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은 매일 오르는데, 다이아몬드는?
불멸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다이아몬드가 최근 새로운 국면에 맞닥뜨렸다. 다이아몬드는 보석의 왕좌를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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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A diamond is forever).” 불과 80년 전, 드비어스가 광고에 사용한 이 마법의 문장은 전 세계 결혼 문화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한 줄의 카피가 지닌 힘은 실로 놀라웠다. 수천만 명이 평생 단 한 번, 가장 빛나는 순간을 위해 다이아몬드를 선택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2025년 현시점에서 다이아몬드 제국은 예상치 못한 격변의 파도를 맞고 있다.

다이아몬드 시장의 격변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이 30개월 넘게 이어지는 가격 하락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2022년 8월에 시작된 하락세는 올 3월 비로소 회복 조짐을 보였는데, 이토록 긴 침체기를 초래한 데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전 세계적으로 퍼진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소비자들의 지갑을 닫게 만든데다, 팬데믹 시기에 잠시 타올랐던 보복 소비의 불씨마저 빠르게 식어버렸다. 여기에 중국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다이아몬드 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젊은 세대가 증가하는 추세와 부동산 침체, 청년 실업률 상승이 맞물리면서 중국의 사치품 시장이 급격히 위축된 것이다. 또한 투르말린과 스피넬 등을 필두로 한 컬러 스톤이 독특한 색감과 희소성을 무기로 보석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자리매김하면서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다이아몬드가 그 왕좌를 위협받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는 국제 정세가 다이아몬드 유통망을 뒤흔들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G7의 제재로 세계 원석의 약 30%를 차지하던 러시아산 다이아몬드 유통이 차단되었다. 그러자 유통업체들이 보유 재고를 서둘러 처분하면서 역설적으로 공급 과잉 현상이 발생했다. 이처럼 수요 감소와 공급 혼란이 동시에 일어난 복합적 위기는 2025년 봄에 이르러서야 미약하게나마 회복 신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다이아몬드 시장은 이제 긴 터널을 지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다만 최근에 발표한 미국의 관세 조치가 시장 회복세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부상
이와 같은 혼란의 시기에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급성장은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윤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의 등장과 맞물려 천연보다 훨씬 저렴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매력이 강렬하게 부각되면서 ‘다이아몬드는 투자 가치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탄소 결정 구조와 물리·화학적 특성이 천연 다이아몬드와 동일하지만 탄생 과정은 판이하게 다르다. 천연 다이아몬드가 지구 깊은 곳에서 수십억 년의 시간이 빚어낸 걸작이라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첨단 기술이 단 몇 주 만에 만들어낸 인공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양극화되는 다이아몬드 시장
현재 다이아몬드 시장은 웨딩 주얼리와 패션 주얼리라는 뚜렷한 두 영역으로 재편되고 있다. 웨딩 주얼리 시장에서는 천연 다이아몬드가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시장을 일부 잠식하기 시작했지만,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한 순간에는 천연 다이아몬드의 상징성과 전통적 가치가 우선시된다. 특히 유럽과 일본, 홍콩,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 시장에서는 천연 다이아몬드가 소중한 순간의 상징물로서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패션 주얼리 영역에서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빠르게 영토를 확장하는 중이다. 트렌드와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 현대적 소비의 상징이자 접근 가능한 선택지로 부상했고, 스와로브스키와 판도라 같은 어포더블 럭셔리 브랜드들이 연이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라인을 출시하며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이 같은 양극화는 브랜드 포지셔닝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하이 주얼리 브랜드를 통해 럭셔리 마켓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패션 주얼리 시장을 각각 공략하고 있다.
투자 자산으로서의 다이아몬드
투자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변화가 포착된다. 화이트 다이아몬드 가격이 장기적 하락세를 지속해왔지만, 최근 들어 상승 전환의 신호가 나타나고있다. 올해 3월, 라파포트 다이아몬드 지수(RAPI)에 따르면 0.30캐럿은 6.5%, 1캐럿은 1.4%의 가격 상승률을 기록했고, 2캐럿 이상의 길쭉한 팬시 컷도 상승세에 합류했다. 특히 최고 등급 대형 다이아몬드와 블루, 핑크같은 희귀 컬러 다이아몬드는 주요 경매에서 수천만 달러에 낙찰되며 강력한 투자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시장 변화에 대응해 천연 다이아몬드 업계는 희소성과 투자 가치를 강조하는 마케팅을 강화하고, 블록체인 기술로 원산지 인증 시스템을 도입해 투명성과 지속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중이다.
다이아몬드 시장의 미래
국내 다이아몬드 시세 역시 이러한 글로벌 흐름을 따르는 가운데 지난 3월에는 상위 등급에서 미세하지만 의미있는 회복 기미가 나타났다. 이 같은 단기적 회복세를 넘어 지구에 매장량이 한정된 천연 다이아몬드는 장기적 관점에서 희소가치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고품질의 대형 다이아몬드와 희귀한 컬러 다이아몬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치가 높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이아몬드의 사회적 의미 또한 진화하고 있다. 과거 ‘평생 한 번’ 구매하는 특별한 보석에서 이제는 개인의 다양한 성취를 기념하는 상징으로 거듭났고, 특히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등장으로 일상적인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활용도 늘어 났다. ‘나를 위한 선물’을 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결혼 뿐 아니라 승진, 졸업, 창업 등 인생의 전환점을 기념하기 위한 구매도 증가하는 추세다. 드비어스의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슬로건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영원’의 의미가 더욱 다채로워졌다. 여전히 하이 주얼리 하우스들은 다이아몬드의 본질적인 가치를 자연에서의 희소성에 있다고 여기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사용을 기피하지만 분명한 점은 천연 다이아몬드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공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이아몬드의 본질적 매력은 더욱 선명해 졌다. 소비자들은 이제 ‘다이아몬드’라는 단어 앞에 붙는 수식어보다,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결국 다이아몬드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시선 속에 있는 것이다.
Credit
- 글 윤성원(주얼리 스페셜 리스트/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
- 일러스트레이터 이경민
- 에디터 김효정(미디어랩)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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