 버렸다. UCLA에서 발표한 ‘외로움 지수’에 따르면 한국인은 80점 만점 중 평균 43.94점으로 중증도 외로움 상태이며, 10명 중 3명은 중고도의 외로움을 겪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는 연령대이자, 인구가 밀집된 도시인 서울 거주 30~40대가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낀다는 결과는 사뭇 충격적이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앞서 겪는 일본에서는 지난 20년간 65세 이상 노령층의 범죄가 4배로 증가했다. 교도소를 일종의 공동체 공간으로 선망하며 경범죄를 저지르는 노인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가 펴낸 〈고립의 시대〉(2021)는 현대인의 외로움을 일찌감치 파고든 예언서와 같다. 허츠는 현대인의 외로움을 ‘혼자 있다고 느끼는 정서적 상태라기보다 소외와 배제, 양극화와 정치적 극단주의에 내몰린 채 주변화되고 무력해진 느낌 혹은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느낌’이라고 재정의한다. 예컨대 내 손으로 뽑은 정치인이 정작 당선 이후에는 내 주변의 삶에 실효적인 정책을 만드는 데는 관심 없어 보인다거나, 동료들 사이에서 내가 무능한 존재로 느껴지거나 아무도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 것 같은 절망감, 때로는 미디어 속 인물에게 느끼는 경제적 박탈감까지 포함된다는 것이다. 허츠가 지적하는 주범 중 하나는 소셜 미디어다. 실재하는 주변 일을 향한 관심도를 낮추고, 내면의 분노를 부채질하며, ‘좋아요’ 같은 가시적 결과만 중시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타인과 조율 및 협력하고, 공감하는 의사소통 능력은 갉아먹힌다.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해결 과제다. 경험의 부재로 인해 혐오와 갈등을 바이러스처럼 퍼트리는 외로움은 우리를 더한 양극화와 극단주의의 세계로 내몰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미 2018년부터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를 신설해 국가적 중책으로 다루고 있고, 바르셀로나 시정부는 도시에 놀이터, 공원, 노천극장 등을 재조성하는 ‘슈퍼블록’ 사업을 추진 중이다. 국내는 어떠냐고? 노령인구 비율이 높은 경상북도는 지난 9월 ‘외로움 극복 및 예방 지원을 위한 조례’를 시행해 외로움에 맞서고 있다.  “다름에 많이 노출될수록 인간은 더욱 다면적으로 성장한다”는 허츠의 조언처럼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2023년에는 동료와 함께 먹을 간식을 사고, 지역 상점에서 물건값을 흥정하고, 집으로 사람을 초대해 차를 마시는, 잊고 있던 즐거움을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 전혜진
 
