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IFE

20년 넘게 찍은 엄마와 아들의 커플사진이 있다? 사진가들이 담은 #나의가족 2

렌즈를 사이에 두고 나의 가족이 아닌 한 명의 개인을 바라보기로 한 사진가 8명.

BYELLE2021.05.24
 

ANNIE 

WANG

 
대만의 사진가 애니 왕에게 아이를 갖는 건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공포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은 옆에 선 아들의 키가 그녀의 키를 훌쩍 넘는 20년의 시간 동안 다른 감정으로 서서히 바뀌었다. 
 
 ‘출산 전날 The day before I was due to give birth’, 2001. 아들, 다리 깁스를 하다 My son’s leg was in plaster’, 2003. ‘열심히 공부중 Working hard’, 2006. ‘자유를 외치다 Arguing for freedom’, 2018.


처음 작업을 결심한 순간 2000년,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신 사실을 알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이를 원했는데도 행복보다 중압감과 공포가 앞섰다. ‘왜 이렇게 엄마가 되는 게 두렵지?’ 하는 질문이 나를 괴롭혔고, 미래에 대한 불분명함과 자신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임을 알았다. 아티스트로서 온전한 내가 필요한데, 전통적으로 모성은 자신을 희생하는 위치니까. 마침 박사 학위 주제를 찾아야 했던 때라 임신에 대한 공포를 표현한 대만 여성 작가가 있는지 찾아봤는데 불행히도 시각미술 분야에서는 적절한 예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해보기로 했다. 당시 지도교수가 여성임에도 아시안 여성의 개인사는 아무도 관심이 없을 것이며, 연구로서 가치가 없다고 비판해 대학을 편입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작업이 의미 있는 기록이 될 것이라고 깨달은 순간 〈창조자로서의 엄마 The Mother as a Creator〉를 기획하며 내가 몇 년간 다층적으로 작업을 이어간다면 엄마가 될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2005년 영국에서 열린 단독전에서 긍정적 반응을 얻으며 확신은 더 커졌다. 초반의 작업물은 예술가로서 내 정체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절망감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작가로서 내 작업에 의지가 생기며 스스로를 프로젝트와 연구의 중심에 두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그때 세 가지 전략을 세웠다. 자신을 재현할 것, 가족사진일 것 그리고 시간적 연속성이 있을 것. 
지금 두 사람의 관계를 표현한다면 우리는 아주 가까운 사이다. 아들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엄마와 아이지만 대부분 친구 같다. 서로 감정과 생각을 자주 공유한 덕분이다. 아들로부터 들은 직접적인 피드백이 있다면 내 작업을 보며 자신이 엄마의 몸에서 나왔다는 것, 엄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됐다고 말한 적 있다. 열 살쯤 됐을 때였는데 함께 이 작업을 해냈다는 것이 전시회 때 특히 자랑스러웠다고 하더라. 최근에 사진을 찍는 건 우리 가족에게는 일상이라 특별하지 않다는 말도 했다. 대학생이 된 지금, 함께 살지 않지만 틈틈이 이 작업을 이어가기로 동의했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 사랑과 존중의 감각에 기초해 서로를 돌보기로 마음먹은, 아주 가깝게 묶인 사람들.
 

KANG

HEE JU

 
사진가 강희주와 엄마는 수년간 만나지 못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일본과 한국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놓여 있다. 공백을 메우고자 눌렀던 셔터 사이로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이야기가 놓였다. 
 
