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미나리〉 스틸.
15년간 매거진에서 일하며 꽤 많은 배우와 스타를 만났습니다. 김혜수, 전도연, 송혜교 세 배우와 일대일 인터뷰를 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내심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죠. 그런데 끝내 만나보지 못한 인물 중 가장 아쉬운 이를 꼽자면... 윤여정 배우가 떠오릅니다.
그런 배우, 그런 어른, 그런 여성을 마주한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 환갑이 넘은 여배우라면 으레 헌신적인 엄마나 자애로운 할머니 역할을 하는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풍토 속에서, 윤여정 배우의 행보는 달랐습니다. 임상수, 이재용 등 ‘센’ 영화를 만들기로 이름난 감독들의 작품들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계에서 본 적 없는 여성 캐릭터를 그려냈습니다. 〈바람난 가족〉 〈돈의 맛〉 〈하녀〉에서 보여준 강렬한 연기들. 과연 윤여정이 아니었다면 노인 성매매 문제를 다룬 〈죽여주는 여자〉의 양미숙이 존재했을까요.



데뷔 시절, 전통적인 미녀상은 아니었던 윤여정은 스스로 자격지심을 느낀 때도 있다고 합니다. 삶의 곡절로 인한 공백기가 있었고, ‘돈을 벌기 위해’ 연기를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 절박함 속에서 윤여정의 도전하는 삶은 만들어졌습니다. 스스로를 ‘까다롭다’고 말하는 윤여정은 자신을 수식하는 말 중에 가장 맘에 드는 것도 ‘까다롭다’라고 합니다. 윤여정이 까다롭다는 것은 ‘권위적’이거나 ‘꼰대스럽다’는 것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가치관이 확실하고 취향이 분명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꼿꼿하게 ‘나’로 존재하는 ‘모던 우먼’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2012년, 〈돈의 맛〉과 〈다른 나라에서〉 두 편의 영화로 칸 영화제에 참석했을 당시, 기자들 앞에서 “일찍 죽었으면 큰 일 날 뻔 했다”라고 농담을 던졌던 배우 윤여정. 75세 인생에 찾아온 이 떠들썩한 시간 속에서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라며 얼음 넣은 화이트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깔깔 웃고 있을 지도요.
윤선생 어록
」"나이 60이 돼도 인생은 몰라요.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도 67살이 처음이야. 아쉬울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고, 어떻게 계획을 할 수가 없어.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씩 내려놓는 것, 포기하는 것, 나이 들면서 붙잡지 않고.” -TVN 〈꽃보다 누나〉에서
“서진이가 메뉴를 추가하자고 했어요. 젊은 사람들이 센스가 있으니 들어야죠. 우리는 낡았고 매너리즘에 빠졌고 편견을 가지고 있잖아요. 살아온 경험 때문에 많이 오염됐어요. 이 나이에 편견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니들이 뭘 알아?'라고 하면 안되죠. (중략)
난 남북통일도 중요하지만 세대간 소통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연합뉴스〉 인터뷰 중에서
“60세 넘어서는 사치하고 살려고 마음을 먹었어요. 제가 하는 사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거 하고, 나 싫어하는 사람 거는 안하고. 돈 그런 거 상관없이 하리라.’ 제가 복도 많아요. (이 영화로) 덕을 본 것 같아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언론시사회에서
PLAY! 지난해 1월, 영화 〈미나리〉로 찾았던 제36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센스 넘치는 화술로 관객석을 들썩이게 만든 윤여정. 아래 링크에서 직접 확인해보길!
*찬양하고 애정하고 소문 내고 싶은 별의별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 ‘요주의 여성’은 매주 금요일 찾아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