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아놀드 뉴먼의 전략적 포트레이트

선명한 대비와 기학학적 형태, 전략적인 여백으로 완성된 단 한 컷의 포트레이트. 사진가 아놀드 뉴먼이 포착한 아이코닉한 순간들.

프로필 by 이경진 2025.01.03
예술가와 작곡가, 배우, 정치인의 초상 작품을 남긴 미국의 사진작가 아놀드 뉴먼. ‘환경 초상’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그는 피사체의 개인적 이야기나 창의적 본질, 직업적 정체성을 프로파일링하고 이를 전달하기 위한 구성에 공을 들였다. 지난해 캐나다 온타리오미술관(Art Gallery of Ontario, 이하 AGO)에서 호평받은 그의 전시가 서울에 상륙했다. 뮤지엄한미에서 열린 <시대의 아이콘: 아놀드 뉴먼과 매거진>전의 개최를 기념하며 한국을 찾은 AGO의 소피 해킷(Sophie Hackett)과 탈-오르 벤-초린(Tal-Or Ben-Choreen), 뮤지엄한미의 김선영 그리고 정지윤. 네 명의 큐레이터가 아놀드 뉴먼의 삶과 창작성, 아이코닉한 행보에 관해 나눈 대화.
‘Georgia O'Keeffe, Ghost Ranch, New Mexico, USA’(1968).

‘Georgia O'Keeffe, Ghost Ranch, New Mexico, USA’(1968).

아놀드 뉴먼의 이전 전시들은 그의 작품 특징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뒀지만,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 속에서 다르게 포착되는 미묘한 요소들의 탐구에 초점을 맞춘 듯해요. 새로운 관점이죠
AGO 우리는 뉴먼을 만나본 적 없는 전시기획자예요. 그렇기에 아놀드 뉴먼이라는 카리스마적 인물, 잘 다듬어진 그의 개인 서사에 영향을 받지 않고 신선한 방식으로 그의 작품에 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뉴먼의 말에서 영감을 얻고 영향을 받았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이번 전시의 윤곽을 그렸어요.

어떤 영감이 주요했나요
AGO 그의 이미지 ‘구축’ 개념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 관심은 뉴먼이 어떻게 자신의 경력을 구축해 나갔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연결됐고요. 뉴먼의 작품 발전사를 들여다보면 유명한 초상사진 중에서 다수가 편집적 의뢰의 일환으로 제작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그의 작업 노트 속 기록을 바탕으로 동일한 의뢰에서 비롯된 이미지들을 연결할 수 있었고, 그 연결이 뉴먼의 경력에서 잡지가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 면밀히 고찰했어요. 잡지가 곧 뉴먼의 작품 실행에서 중심 동력이 됐음을 깨달았어요. 잡지는 뉴먼을 교육했고, 그에게 직업적 기회를 제공했으며, 궁극적으로는 그가 명성을 얻을 수 있도록 기여했죠.

‘Igor Stravinsky’(1946).

‘Igor Stravinsky’(1946).

이번 기회에 특히 뉴먼의 초기 경력과 그가 사진을 평생의 열정으로 삼도록 영감을 준 순간에 매료됐습니다. AGO는 전시를 기획하며 뉴먼이 사진작가 경력에 완전히 전념하는 데 결정적 동기가 된 시기를 1930년대 혹은 1940년대로 봤죠
AGO 뉴먼의 작품에 관해 이미 알려진 내용을 검토하면서 뉴먼의 경력 초기에 두 가지 중요한 걸 발견했습니다. 첫 번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마이애미대학교 예술 프로그램을 그만두고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 스튜디오에 사진 조수로 들어갔던 일이죠. 거기서 뉴먼은 사진 기술을 연마하며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초상사진을 만들어내는 법을 배웠어요. 또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뉴먼은 많은 성장을 이뤄내며 중요한 사회적· 창의적 네트워크를 구축했어요. 1942년에 마이애미로 돌아간 뒤에도 필라델피아 친구들에게 자주 서신을 보낸 것을 보면 그 시절의 우정이 뉴먼에게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뉴먼의 룸메이트였던 벤 로즈(Ben Rose)는 촉망받는 젊은 사진작가로 영향력 있는 예술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알렉세이 브로도비치(Alexey Brodovitch)의 지도를 받고 있었습니다. 뉴먼과 로즈는 함께 뉴욕의 AD 갤러리에서 첫 2인 전시회를 열었죠. 또 뉴먼은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로부터 첫 잡지 의뢰를 받았는데, 당시 알렉세이 브로도비치가 편집장(1934~1958년)을 맡고 있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1941년부터 1942년 사이에 일어났던 일이군요
AGO 맞아요. 두 번째 동기로는 뉴먼이 잡지 <라이프 Life>에서 앨버트 갤러틴(Albert Gallatin)의 컬렉션을 다룬 기사를 접했던 순간을 들 수 있어요. 기사에는 각자 자신의 작품으로 둘러싸인 스튜디오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갤러틴이 촬영한 사진들과 함께 실려 있었어요. 갤러틴은 예술가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공간에서 그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비록 뉴먼이 그 기사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지만, 그가 나중에 <라이프> 편집자들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던 사실로 미뤄보아 뉴먼이 그 기사를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기사에 나왔던 초상사진들은 뉴먼이 1941년부터 시작한 예술가 초상사진 시리즈를 위한 명확한 선례가 된 것이죠. 그리고 그 시리즈는 1945년 필라델피아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예술가의 모습 Artists Look Like This>의 핵심을 이루게 됩니다.