 
시리즈물을 1.2배속으로 감상하며 음성 대신 자막으로 내용을 파악하거나,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30초 건너뛰기 버튼을 누르는 게 일상이 됐다. ‘5분 만에 이해하는 ○○’  ‘바쁜 직장인을 위한 ○○○ 몰아 보기’ 같은 제목을 단 유튜브 콘텐츠도 넘실댄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콘텐츠를 요약본으로 소비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반감이 있었지만(일본에서는 ‘줄거리 영상’을 올린 유튜버가 2021년 11월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2023년을 앞둔 지금은 어떤가. 오히려 제작사나 방송사들이 공식 채널에서 ‘요약본’ 영상을 적극 차용하는 모양새다. “콘텐츠 범람의 시대. 사람들은 작품의 감상자라기보다 인간관계 유지를 위해 콘텐츠를 활용하는 기술이 탁월한 소비자에 가깝다. 마치 노래방에서 진심으로 부르고 싶은 곡이 아니라 분위기를 띄울 적당한 곡을 고르는 것처럼.” 영화배급사 기자 출신으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을 펴낸 이나다 도요시는 ‘빨리 감기’가 시대 정서가 된 이유를 파고든다. 빨리 감기는 대화에서 소외되거나 화젯거리에 뒤처지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이들의 대안이다. 효율을 중시하는 ‘가성비’ 문화도 한몫한다. 지금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영상 작품을, 가장 값싸게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같은 돈을 내고 구독했다면 이왕이면 더 많은 작품을 보고 싶다, 별로인 작품은 애초부터 피하고 싶으니까 SNS에서 의견을 참고한다, 사전지식 없이 봤다가 디테일을 놓치면 손해이므로 오히려 결말이나 연출 포인트를 알고 보는 편이 좋다, 좋아하는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섭렵하고 싶을 때 그 배우가 나오는 장면만 넘기며 보는 게 효율적이다 등 ‘빨리 감기’를 선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상대적으로 ‘빨리 감기’가 불가능한 장르로 여겨졌던 음악도 이 변화를 피해가지 못했다. ‘틱톡’의 시대가 열린 이후 영상의 빠른 속도에 걸맞은 사운드가 입혀지고, 이로 인해 곡의 속도를 올리는 나이트 코어(Night Core) 방식의 편곡이 익숙해졌다. 팝의 요소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하이퍼 팝’이 주류 장르가 되며 유튜브에 원곡 제목과 ‘Night Core’ 혹은 ‘Tic Tok Sped up’을 함께 검색하면 수많은 ‘빨리 감기’ 곡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표적인 하이퍼 팝 뮤지션으로 꼽히는 2인조 그룹 100 Gecs 멤버 로라는 “항상 나를 여자로 여겨온 퀴어로서 내 목소리를 싫어했다. 하지만 단순히 곡의 속도를 올리는 것만으로 소녀 같은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보컬의 기본 요소로 여겨졌던 음색 혹은 감정선이 리스너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좋아하는 영화를 몇 번이고 보기 위해 넷플릭스 한 달 구독료가 훨씬 넘는 돈을 내고 극장을 찾아 130분 넘는 시간 동안 의자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는 걸 선택하고, 누군가는 10곡 정도밖에 들어 있지 않은 LP를 ‘원곡을 가장 가깝게 재현한 리마스터 버전’이라는 이유로 공들여 구입한다. ‘빨리 감기’와 ‘전통적 소비’는 어떤 비율로 공존할까? 공존의 여부에 콘텐츠 공급자와 감상자 누구의 역할이 더 크게 작용할까. 과연 ‘많이 보고 듣는다는 것’이 지금 시대에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이마루
 