처음 엄마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2014년 엄마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담배를 피운다고 스치듯 얘기했다. 베란다에 쭈그려 앉은 엄마를 찍자 왜 이런 걸 찍냐고 짜증 냈는데, 그게 이상하게 반가웠다식물 키우는 것도, 꽃 보는 것도 참 좋아하는 엄마는 자주 계절의 변화를 넋 놓고 봤다. “와, 이거 봐라.” 무신경한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명랑한 엄마가 웃기고 귀여웠다.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니 별 방도가 없었나 보다. 엄마는 정말 이 사진을 싫어했다. 아마 나라도 그랬겠지. 그치만 열에 아홉 중 엄마는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작업이 두 사람의 관계에 미친 영향 사진이 매개가 돼 우리의 공백을 메우는,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는 언제나 자신을 찍는 나에게 “대체 왜 이럴 때 찍냐, 예쁘게 찍어”라고 할 때가 많았으니까. 오히려 엄마와 내 관계가 부드러워진 건 내가 돈을 벌고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게 된 이후다. 엄마에게 느꼈던 결핍을 채워나가면서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서로를 인정하고 애써 갈망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예전에는 뭔가 설득하려는 마음이 컸다면 지금은 덮어버리는 것도, 드러내는 것도 아닌 상태에 도달한 것 같다. 어쩌면 시간이 정리해 준 꽤 괜찮은 상태다.
작업을 본 사람들이 어떤 것을 느끼길 바라나 부재에 대한 갈망을 오래도록 남기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결국 내 몸과 생각에 깊은 자국을 내므로. 모든 가족에 각자의 사연이 존재하듯, 사진이 그걸 풀어나가는 방식이 이럴 수도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보이길 바란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 불완전하고 표리된 나날을 보내면서 그렇게 가끔 서로의 조각을 채워주기도, 자주 어긋나기도 하는 지난한 과정을 함께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
 

ALESSANDRA

SANGUINETTI 

 
타고난 가족과 어른이 되어 스스로 택한 가족. 어느 사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20년간의 기록을 통해 가족의 본질을 추적해 간 사진가 알레산드라 상귀네티. 
 
사춘기에 접어든 두 소녀의 기록이 담긴 〈기예와 벨린다의 모험, 그리고 이들의 불가사의한 꿈 The Adventures of Guille and Belinda and the Enigmatic Meaning of Their Dreams〉 속 사진들. ⓒ Alessandra Sanguinetti/ Magnum Photos/Europhotos. 사춘기에 접어든 두 소녀의 기록이 담긴 〈기예와 벨린다의 모험, 그리고 이들의 불가사의한 꿈 The Adventures of Guille and Belinda and the Enigmatic Meaning of Their Dreams〉 속 사진들. ⓒ Alessandra Sanguinetti/ Magnum Photos/Europhotos. 16세에 어머니가 된 벨린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기예와 벨린다의 모험, 그리고 변치 않을 여름에 대한 환상 The Adventures of Guille and Belinda and the Illusion of an Everlasting Summer〉. ⓒ Alessandra Sanguinetti/Magnum Photos/Europhotos.
 
나와 피사체의 관계를 표현한다면 직접 피가 섞인 관계는 아니지만 쉰을 훌쩍 넘긴 지금, 기예와 벨린다가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였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두 권으로 나뉜 사진집 시리즈 〈기예와 벨린다의 모험 The Adventures of Guille and Belinda〉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둘의 휘청거리는 사춘기와 불확실한 청춘기, 어느새 엄마가 돼버린 모습까지, 이들의 일생이 담긴 기록을 통해 나는 기예와 벨린다의 예쁜 모습과 미운 모습을 모두 만났고, 어떤 면을 맞닥뜨렸을 때조차 좋았다. 단순히 사진을 찍었다기보다 그저 가족과 함께 추억을 만들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오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 기예와 벨린다에게 나타난 한 인간으로서의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변화를 즐겁게 생각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작업 초창기에 피사체로서 내가 즐겨 담았던 둘의 순수함을 끝까지 강요하기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경험하는 삶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담아내려고 했다. 어린 시절의 기예와 벨린다에게 20년 뒤를 한번 상상해 보라는 말을 툭 던진 적 있다. 그때 두 소녀는 무엇보다 서로가 헤어지는 걸 가장 두려워했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이 낳은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사진 속 벨린다의 모습을 보면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이별을 경험하지만 결국 또 다른 가족을 만나고, 새로운 관계와 연결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이런 가족의 변화야말로 내게 무엇보다 흥미롭게 느껴지는 작업 주제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 피를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순수하게 교감하는 일이 가능한 관계. 오랜 시간 기예와 벨린다 가까이에서 지내며 더없이 생경하고, 기적 같은 가족이란 관계의 본질을 탐구할 수 있어서 난 운이 좋았다.
 