‘Fernand Le`ger, Painter, New York, USA’(1941).

‘Fernand Le`ger, Painter, New York, USA’(1941).

전시의 5부 ‘이야기를 중심으로(Focus on the Story)’에서는 콘텐츠 속 뉴먼의 다양한 역할을 강조하죠
AGO 뉴먼의 경력은 1950~1970년대에 이르는 잡지 황금기와 겹쳐 있어요. 그의 잡지 경력은 그의 여러 사진들과 전시 <예술가의 모습>으로 언론의 큰 주목을 받게 된 이후인 1946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뉴먼은 흔히 심도가 얕은 공간에서 피사체를 촬영했습니다. 그 훌륭한 본보기가 1941년 작품인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의 초상사진입니다. 이런 평면성은 잡지에서 잘 재현될 수 있습니다. 뉴먼은 이 점을 일찍 깨달았죠.

아놀드 뉴먼은 잡지 편집자들과 중요한 관계를 구축했고, 종종 자신의 사진 촬영에서 아트 디렉션을 담당하기도 했어요. 이는 분명 사진작가로서는 드문 일이었죠
AGO 주목할 만한 예로 그가 <라이프> 1950년호에서 ‘미국의 미술관은 무엇을 구입하는가?(What Do U.S. Museums Buy?)’라는 기사를 제안한 일을 들 수 있습니다. 뉴먼은 여섯 곳의 미술관 큐레이터에게 그들이 지난해 구입한 작품에 대한 정보를 요청해 각 작품 사진의 축소판을 잘라내고, 그것들을 종이 한 면에 배열했습니다. 그리고 대형 카메라 그라운드 글라스 크기의 또 다른 모조지나 투사지에 그것들의 윤곽을 그려낸 것을 지도처럼 사용하면서 작품을 벽에 어떻게 걸지에 대해 지시했죠. 이 과정을 기록한 사진을 비롯해 잡지에 실린 최종 이미지를 보면 뉴먼이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잡지로 얼마나 잘 옮겨놓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Abstract Check Door and Machinery’(1938).

‘Abstract Check Door and Machinery’(1938).

이번 전시회에 선보일 모든 작품이 온타리오미술관의 방대한 컬렉션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지난해 온타리오미술관에서 그의 작품 400점 이상이 전시됐고, 서울 전시에서는 다소 간소화된 작품 선정이 이뤄졌어요. 이번 전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전 전시에서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특별한 사진이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면
AGO 그의 주요 작품과 이야기가 뮤지엄한미 전시에 포함된 것이 매우 기뻐요.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몇몇 작품이 제외된 것은 아쉽습니다. 뉴먼의 ‘붉은 벽돌, 뉴욕(Red Brick, New York)’(1948)은 작가의 초기 컬러 사진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이죠. 뉴먼은 두 건물의 모습을 한 프레임에 담으면서 하늘이나 지평선을 배제했고, 건물 외관의 질감과 색조를 강조하기 위해 둘 사이의 공간감을 무너뜨렸어요. 녹색 문이 색의 대비를 부각시키죠. 이 작품은 후에 뉴먼이 존 디어(Jone Deere)의 잡지 <JD 저널 JD Journal> 1982년호 의뢰를 받아 작업했던, 기계 부품의 색채적 추상을 강조한 사진의 전조로 볼 수 있어요.

‘David Hockney, Painter, London, England’(1978)

‘David Hockney, Painter, London, England’(1978)

그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것이 있나요
AGO ‘로스앤젤레스의 코카콜라’(1977)를 좋아합니다. 뉴먼이 노스웨스트 인더스트리를 위해 은밀한 유머를 담아 경영진을 촬영한 사진이죠. 뉴먼은 한 임원의 독특한 머리카락을 코카콜라 로고의 곡선과 연결시켰습니다. MIT 교수 클로드 섀넌 박사의 초상은 피사체 연구를 중시하는 초상사진의 훌륭한 본보기예요. ‘정보 이론의 아버지’ 섀넌이 인터넷의 기초를 만든 컴퓨터 회로망 기둥 뒤에 서 있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니 말입니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민홍주
  • COURTESY OF ART GALLERY OF ONTARIO/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