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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도 쉬어도 도무지 쉰 것 같지 않은 당신에게
진짜 심신의 휴식을 원하는 당신을 위한 '의외로 심플한' 방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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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를 타고 따뜻한 오일이 흘러내린다. “천천히 긴장을 푸세요”라는 속삭임. 지난 몇 달간 나는 이 마사지만 기다렸다. 아니, 손꼽아 학수고대해 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거다. “릴랙스~!” 얼핏 보기에도 구부정하게 경직된 내 몸을 다시금 올곧게 정렬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에스테티션의 한 마디.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몸은 계속 따로 놀았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꽉 쥐고 이를 앙다문 채 그날 미처 마치지 못했던 일 혹은 분명 했으나 ‘이렇게 할걸’ 하며 후회 중인 일 등이 적힌 포스트잇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으니까. 릴랙스, 긴장을 풀라고? 전혀 그럴 수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 잊어버린 것 같았다. 우리는 심신의 휴식을 제공하는 다양한 산업의 등장을 목격한다. 웰니스 스파, 미세 전류 마사지, 싱잉볼, 명상, 아로마오일 테라피, 팔로산토 스틱, 온열 패치, 안마의자, 심지어 릴랙스 음료까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수많은 제품과 프로그램이 출시돼 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의 신경은 진정되기는커녕 어느 때보다 예민한 상태가 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매일이 스트레스라고 응답한 성인이 14명 중 1명꼴이고, 그중 절반은 휴식에 할애하는 시간이 하루 40분 미만이라고 답했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불균형은 여성에게 더 심각하다. “여성이 더 불안한 이유는 종종 가족의 스트레스까지 포용하고 이를 내면화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에요.” 뇌가 근육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학습함으로써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키는 데 큰 효과가 있는 소마운동(Somatics) 전문가 나히드 드 벨게오네(Nahid de Belgeonne)의 설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적으로는 가장 발전된 시대에 인간은 ‘휴식’과 ‘진정’ 같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을 상실했다. SNS에 ‘바이오해킹(Bio Hacking)’ 해시태그가 넘쳐나는 것이 그 반증이다.
바이오해킹이란 내 생체 데이터를 면밀히 파악해 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조절함으로써 최적의 결과를 유도하는 활동을 뜻한다. 단어 자체는 거창해 보이지만, 비타민 D 합성과 숙면을 위해 자연광을 쐬려고 노력하는 행동, 우유를 마셨을 때 속이 불편함을 느끼고 락토프리 우유나 귀리 음료 등으로 바꾸는 행동, 뇌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스도쿠를 하는 습관, 건강기능식품을 복용하는 습관 등이 모두 바이오해킹에 해당한다. 특별한 디바이스나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실천법이다. 최근 주목할 만한 변화는 외부 요인에서 릴랙싱을 위한 수단을 찾는 대신 미주신경을 자극해 직접 내부 신경계에 접근하는 새롭고 쉬운 방법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 미주신경은 뇌에서 시작해 얼굴, 목, 흉부를 거쳐 복부에 이르기까지 가장 길고 넓게 퍼져 있는 신경으로, 심박수나 호흡 등의 신체 기능을 조절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또 감정 상태에 큰 영향을 미쳐 미주신경을 활성화하면 불안 수준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약 80%가 몸에서 머리로 정보를 보내는 감각신경으로 이뤄져 있어 소위 ‘신경이 거슬려’ ‘왠지 맘에 들어’ ‘낌새가 이상해’ ‘직감적으로 알아챘어’ 등의 표현으로 묘사할 수 있는 것에 미주신경이 작용한다고 보면 된다. 영어에서 ‘Gut Feeling’이라는 단어가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신경과학자 타라 스와트(Tara Swart) 박사에 의하면 “그 덕분에 우리는 소화와 면역 반응, 기분과 같은 주요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제어가 언제부터인가 매우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당신의 신경계를 치유하라 Heal Your Nervous System>의 저자 린네아 패살러(Linnea Passaler)에 따르면 “작은 것들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리는 ‘티핑 포인트’가 있어요. 신경계는 생물학적 환경과 삶의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는데, 만성 스트레스가 이어지면 더 이상 효과적인 관리가 불가능해 극도의 예민 상태는 물론 조절 장애를 초래하게 되죠.”
