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오드 플랫' 파운더 박지우의 수집 테마

파이버글라스 체어를 시작으로 펼쳐진 빈티지 가구 숍 ‘오드플랫’ 대표 박지우의 수집 역사.

프로필 by 윤정훈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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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모으는 것을 누구는 일찌감치 마무리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나이가 가득 찰 때까지 끝내지 못하기도 한다. 애석하게도 나는 후자에 속한다. 수집하는 테마가 몇 가지에 달해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물건을 탐구하다 끝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래된 오디오 기기를 탑처럼 쌓거나 서랍 몇 칸을 빈티지 시계로 채우는 등 스스로 봐도 수집욕이 가득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수집의 테마가 우연히 찰스 & 레이 임스(Charles & Ray Eames)가 디자인한 파이버글라스 체어에 닿았다. 내 나이 서른 즈음의 일이다. 60년대에 생산된 라이트 오커 컬러의 사이드 체어 여섯 피스를 다이닝 테이블에 쓰기 위해 구매한 것이 시작이었다. ‘셸’로 불리는 의자의 아우트라인이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웠다. 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다소 감정이 둔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유리섬유로 만든 셸을 처음 만졌을 때 전해진 손끝의 감촉은 본능적으로 이 의자를 모아야 한다고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집 안에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파이버글라스 체어가 쌓였다. 집의 한쪽 모서리만 차지했던 이 녀석들은 거실 카펫을 감출 정도로 쌓였고, 어딘가 있을 리모컨을 찾기 위해 산처럼 쌓인 의자 꾸러미를 힘겹게 들춰내야 했다. 결국 집 안에서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의자에 묻혀 살아야 할 지경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임스의 파이버글라스 체어는 내 의욕을 자극할 만한 이유가 충분한 수집 테마였다. ‘희귀 컬러, 초기 모델’ 같은 단어는 컬렉터에게 얼마나 자극적인 단어인가.

퇴근 후 집에서 의자를 모으고 닦고 고치는 생활을 이어가던 무렵, 아내가 아이를 갖게 됐다. 마침 집에 찾아온 손님이 “이 정도면 숍을 해도 되지 않겠냐?”고 했으나 취미생활이 어떻게 밥벌이가 될 수 있는지 반신반의했다. 다만 태어날 아이를 위해 집을 정리하고, 내가 좋아하는 의자를 쌓아놓고 오디오 생활을 즐길 요량으로 집 맞은편에 8평 남짓한 공간을 빌렸다. 이곳이 지금 내가 운영하고 있는 빈티지 가구 숍의 시작이다. 늘 관심 있는 주제를 하나씩 정하고 이를 수집하다 쌓이는 지식과 우연, 인연은 세상을 살아갈 때 힌트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임스의 파이버글라스 체어를 시작으로 세계의 수많은 가구를 접했고, 10년가량 의류 디자이너로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결국 빈티지 가구 숍을 운영하게 됐다. 집도 내가 운영하는 숍처럼 다채로운 빈티지 가구로 채워졌다. 집을 실험실 삼아 숍과 창고를 채운 수많은 가구를 들이고 내보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파 하나를 바꾸기 위해 수일 또는 몇 달씩 고민하지만, 나는 일 년에도 몇 차례씩 수레를 끌고 다니며 덩치 큰 가구를 바꿀 수 있었다.

반복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던 디자이너의 명성과 역사, 배경은 오히려 가구에 싫증 내는 단초가 됐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사물의 만듦새에 집중하니 이 세계가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미지의 세계와 닿은 것처럼 처음으로 임스의 파이버글라스 체어를 만졌을 때 느꼈던 원초적 감정 그리고 부연 설명 없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가구를 찾아 헤맸다. 수년 동안 해외 딜러들을 만나며 나눈 대화는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를 알려준 교양서가 됐음은 물론이다. 며칠 전에는 고심 끝에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책장을 구매했다.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칸칸이 다른 문양이 조각돼 책장 스스로 이야깃거리를 잔뜩 품은 디자인이었다. 내 수집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박지우
빈티지 가구 숍 ‘오드플랫’ 대표. 최근 빈티지 오브제를 아카이빙하는 ‘뉴폼온리’를 론칭했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