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거나 인기가 많아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있거나 좋은 집에서 살고 있어도, 외롭다고 느끼지 않는가. 1년간 일본에서 살 때 굉장히 외로웠다. 작은 도시에 머물러서 그런지 혹은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다. 당시 영국 친구가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2주간 서울에 머물 일이 있었다. 짧은 시간에 꽤 많은 한국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이 현지인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는 나라라고 느꼈고, 이런 점이 내가 한국에 정착하게 한 이유 중 하나다.
10년이 지난 지금에 돌이켜 보면 내가 한국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 중 남아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어느 나라건 마찬가지겠지만 기대했던 만큼 한국에서 진정한 친구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잘 모르는 그룹이 서로 섞이기 쉽지 않다
」 한국에서 하우스 파티를 열었다. 내가 아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초대했다. 대학원 친구들, 동아리 친구들, 외국인 친구들, 회사 동료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길 바랐다. 시간이 지나고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음을 실감했다.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끼리만 대화가 오고 갔고 모르는 사람들 간에 어쩌다 눈이 마주쳤다 치면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술을 마시고 시간이 흘러도 어색한 분위기가 쉬이 풀리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모두가 집으로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내가 넉살 좋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호스트였다면 이 정도 재앙은 아닐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누가 집주인인지 몰라도 신나게 떠들고 노는 영국의 하우스 파티를 상상했던 나의 무지를 탓했다.
내 주변의 한국인 남성 친구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여성 친구가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남자와 여자는 애초에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여사친’, ‘남사친’ 같은 신조어가 있는 걸 보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닌 듯 보인다. 그런데도 내 주변 사람들은 항상 남자들끼리 어울리거나 여자들끼리 어울린다. 결국 친한 친구를 만날 가능성이 50%나 줄어들게 된다.
남녀가 서로 친구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은 둘 중 하나라도 로맨틱한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결혼이라도 하고 나면 동성 친구들 간의 관계도 멀어진다. 결혼한 친구에게 6개월 만에 전화했더니 돌아오는 반응은 이랬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 지금 와이프랑 있어. 나중에 전화할게.”라며 전화를 황급히 끊었다. 물론 로맨틱한 관계나 결혼은 중요하다. 문제는 그 결혼과 연애가 끝나면 그들 곁에 남아 있을 친구가 몇이나 될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시간과 돈이 제한적이다. 사람들은 가성비가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한다. 사람 자체를 알아가기 전에 집안, 학력, 재산, 외모, 직업, 출신 등 미리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어떤 한국 사람은 나의 영국 영어 악센트가 부럽다며 결국 본인의 영어 학습을 위해 나와 친하게 지내려고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냥 내가 좋아서 친해지려나 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뚜렷한 목적이 자연스레 드러났다. 그는 목적 달성 외에 나에 대해 굳이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는 모두 타인에 대해 어느 정도의 사전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이들에게 더 친밀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돈이 많다는 이유로 관계를 맺으면 어쩌면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다. 집안이 좋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인맥이 도움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우정이란 뜻은 아니다. 흔히 외국인과 친하게 지내면 언어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외국인과 같이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면 글로벌한 인간관계를 가진 것을 주변에 어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본인이 소유한 외제 차 사진을 SNS에 올려 재력을 과시하는 것처럼.
한국을 처음 겪었을 때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쉽지 않았다. 내 주변에는 외롭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만, 자신이 외로운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