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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처음 목격한 추석 이야기_라파엘의 한국살이 #35

마침내 거대한 제사상이 차려졌다.

BY김초혜2020.10.02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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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돌아왔다. 어떻게 보면 추석은 크리스마스처럼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다. 오랜만에 가족 구성원이 모두 모여 앉아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안부를 묻고 서로 격려하면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고향에 머물면서 기분전환도 할 수 있고, 업무에서 벗어나 잠시 쉴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추석 연휴가 끝날 때쯤 포털 사이트에서 ‘명절증후군’이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추석은 가족과 친척들의 끼니를 전담해야 하는 여성에게 특히나 고통스러운 기간으로 여겨진다. 또 다양한 오지랖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렇지 않아도 삶이 버거운 이들은 참견하는 가족들 때문에 일부러 명절에 모이는 일을 기피하기도 한다.
 
내가 한국에서 친구의 가족과 함께 추석을 보낼 때였다. 모든 것이 신선하고 새로웠다. 처음엔 맛있는 음식 냄새에 이끌려 주방을 기웃거렸더니 다들 바빠 보였다. “어머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사실 한국 전통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궁금하기도 해서, 혹시 내가 할 일이 없는지 물었다. 하지만 말을 꺼내기 무섭게 나는 부엌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남자들끼리 놀아!” 내가 손님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남자들이 모여있는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말했다. “엄마 좀 도와드려!” 그는 못 들은 척했고, 그대로 앉아 TV 시청을 이어갔다.
 
마침내 들인 시간과 노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제사상이 차려졌다. 한국에서 어떻게 제사를 지내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흥미롭고 이상했다. ‘왜 여자는 절을 안 하지?’ 제사를 주관하고 절을 올리는 모든 과정에는 남자들만 참석했다. 제사가 끝난 뒤에도 쉽게 해소할 수 없는 의문이 남았다. 왜 새벽부터 상을 차린 여자들은 이 집의 손님인 나와 함께 멀찌감치 제사상을 지켜봐야 하는 걸까.
 
제사가 끝나고 다 같이 밥을 먹는 과정에서도 놀라움이 계속됐다. 남자들이 먹는 밥상과 여자들이 먹는 밥상이 구분되어 있었다. 명절에 왜 다 같이 모여 앉아 먹지 않는 걸까. 이상했다. 식사 후 정리와 설거지 역시 온전히 여성의 몫이었다. 문제는 이런 행동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아무도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는 거다. 티 타임엔 대본 같은 질문들은 반복되었다. “애인은 왜 없어?”, “연봉은?”, “결혼 언제 할 거야?” 주변 친구들의 명절 이야기를 들어봐도 집집이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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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키는 전통 추석의 의미는 무엇일까?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가족 구성원끼리 간만에 모여 앉을 수 있는 시간은 소중하다. 맛있는 음식을 공유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여성의 희생을 기반으로, 남녀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명절은 문제가 있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방식 또한 합리적인 방향으로 진화해야만 한다.
 
명절 기간만 되면 서울역 근처에는 ‘평등한 명절’을 보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는 명절이 남녀불평등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기간이라고 읽힌다. 어떤 사람에게는 ‘평등한 명절’이란 단어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제는 서로에게 불만과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보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명절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것이 명절 본연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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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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