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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끝나고 동료들과 식사를 했다. 그제야 강연에 대한 이야기가 거침없이 시작됐다. 동료들의 기대는 이랬다.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권익 신장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강연자는 살림과 육아 '꿀팁'만 공유한 거다. 그렇지만 강연장에 있던 서른 명의 사람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당신도 유사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상사의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말없이 듣거나 웃기지 않은 농담에도 손뼉 쳐야만 했을 때가 있었을 거다. 회사에서 제안한 방향으로 추진했던 프로젝트지만,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선 상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설명해야만 했을 거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면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보다 상사의 말에 얼마나 잘 동조하는지에 따라 승진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런 조직 문화에서 어쩌면 침묵은 옳은 대응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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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에 관해 물은 조사를 보면 한국은 48개국 중 47위다. 그렇다면 한국 교육 과정은 탐구적이고 진취적인 학생들을 키우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불행한 청소년들을 만들어 내는 건 아닐까.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은 대학에 가서도 반복된다. 나는 한국에서 석사 교육 과정을 듣는 내내 수업 시간에 입을 굳게 닫고 있는 학생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강의 내용과 반대되는 의견이 있어 이를 말했더니 교수가 갑자기 화를 냈다. 외국에서는 교수와 학생이 의견을 교환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무척 당황했다. 나이와 지위가 곧 권위를 상징하는 환경에서 새로운 의견을 자연스레 제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다른 나라의 기술을 답습하기만 해도 된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크게 요구되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한국은 누군가를 따라 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걸까. 침묵이 요구되는 사회는 아이디어를 죽이고, 창의성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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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