스와트 박사는 “유례없는 만성 스트레스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시작됐다”고 말하지만 팬데믹이 완화되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덜’ 행복하고 ‘더’ 불안하다. 더 퓨처 래버러토리(The Future Laboratory)의 디렉터 피오나 하킨(Fiona Harkin)은 “우리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집단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아직 ‘충분히 안전하다’ ‘이제 편안하게 즐겨도 좋다’ 따위의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신경계는 연결을 끊은 상태나 다름없습니다. 이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여전히 힘겨운 노력처럼 느껴질 수 있단 걸 의미하죠. 우린 다시 함께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지만, 신경 시스템은 여전히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어요.” 항상 ‘로그인’ 상태인 하이퍼 디지털 문화는 신경 조절 장애를 더욱 악화시킨다. 2030년까지 매일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평균 10여 시간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는 뇌를 도통 쉬게 하지 않아요.” 드 벨게오네가 설명한다. “우리의 노동시간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제2차 산업혁명 시대에나 적합한 개념이었어요.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결국 쉬는 시간에 잠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진정한 ‘쉼’이 아닌 끊임없는 ‘자극’이니까요.” 스와트 박사 역시 이에 동의한다. “인스타그램이든 일이든 무언가에 몰두할 때 우리 뇌는 통제 모드에 돌입합니다. 눈앞에 주어진 과제에 초점을 맞춰 교감신경과 연결되죠. 각성 또는 경계 모드라 할 수 있어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그 반대의 기능을 맡고 있는 부교감신경과 연결이 어려워져요.” 아무 생각 없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스크롤하는 것이 휴식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에게 ‘다시 생각해 보라’고 일갈하는 듯하다. “확실히 스마트폰 사용이 만연해진 이후 뇌의 기억력과 집중력이 줄어들었어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뇌가 그 어떤 것에도 오래 집중하지 않도록 훈련하고 있었던 거예요. 뇌가 휴식하기는커녕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조차 없어지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갖게 된 휴식 시간에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거나 큰맘 먹고 책을 읽는 것이 그야말로 엄청난 ‘헌신’처럼 느껴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우리 신경계는 지문처럼 사람마다 독특하고, 각자의 기억과 생각 등에 의해 한쪽 방향으로 강화되는 가소성이 있어 어떨 때는 특정 감정에 매몰되기도 하고, 그 상태 그대로 마냥 회복을 기다리기도 한다. 때론 다른 신경기관과 공동 조절하기도 하는 것이 신경계의 자연스러운 생리. 드 벨게오네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여러분 스스로 길을 찾아 행동으로 옮겨야 해요. 지금 당장의 감정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가벼운 산책을 하거나, 줄넘기를 하거나, 바닥에 편안히 누워 전신을 가볍게 흔드는 등 간단한 움직임만으로 충분해요. 부교감신경계로 이동하는 경로를 트는 건강한 자극이 될 테니까요.” 미주신경을 자극해 스스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호흡이다. 스와트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집중할 때 숨을 참는 걸 본 적 있습니다. 평소 6초 동안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다시 6초 동안 천천히 숨을 내쉬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호흡은 신경계를 리셋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땅 꺼진다’며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한숨 역시 좋은 방법이다.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5초간 참으세요. 그다음 3초간 더 들이마신 뒤 천천히, 길게 소리를 내며 한숨 쉬듯이 6초에 걸쳐 ‘후~’ 내쉬는 거예요. 산술적으로 ‘몇 초’에 집착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후~’ 하는 장음과 함께 한숨을 내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 외에도 직감적으로 ‘내가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는 미주신경 단계로 되돌아갈 수 있는 실천 방법이 무엇일지 생각해 볼 것. 경직된 턱 근육을 이완하기 위해 혀 움직이기, 콧노래 흥얼거리기, 아로마 향 맡기,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이기 등 단 1분이라도 좋다.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방법을 찾아 불필요한 자동차의 공회전 같은 우리의 상태를 멈추고 미주신경 스위치를 작동시킴으로써 신경계가 안전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하자. 그래야 진정한 휴식과 회복, 건강한 성장이 가능해진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팬데믹 이후 ‘휴식’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음을 피력하는 건지도 모른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릴랙스’라는 단어는 더 이상 스파나 입욕제, 네일 케어, 핫 스톤 마사지가 아니라 진정한 ‘인지적’ 휴식이어야 한다는 사실. 단, 명심해야 할 점은 신경계를 안정시키는 것은 밭을 통째로 갈아엎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적인 정원 가꾸기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차츰 바꿔나가는 인내심이 필요해요. 그동안 우리의 신경 경로를 방해하는 일들이 아주 오랫동안 일어났으니까요.”
마사지를 받은 후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베드에 누워 있는 동안 느끼지 못했던 마음속 ‘비움’과 ‘고요해짐’을 인식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편안히 숨 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갈망하던 평화로운 이상향, 진정한 휴식에 가까워진 느낌마저 받았다. 물론 에스테티션의 훌륭한 손맛으로 지쳐 있던 근육이 이완되고 림프 및 혈액순환이 촉진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과정을 통해 더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신호가 내 신경계에 전달됐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 이를 촉진하기 위한 생활 속 작은 노하우를 익혀가는 과정에 있으리라.
Credit
- 에디터 정윤지
- 사진가 WILLIAM F. SANTOS
- 글 JOANNA ELLNER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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