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예스러우면서 독특한 질감이 느껴지는 공간, 사유집

조선시대 물건부터 유럽의 골동품, 현대 한국과 일본의 공예품까지. 시간과 국적을 초월하는 사유집의 독특한 미감.

프로필 by 윤정훈 2024.05.02
바닷속에서 건져올린 토기.

바닷속에서 건져올린 토기.

연남동에 있는 공예 골동품 숍 ‘사유집’.

연남동에 있는 공예 골동품 숍 ‘사유집’.

원뿔 모양의 오브제는 조선시대의 모자. 장마철에 우산 대신 쓰고 다닌 물건.

원뿔 모양의 오브제는 조선시대의 모자. 장마철에 우산 대신 쓰고 다닌 물건.


사 유 집
예스러우면서 독특한 질감이 느껴지는 공간, 세월의 힘이 묻어나는 오브제가 인상적입니다. ‘사유집’의 시작은 어땠나요
누구나 ‘내 일’과 ‘나만의 공간’을 꿈꾸잖아요. 저 역시 막연히 그런 바람을 품은 평범한 직장인이었어요. 디자인을 전공하고 광고회사에 다녔는데, 내 취향으로 꾸린 공간에 대한 꿈이 갈수록 커져 회사를 그만두게 됐어요. 우연히 지인을 통해 이곳 연남동 공간의 존재를 알았어요. 통창으로 드는 햇살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보자마자 숍을 차려야겠다고 결심했죠.

조선시대 물건부터 유럽의 골동품, 현대 한국과 일본의 공예품까지 시간과 국적을 초월하는 독특한 미감이 사유집 컬렉션의 매력이에요
평소 여행을 다니며 세계 각국의 다양한 기물을 보고 경험하는 걸 좋아했어요. 공예나 골동품이라면 막연히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손으로 빚어 시간의 깊이를 머금은 옛것이 주는 사유와 위로가 있어요. 제 사사로운 컬렉션을 통해 사람들이 이런 기물을 좀 더 쉽고 편안하게 경험하길 바랐죠. 다양한 국가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의 작품과 긴 시간을 지나온 갖가지 기물을 경계 없이 전시했어요. 특정 스타일이나 지역이 떠오르기보다 옛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요.

사유집에서만 볼 수 있는 토모미 미즈타니 작가의 오브제.

사유집에서만 볼 수 있는 토모미 미즈타니 작가의 오브제.

유리로 표현한 독특한 질감과 색감이 아름다운 카즈키 모리야의 작품. 꽃이나 다과를 올려두면 멋이 극대화된다.

유리로 표현한 독특한 질감과 색감이 아름다운 카즈키 모리야의 작품. 꽃이나 다과를 올려두면 멋이 극대화된다.

3월 사유집의 개인전을 앞둔 하치쿠보 쇼고의 오브제.

3월 사유집의 개인전을 앞둔 하치쿠보 쇼고의 오브제.

고무나무 잎의 엽록소를 제거해 말린 천연 거름망은 오브제로도 좋다.

고무나무 잎의 엽록소를 제거해 말린 천연 거름망은 오브제로도 좋다.

다양한 시간과 시대를 아우르는 사유집의 컬렉션이 선반을 채우고 있다.

다양한 시간과 시대를 아우르는 사유집의 컬렉션이 선반을 채우고 있다.

‘경계 없음’이 느껴지지만 기물을 선별하는 최소한의 기준은 있겠죠
숍을 운영한다는 건 개인의 취향을 판매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따라서 그 기준은 운영자인 제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익을 위해 대중적 취향도 고려하지 않을 순 없죠. 언젠가 대중성이 짙고 판매될 것 같은 기물을 바잉한 적 있어요. 그랬더니 공간 분위기가 다 틀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제가 갖고 싶은 작품, 지극히 개인적 시각에서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별하고 있어요. 또 다른 기준은 질감입니다. 물건을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직접 만지고 느끼는 건 큰 차이가 있죠. ‘손에서 기억되는 사유’를 중요하게 생각해 질감이 특징적인 기물이 주를 이룹니다.

사유집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사물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토기가 있어요. 한국에서 발견됐고, 40~50년 전 물건으로 추정됩니다. 긴 시간 물속에서 지낸 탓에 따개비들이 붙은 상태로 건조돼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어요. 쓰임새 측면에서는 무용하지만 세월이 남긴 자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무척 아끼는 물건입니다. 누군가 손으로 정성껏 빚은 물건에는 특유의 힘이나 정서가 있죠.

공예로 위로받은 순간이 있나요
어떤 작품은 말보다 더 큰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치쿠보 쇼고(Hachikubo Shogo) 작가의 작품 중 눈을 감은 소녀 형상을 한 오브제가 있는데, 처음 보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따뜻함과 안온함이 밀려왔어요. 숍을 찾은 손님이 그 작가의 작품을 보고 같은 기분을 느낀다고 말해 주면 반가움이 배가되죠. 앞으로도 길고 잔잔하게 저만의 정체성을 지키며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분들과 오래 마주하고 싶습니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가 표기식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