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위크가 한창이던 10월 초, 파리 방돔광장에서는 샤넬의 하이 주얼리 뉴 컬렉션 프레젠테이션이 펼쳐져 도시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컬렉션 N°5’라는 타이틀의 컬렉션은 ‘샤넬’ 하면 바로 떠오르는 기념비적 향수 N°5를 하이 주얼리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공개 전부터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다. “이 컬렉션을 통해 가브리엘 샤넬의 창의성을 재발견하고 싶었습니다. N°5 향수의 건축적인 보틀 디자인에서부터 우리의 후각을 매료시키는 향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인 매력을 풀어내는 과정은 구불구불한 길을 떠나는 여정과 같았습니다.” 샤넬 파인 주얼리 제작 스튜디오의 디렉터 파트리스 르게로(Patrice Legue`reau)가 말하는 하이 주얼리 컬렉션의 탄생 과정은 다가오는 프레젠테이션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프레젠테이션은 N°5 향수를 상징하는 다섯 가지 요소인 보틀, 마개, 숫자 5, 플라워, 잔향을 주제로 한 각각의 스테이션으로 구성돼 있었으며, 총 123개의 특별한 주얼리를 만날 수 있었다. 하나의 향수에서 이렇게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이는 N°5라는 향수의 매력이 얼마나 독특하고 강렬한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처음 들어선 보틀 존에서는 상징적인 보틀 형태를 띤 여러 주얼리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중 하이라이트는 세상에 오직 한 피스만 존재하는 ‘55.55’ 네크리스였다. 보틀뿐 아니라 N°5 향수의 모든 코드를 표현한 이 네크리스는 55.55캐럿의 다이아몬드를 사용해 5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기념했다. 각각의 다이아몬드는 모두 커스텀 컷으로 디자인됐는데, 원석에서부터 시작된 디자인은 가장 큰 캐럿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55.55캐럿을 완성할 수 있는 완벽한 팔각형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 구상됐다. 그렇게 탄생한 104개의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와 42개의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가 18K 화이트골드 베젤 위를 촘촘히 메우며 N°5 보틀의 아름다운 실루엣을 완성하고 있었다.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를 줄지어 세팅한 마개의 옆모습, 숫자 5 형태의 잠금장치, 향수가 흘러내리는 듯 생생하게 표현한 페어 컷 다이아몬드의 향연은 그야말로 N°5의 모든 매력을 한 번에 보여주는 제품이라 할 수 있었다. 샤넬은 이 아이코닉한 네크리스를 판매하지 않고, 샤넬 하우스의 소장 컬렉션으로 보관한다고 밝혔다. 하우스의 역사를 기록하는 또 다른 표석이 세워진 셈이다.
임페리얼 토파즈 350캐럿을 세팅한 ‘골든 버스트’ 네크리스.
두 번째 스테이션은 N°5 보틀의 우아한 디자인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마개를 주제로 한 공간이 펼쳐졌다. 위에서 보면 에메랄드 컷으로 세공한 보석처럼 입체적인 직사각 형태의 마개는 마침 프레젠테이션이 열린 장소이자, 세계 하이 주얼리의 중심지인 방돔광장을 본뜬 것처럼 닮아 있었다. 샤넬은 상징적인 직사각형에 다이아몬드와 오닉스, 진주, 옐로 사파이어 같은 진귀한 스톤을 더해 더욱 풍부하게 재해석했다. N°5 향수 이름에 포함된 단 하나의 숫자 5 역시 이번 컬렉션에서 중요한 테마로 자리매김했다. 중심을 벗어난 위치에 숫자 5를 배치해 트위스트를 가미한 초커 네크리스, 숫자 5 모티프를 다이아몬드 리본 아래에 살며시 감춰 섬세한 재미를 더한 브레이슬렛과 이어링 등 위트 있는 피스들이 눈길을 끌었는데, 특히 숫자 5 부분을 따로 떼어 브로치로 활용할 수 있는 ‘이터널 N°5’ 네크리스는 다양한 커팅의 다이아몬드와 함께 10캐럿에 달하는 에메랄드 컷 다이아몬드를 센터 스톤으로 사용해 압도적 존재감을 자랑했다. 다음으로 샤넬은 한번 맡으면 잊을 수 없는 N°5 향수의 향기에 집중했다. 매혹적인 향의 기원을 더듬어 나타난 재스민, 로즈, 일랑일랑과 같은 향기를 결정하는 꽃을 주제로 삼은 하이 주얼리를 선보인 것. 꽃잎이 겹겹이 싸인 입체적인 꽃망울의 형태를 정교하게 묘사해 하우스의 장인 정신과 기술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모든 제작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샤넬 하이 주얼리 아틀리에.
이 컬렉션을 통해 가브리엘 샤넬의 창의성을 재발견하고 싶었습니다.
55.55캐럿의 에메랄드 컷 다이아몬드와 104개의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 42개의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55.55 네크리스의 탄생 과정.
N°5 향수가 가진 표면적인 요소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 외에도 향을 구성하는 원료, 향수를 뿌린 후에 느낄 수 있는 잔향을 상상하며 만든 더 실리지 라인은 향수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사용하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향을 전하는 향수의 특성을 떠올리며 추상적인 모티프로 구성된 이 컬렉션을 들여다보면 향수를 뿌릴 때 미세한 입자가 공기 중에 흩어지는 형태, 피부 위에 넓게 퍼지며 밀착되는 ‘골든 버스트’ 네크리스 등 말 그대로 향수를 바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컬렉션이었다. 다섯 개의 스테이션을 지나자 샤넬의 시향지가 주렁주렁 늘어진 보리수 숲이 펼쳐졌다. 컬렉션의 여운을 음미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빛을 포착해 더욱 밝게 빛나는 다이아몬드의 향연, 어디서도 쉽사리 볼 수 없는 진귀한 컬러 스톤, 보틀에서부터 잔향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상상력과 뛰어난 관찰력으로 만들어낸 아이디어까지. 프레젠테이션에서 보고 느낀 장면들이 향기처럼 은은하게 스쳐 지나갔다. 샤넬의 첫 번째 향수 N°5가 탄생한 1921년과 샤넬의 첫 하이 주얼리 전시 〈비쥬 드 디아망〉이 열린 1932년을 잇는 징검다리인 ‘컬렉션 N°5’는 샤넬 하우스의 빛나는 유산과 뛰어난 상상력 그리고 그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장인 정신과 기술력을 고루 보여주는 상징적인 컬렉션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