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35살에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것_코로나 시대의 주거 생활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었고 35살의 나는 다시 10대가 됐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이런 이야기를 듣는 삶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다. “밥 먹는 동안 휴대폰 보지마!”

BY권민지2020.04.22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만큼이나 충격적인 사실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초현실적인 상황에서의 무료함’이다. 팬데믹 시대의 삶이 권태로울 것이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고양이 마냥 반짝이는 것 외엔 눈길을 주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언론과 정치인들은 준전시 상태라며 요란하게 포장하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드라마틱 하지 않다. 집에 콕 박혀서 스도쿠(숫자 퍼즐 게임)을 풀고, 끊임없이 빵을 굽고, 욕실 타일의 줄눈이나 다시 맞추는, 그저 화요일 밤 같은 나날이 지속되고 있다. 요즘 나의 하루는 대강 이렇게 흘러간다.
 
8시 30분: 일어나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9시~11시: 온라인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11시에 수업이 끝나면 두 번째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11시~13시: 다시 온라인 레슨. 점심 먹고 담배 하나
14시~17시: 산책, 독서, 글쓰기
17시 30분: 부모님과의 저녁. 메뉴는 주로 감자
18시: 뉴스를 체크한다. 대부분 코로나19 얘기다
18시 30분-20시: 혼자 TV 보기
20시~23시: 부모님이 TV 시청 중 독서
23시 30분: 자려고 노력한다
(아, 타임테이블에 마스터베이션을 넣는 걸 빼먹었다. 하여튼.)
 
그러니까, 코로나19에 관한 할리우드 영화가 나온다면 아주 화끈한 섹스 신을 넣어주는 게 좋을 거다.
 
아일랜드의 전통 스포츠 헐링. 15명이 한 팀이 되는 팀스포츠이지만 아버지와 둘이 했다

아일랜드의 전통 스포츠 헐링. 15명이 한 팀이 되는 팀스포츠이지만 아버지와 둘이 했다

나는 밀레니얼 세대다. 일반적인 밀레니얼 세대에게 ‘코로나 라이프’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멋진 카페에서의 브런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일렉트로 펑크 퓨전 디제잉, 그룹 사이클 혹은 요가, 우쿨렐레 수업이 없다니, 세상에, 이토록 인스타그래머블하지 않은 일상이 존재하기나 했던가? 하지만 개인적으로 지루함, 외로움, 무료함, 권태로움 그걸 뭐라고 부르든 적막한 공기와 감정은 견딜 만한 것이다. 아니, 오히려 즐길 만하다. 타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좋은 거지, 그들과 꼭 한 공간에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롭다’는 문장에서 나는 괴로움보다는 외로움을 택하겠다는 쪽이다. 정말 힘든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35살의 나이(한국 나이로는 36)에 갑자기 10대의 삶을 살게 됐다는 사실이다. 무슨 소리냐고? 십수 년 만에 70대 부모님과 다시 한집에서 지내게 됐다는 얘기다.
 
부모님과 함께

부모님과 함께

이건 나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봉쇄령 시행 일주일 전, 난 마침 아일랜드로 귀국했고 시골에 있는 본가로 돌아와야만 했다. 나는 어쩌다 귀국 시기가 맞아 부모님 집에 갇힌(?) 경우지만 런던과 파리의 끔찍한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서, 코로나 블루 같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등의 이유로 가족의 곁으로 돌아갔다는 친구들의 소식을 종종 들었다. 다시 부모님과 한집에서 지내야 하는 것은 코로나 라이프만큼이나 답답하고, 낯설며, 기시감이 들면서도, 사실 이 또한 참을만한 것이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기를. 마냥 좋다는 건 아니다. 지난주만 해도 수염을 기르니 인상이 좋지 않다, 버터 좀 그만 먹어라, 휴대폰이 손에 붙어서 떼어내는 수술을 해야겠다(응?) 등의 잔소리를 들었다. 넷플릭스 사용법을 몇 차례 설명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차피 내가 틀게 될 게 뻔했으니까.
 
35살에 갑자기 다시 찾아온 10대의 삶!

35살에 갑자기 다시 찾아온 10대의 삶!

나와 정반대로, 태생적으로 외향적 성격의 소유자인 부모님은 관심 절반, 당혹스러운 절반의 눈으로 나를 본다. 그리고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만약 내가 좀 더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면 갑자기 모든 관심이 집중된 이 상황도 괜찮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난 유재석이 아니다. 내가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시간대는 부모님이 주무실 때고, 대개 하고 싶은 말은 머릿속으로만 하며, 인센스 스틱 연기처럼 집을 누빈다. 저녁을 먹으면서 내 친구들의 안부(아마도 잘 지내지 않을까 싶다)와 전염병에 대한 의견(생물학자가 아니니 의견이 있을 수 없다)을 묻지만, 대화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아마 부모님도 어딘가에 이런 종류의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35살의 데이비드는 여전히 16살 같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로 시작하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저녁으로 감자를 너무 많이 먹어서 참다 폭발한 내가 감자를 칼 모양으로 조각하던지, 아니면 부모님이 먼저 지쳐 내가 평생 입을 못 열게 할지도. 아니면 서로가 꼴도 보기 싫어 일산화탄소 경보기를 꺼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뭐가 됐든, 이렇게 별다를 것 없는 할리우드 영화 한 편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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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과 사진/ David Nash(시인)
  • 번역/ 서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