SHIN

JUNG SIK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지만, 정작 변화는 아들에게 찾아왔다. 자기수양과 같은 사진 작업을 통해 비로소 어른이 됐다는 사진가 신정식. 
 
반려견 찰리와 부산 바닷가를 산책 중인 아버지.

반려견 찰리와 부산 바닷가를 산책 중인 아버지.

18분. 이날 아빠가 현관문을 여는 데 걸린 시간이다. 발병 초기에는 스스로 뭔가 해내도록 끊임없이 아빠를 부추겼지만 이제는 그런 방식으로 아빠를 대하지 않는다.

18분. 이날 아빠가 현관문을 여는 데 걸린 시간이다. 발병 초기에는 스스로 뭔가 해내도록 끊임없이 아빠를 부추겼지만 이제는 그런 방식으로 아빠를 대하지 않는다.

알츠하이머 환자 특유의 공허한 분위기가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를 의식하는 순간, 아빠는 짐짓 생기 있는 표정을 짓곤 하는데 나름대로 병에 맞서기 위해 애쓰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먹먹하다.
 
셔터를 누르려고 처음 마음먹은 순간 2018년 여름, 아버지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일을 그만뒀다. 그런 아버지를 나는 가혹할 만큼 매섭게 운동시켰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뛰는 심장과 쏟아지는 땀만이 아버지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느꼈으므로. 늘 산책하던 바닷가 옆 산비탈을 거닐던 어느 날, 한참을 걷다 잠시 멈춰 선 아버지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사진으로 담았고, 아버지는 의외로 즐거워했다. 나중에 사진으로 인화하고 보니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아버지의 힘들어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숨을 고르는 모습, 난간을 붙들고 버티던 손, 뒷모습에서 보이는 축 처진 어깨 등. 그건 아버지도, 가장도, 알츠하이머 환자도 아닌 인간 ‘신현성’의 모습이었다. 지난해 이맘때 세상에 나온 우리의 사진집 〈함께한 계절〉은 더 늦기 전에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나의 개인적인 노력이다. 
사진을 찍을 때의 원칙 아버지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 피곤한 기색이 보이면 억지로 촬영을 이어가지 않는다. 또 시각적인 인지 장애가 심해 사진을 온전히 감상하실 수 없어 책이나 기사를 통해 아버지 사진이 공개될 때 판단을 잘 내리도록 주의한다. ‘이런 내 모습이 사람들에게 보여져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사진 촬영이 우리만의 시간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과감하게 포기한다. 언제나 사진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므로. 
작업이 두 사람의 관계에 일으킨 변화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생겼다는 것이 제일 좋다. 병을 앓게 된 후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사진이 책에도 나오고, 신문이나 TV에도 나와요”라면서 많은 사람이 아버지를 알게 됐다고, 아버지는 결코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고 자주 이야기해 준다. 물론 10초만 지나도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이야기인 것처럼 말해야 하지만. 
아버지와의 사진 작업이 지닌 의미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 아버지가 몸이 편찮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화를 낼 때가 여전히 많다. 아버지 사진을 찍기 시작한 후로는 사진을 통해 그런 말과 행동을 후회하는 계기가 자주 생겼는데, 그러면서 조금씩 성숙해지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 양보와 희생이 당연한 관계. 설사 상대방이 그걸 전혀 알아채지 못하더라도 상대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고, 단 1%의 의심도 없이 말할 수 있는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