 
“2023년은 세계경제 사상 가장 어두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IMF(국제통화기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피에르 올리비에 고린차스가 지난 10월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더는 놀랍지 않다. 팬데믹 동안 각 정부는 지원금 등을 명목으로 통화량을 늘렸다. 2년 넘는 기간 동안 다발적으로 쌓여온 경제봉쇄. 물류망 단절과 생산 중단,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야기한 인플레이션 위세에 화들짝 놀란 주요국의 중앙은행들은 2022년, 빠르게 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대폭 인상할 때 세계경제에 보내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 통화가치 급락이 예상되니 금융기관은 대출을, 가계는 소비를, 기업은 투자를 자제하시오!’ 몇 년간 낮은 금리로 대출 서비스를 마음껏 누리며 주식이나 비트코인, 부동산 투자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금리인상은 가장 치명적인 제약이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펴낸 〈2023 대한민국 대전망〉에서 차학봉 부동산 전문 기자는 2021~2022년 사이 전 세계 주요 도시 부동산을 강타했던 ‘팬데믹 주택 버블’을 꼽는다. 한국의 집값이 많이 치솟았다지만 실제로 〈블룸버그 통신〉이 발표한 2022년 주요 국가 집값 거품 순위에서 한국은 영국, 스웨덴,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뒤를 이어 17위에 머물렀다. 미국발 금리인상의 여파로 버블이 꺼지면서 경제가 위축될 국가가 한두 개가 아니라는 의미다. 정치적 전망도 좋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가 불어올 예정이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심화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모든 경제주체가 대출과 투자에 있어 상대방의 상환 능력을 의심하게 되고 경직된다. 실제로 돈을 갚지 못하는 사태라도 터질 경우 시장 전체가 패닉에 빠진다. 최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채무 2050억 원에 대한 보증을 사실상 철회하면서 한국전력 같은 탄탄한 공기업마저 대출에 제약이 생긴 것이 대표 사례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영끌’해서라도 집을 사라고, 공격적 투자가 답이라고 외치던 많은 유튜브 채널과 자칭 전문가들은 자취를 감췄고, 매일 열어보던 코인과 주식 창을 이제 ‘없는 셈’ 친 지도 꽤 됐다. 물론 아침에는 4000원이었던 커피가 오후에는 5000원이 되는 상황이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에 도래할 전망은 희박하다. 투자 전문가 브라이언 스타이버스가 지난 7월 〈포브스〉 기사에서 남긴 조언은 다음과 같다. “감당 중인 대출 서비스를 줄여야 한다. 저축을 하고, 지출을 줄일 수 있는 항목을 찾아 현금 흐름을 확보해서라도 부채를 청산해야 하는 시기”라고. 결국 저축과 절약이라는 오래된 노하우만 통용되는 셈이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성공한 것 같은, ‘벼락거지’라는 용어로 표현되던 상대적 박탈감이 팽배하던 시기가 지나고 대다수가 인내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하지만 선택적이었던 지난 호황이 그랬듯 예고된 불황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당연한 진리가 2023년을 버틸 위로가 돼줄 것이다. 이마루


‘불안정한(Precarious)’과 노동자 계층을 일컫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인 ‘프레카리아트’는 영국의 노동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이 제시한 개념이다. 본래 도시 유목민이나 이주 노동자를 가리켰지만 요즘 직무 불안에 시달리는 회사원, 부채에 내몰린 청년, 구조조정당한 샐러리맨까지 포괄한다. 그러나 2023년의 현실은 계급과 젠더, 세대라는 세 가지 사회학적 계층이 중첩된 ‘청년 여성 프레카리아트’들에게 훨씬 가혹해졌다. 한림대학교 사회학 교수 신경아의 논문 ‘팬데믹 시대 여성노동의 위기에 관한 페미니즘적 성찰’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확산됨에 따라 한국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실업률이 급증하고, 대면 서비스업과 임시직 여성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학교와 어린이집 등 공적 돌봄 서비스가 중단돼 자녀를 키우는 여성들이 노동시장을 떠났다”며 이를 전 세계적 여성 고용 위기로 설명한다. 남성의 평균 임금 65%에 미치는 저임금과 상대적 고용 불안정성에 시달리고, 육아와 돈벌이라는 이중 노동의 늪에서 허우적대면서도 때로는 혐오적인 시선에 압도당하는 현실. 여성 가장의 죽음이 연이어 보도된다. 실제로 여성 가구주의 빈곤율은 40.1%로 남성 가구주 빈곤율의 약 3배라는 현실은 우리 주변 여성의 삶이 최소한의 안전을 박탈당한 채 여러 위험과 재난 앞에서 언제든지 붕괴할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이에 여성들은 방어기제를 발현 중. 2022년 9월 〈엘르〉 미국은 칼럼 ‘What Comes After Ambition’을 통해 팬데믹 이후 여성의 삶에서 ‘일’과 ‘성공’에 대한 관점이 변했고, 여성들은 어떤 삶의 태도를 모색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2022년을 휩쓴 키워드인 ‘조용한 사직’(실제 퇴사가 아니라 최소한의 일만 하려는 태도) 또한 자신의 삶에서 직업과 노동의 불안정성을 재검토하고, 번아웃을 막아 지속 가능한 노동을 위해 발버둥치는 여성들의 노력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전혜진

Keyword

Credit

    에디터 이마루/전혜진/류가영
    디자인 김희진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