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조화가 돋보이는 널찍한 거실. 타인 케이 홈(Tine K Home)의 페데스탈 위에 놓인 얄리 글라스 꽃병, 팬텀 핸즈(Phantom Hands)가 디자인한 스포티(Spotti)의 벤치.
20세기 초 밀란 셈피오네 공원 일대에 지어진 이 아파트 중정에는 매해 봄마다 목련이 만발한다. 조용한 중정을 지나 3층 집으로 들어서면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빛 사이로 도시 전경이 어른거린다. 견고한 카날레토 월넛으로 장식된 방이 이어지는 집은 건축가 파니 바우어 그룽과 다비드 로페스 킹코세스가 이끄는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 ‘킹코세스-드라고 & 파트너스(Quincoces-Drago‵ & Partners)’가 레너베이션해 모던미와 클래식함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탄생했다.
“집주인은 독일인 남성과 미국인 여성으로 뉴욕과 유럽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밀란에 정착하기 위해 두 아이가 즐길 수 있는 야외 공간이 넓은 집을 원했죠.”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에 감탄하자 파니 바우어 그룽이 설명했다.
서재에는 카날레토 월넛 패널이 깔려 있다. 아프라(Afra)와 토비아 스카르파(Tobia Scarpa)가 만든 테이블,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의 의자.
벽난로 위에 놓인 토마스 로사(Thomaz Rosa)의 작품이 주의를 집중시킨다. 지오 폰티(Gio Ponti)가 디자인한 암체어, 빈티지 스툴, 이코 파리시(Ico Parisi)의 커피 테이블, 알타이(Altai) 갤러리의 ‘툴루(Tu¨lu¨)’ 러그.
침실은 황토색 벽과 케이트 프렌드(Kate Friend)의 작품을 설치해 예술적 분위기를 강조했다. 리빙 디바니(Living Divani)의 ‘네오월(Neowall)’ 침대, 버그봄스(Bergboms)의 1960년대 황동 램프, 아킬레 카스틸리오니(Achille Castiglioni)가 플로스(Flos)를 위해 만든 ‘비스콘티 (Viscontea)’ 펜던트 조명.
“부부는 오랜 시간 거주한 듯 편안하면서도 기능적인 집을 원했어요. 그들과 스키와 미학에 대한 관심과 취향, 자연에 관한 사랑 등 공통 관심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우정을 쌓았습니다. 우리를 위한 집으로 여기며 열정적으로 완성한 프로젝트입니다. 넓은 야외 공간과 인접한 세 개의 작은 방을 유리문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밝은 분위기의 주방으로 바꿨어요.” 침실과 두 딸을 위한 방, 한 개의 손님방에는 모두 욕실이 있고, 서로 가깝게 붙어 있어 가족끼리 친밀감을 쌓을 수도 있다. 거실은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게 널찍하게 구성돼 있고, 반대편에 있는 주방은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패밀리 룸이자 많은 손님과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였다.
주방은 커다란 창문 덕에 목가적인 분위기까지 풍긴다. 칼라카타 대리석을 상판으로 사용한 아일랜드 테이블, 안젤로 렐리(Angelo Lelli)의 1960년대 샹들리에.
“우리 작업은 항상 건축물이 가진 맥락과 역사에서 출발합니다. 이곳을 디자인할 때는 건물의 설계가이자 빌라 네키 캄필리오라는 걸작을 남긴 이탈리아 건축가 피에로 포르탈루피(Piero Portaluppi)에게서 영감을 받았죠. 사람의 손길이 닿은 듯한 색감과 질감을 지닌 고색 나무와 대리석을 사용했어요.” 파니에 이어 다비드가 설명했다. “세월이 흘러도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자연스러운 소재를 선호해 서재나 현관, 주방에는 카날레토 월넛을, 욕실에는 칼라카타 대리석과 모루 유리, 황동을 선택했습니다.” 자연과의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복도에 있는 옷장은 일본산 밀짚으로 덮어 독특한 디자인 요소를 더했다. “인테리어 프로젝트에선 모든 건축 요소가 시대를 초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겐 50년 동안 지속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곧 ‘능력’이죠. 이 프로젝트에는 엄청난 양의 커스텀 작업과 목공 작업이 포함돼 있어요. 문과 손잡이, 세부 요소를 맞춤 양복을 재단하듯 꼼꼼히 설계했습니다.”
건물 중정. 입구에 장식된 바닥과 후기 아르누보 모티프를 가진 파사드를 통해 시대를 짐작할 수 있다.
대형 일본 병풍이 공간에 이국적인 풍경을 더한다. 리빙 디바니의 ‘Greene’ 소파, 에이서비스(Acerbis)를 위해 비코 마지스트레티(Vico Magistretti)가 제작한 검은색 ‘Florian’ 커피 테이블, 파보 타이넬(Paavo Tynell)이 디자인한 구비(Gubi) 램프.
킹코세스-드라고 & 파트너스는 피렌체에 있는 마니파투라 타바키(Manifattura Tabacchi)의 주거용 건물 두 채와 구마 겐코가 건축 구조를 레너베이션한 팔라초 파르마(Palazzo Parma)의 인테리어, 런던에 있는 도버(Dover) 레스토랑 인테리어, 로마와 기타 유럽 도시들의 관광 사업 관련 프로젝트 등 여러 포트폴리오를 쌓아온 스튜디오다. 스튜디오에서 파니와 다비드는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다비드는 공간을 분할하는 데 달인이고, 장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고객들의 꿈을 기술적 도안으로 바꿔요. 저는 직관적으로 마감재나 가구 조사,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놀라움과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오늘날과 과거 요소를 뒤섞어 현대적 감각이 더해진 분위기를 창조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